사진=포포투 박진우 기자 |
[포포투=박진우(서귀포)]
'제주SK 입단 11년차' 정운은 흔들리지 않고 묵묵히 제 갈 길을 간다.
정운은 제주SK를 대표하는 '레전드'다. 크로아티아에서 활약하던 정운은 지난 2016년 K리그 무대에 발을 내딛었다. 병역 문제가 걸려 있었기 때문. 정운은 제주와 손을 잡았고, K리그를 대표하는 레프트백으로 거듭났다. 어느덧 제주 입단 11년차에 접어든 정운은 지금까지 K리그 200경기 5골 15도움을 기록했다.
다만 딱 10년차가 되던 지난 시즌,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제주의 최고참이자 정신적 지주인 건 여전했지만, 리그 11경기밖에 소화하지 못하며며 처음으로 주전 입지가 흔들렸다. 제주 또한 시즌 내내 강등권을 맴돌았고, 승강 플레이오프(PO)에서 수원 삼성을 꺾으며 극적으로 잔류했다. 정운에게는 마냥 웃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어느덧 제주 입단 11년차 생활이 시작됐다. 제주는 이번 시즌을 앞두고 과거 파울루 벤투 감독 시절 대한민국 국가대표팀 수석코치 세르지우 코스타에게 지휘봉을 맡기며 혁신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정운은 변화의 바람이 부는 제주에서도 소나무처럼 묵묵히 버팀목으로 자리하고 있다.
영상 10도를 웃도는 따뜻한 날씨 속, <포포투>는 제주 클럽하우스에서 세르지우 감독 체제 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정운을 만났다. 정운은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면서도 "여전히 자신이 있고 이번 시즌 최대한 많이 뛰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동시에 개인보다는 팀을 강조하며, 팬들에게 새롭게 변화하는 제주를 지켜봐달라고 부탁했다.
[이하 정운 인터뷰 일문일답]
-지난 시즌 제주가 강등권 싸움을 벌일 때마다, 라커룸에서 선수들에게 잔잔하게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팀 성적이 좋지 않으면 선수들이 스스로 말하기가 어렵다. 주장 (이)창민이가 계속 이야기하는 것도 힘들다. 나는 보통 전체적인 상황을 둘러보고 말을 할지 타이밍을 계산한다. 지난 시즌에는 선수들이 워낙 지쳐 있었기에 다른 선수보다 팀을 위한 말을 더 많이 했다. 항상 생각하는 건 '내가 나서지 않으면 선수들이 나서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려운 순간에 내가 발 벗고 나서야 또 누군가가 말을 할 수 있다. 나이도 찼고, 이 팀에 오래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되는 것 같다.
-선수단 훈련 분위기가 화기애애한 것 같다
17년 만에 외국인 감독이 오시고 제주가 변화를 가져갔다. 선수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건 결국 축구다. 좋은 축구를 재미있게 배우고 싶다는 열망이 워낙 강하다. 훈련을 시작한지 2주 조금 넘었는데, 소집되자마자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훈련들을 하고 있다.
-세르지우 감독 체제 훈련은 무엇이 다른가
훈련을 시작한지 2주 조금 넘었는데, 공을 가지고 하는 훈련을 한다. 보통 동계 훈련을 할 때는 체력 훈련을 중심으로 한다. 그런데 공을 가지고 훈련하니까 일단 재미가 있다. 또 감독님은 훈련장에서만 우리에게 관여를 하시고, 외적인 부분은 프로라는 책임감을 부여하고 자유롭게 해주신다. 감독님은 항상 잘할 수 있다, 전혀 걱정말라는 믿음을 주시니 선수들이 경쟁하는 동시에 재밌게 훈련에 임하고 있다.
-세르지우 감독이 주도하는 축구를 강조했다
우리도 기본적으로 공을 가지고 간다는 점이 정말 좋다. 요즘 K리그 트렌드 또한 유럽을 많이 따라가 주도하는 축구를 많이 하려고 하지 않나. 그 부분이 긍정적이다. 물론 지난 2년간 성적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감독님이 오셨기에 처음부터 확 바뀔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감독님과 믿음을 공유하기에 우리도 미래가 기대된다.
특히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대한민국 축구는 보통 지고 있을 때, 마지막 10분~20분을 남기고 전방에 키 큰 선수를 놓고 롱볼 축구를 시작한다. 세르지우 감독님은 과연 그러한 상황을 마주할 때, 끝까지 우리만의 축구를 하려고 하실지 궁금하다. 아직 그런 상황까지는 연습하지 않아서 정말 궁금하다.
-지난 시즌 경기를 많이 뛰지 못했다. 팀 상황도 그렇지만, 선수 본인에게도 어려웠던 시간이었다
처음에는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제주에 11년 있으면서 줄곧 (주전으로) 뛰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대체하는 (김)륜성이라는 선수가 나와 개인적으로 정말 기쁘다. 사실 제주에는 스타성 있는 젊은 선수들이 계속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나도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내가 뒤에서 받쳐줄 수 있는 역할이 있으면, 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내가 뛸 수 있는 상황이고 필요하다면 경기를 뛸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아쉬울 수 있어도, 전체적으로 봤을 때는 제주에 젊은 선수들이 배출된다는 사실이 정말 기뻤다.
-김륜성에게 어떤 조언을 해주나
(김)륜성이는 가진 게 명확한 선수다.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크로스할 때는 이렇게 해봐라', '너는 이 능력이 좋으니 다른 것도 해보면 옵션이 많아질 수 있다'는 식의 말을 많이 하는 편이다. 물론 좋지 않은 소리를 할 수 있겠지만, 보통 칭찬을 많이 하는 편이다. 륜성이 같은 개성 있는 선수들이 있어야 팀에게도 에너지가 된다. 정말 잘하고 있고, 다른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항상 도울 것이다.
-한 팀에서 10년 넘게 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사실 이적이 가능했던 순간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다. 기회는 몇 번 있었지만, 나는 순리를 택했다. 지금 팀에 막 들어온 선수들 나이에 내가 입단한 것이다. 자랑스럽고, 감사하고, 자부심도 느낀다. 모든 게 다 긍정적이다. 항상 후배들에게도 이 팀에 애정을 가지라고 많이 말한다. 이적한 선수들이 정말 많이 하는 말이 '제주만한 곳이 없더라'다. 애정을 가지고 오래 머물러야 팀이 단단해진다. 난 제주를 빅클럽이라 생각한다. 10년 넘게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행복하고 자랑스럽다.
-비슷한 나이대인 최철순과 이용이 현역 은퇴를 선언했는데 기분이 묘할 것 같다
정말 존경스럽다. 나도 은퇴해야 하나 같은 생각보다는 너무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오래 뛰어 보니 알겠더라. 30대 이상 후배들도 어떻게 하면 오래 뛸 수 있냐고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열심히, 성실하게, 간절한 마인드로 뛰면 오래할 수 있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기준이 되어 주면, 후배들에게 길이 될 수 있다. 지금도 스스로에게 모범을 보이자, 다른 선수보다 한 발 더 뛰자고 간절하게 주문한다. 나보다는 후배들을 위한 마음가짐이다.
-언제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 가야겠다는 생각이 있나
감독이 필요하다고 하면 축구를 계속할 수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지금도 하지 않을 생각이 있다. 선수는 당연히 경기에 나가야 하고 쓰임새가 있어야 하는데, 필요하지 않게 된다면 은퇴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항상 그런 생각이다. 일단 열심히 해보고, 판단은 감독님이 하신다. 지금 은퇴한다고 하더라도 행복할 것 같다.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는 나이이지 않나.
-이번 시즌 팀적인 목표
새로운 감독님과 하고자 하는 축구를 팬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팬들이 신나서 더 보고 싶어하는 축구를 지향한다. 그런 축구를 하다보면 성적도 자연스럽게 좋아질 것이다. 감독님이 목표로 한 축구를 선수들이 잘 실현하는 게 1차 목표다. 다음으로는 안정적으로 상위 스플릿에 올라가고 싶다.
팬 분들께 말씀드리고 싶은 게 있다. 우리가 지금 변화 속에 있기에, 우리가 경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잘 봐주셨으면 한다. 성적이 좋지 않음에도 끝까지 응원해주셔서 지난 시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새로운 감독님도, 선수들도 더 지지해주셨으면 한다. 어린 선수들도 더 많이 발굴될 수 있도록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개인적인 목표
경기에 최대한 많이 나서는 게 목표다. 경기에 나서 팀에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난 여전히 자신감이 넘친다. 경기를 잘할 자신도 있고, 나만의 장점이 있다는 걸 안다. 경기장에서 최대한 내가 가진 능력을 보여주고 싶고, 동생들도 돕고 싶다. 최대한 많은 경기에 나서는 걸 목표로 삼아야 스스로에게도 동기 부여가 된다. 올해는 내 왼발이 많이 터졌으면 좋겠다.
-정운에게 제주란?
제주는 진짜 내 인생인 것 같다. 이제 은퇴 시점이 다가오고 있고,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라 생각하는데 내 미래를 제주에서 그린다. 물론 추후에 내가 이 팀에서 지도자를 할지, 행정 일을 할지, 아예 다른 일을 할지 모르겠지만, 인생 계획은 제주에서 세우고 있다. 사람들이 은퇴하면 계속 여기서 살 거냐고 물어보는데, 나는 항상 제주도가 너무 좋고 계속 살 거라고 말한다. 팀도 마찬가지지만, 제주라는 도시 자체를 워낙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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