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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이래서 엄마가 의대 가라고 했지"

뉴스1 박희진 금융증권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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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진 금융증권부 부장

박희진 금융증권부 부장

(서울=뉴스1) 박희진 금융증권부 부장 =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던 대우그룹이 해체되면서 42살 나이에 직장을 잃었다. 비슷한 신세의 동료들과 창업전선에 나섰다. 바이오산업이 유망해 보였다. 2000년 사업을 시작했는데 돈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고 한다. 9년이 지나 싱가포르 정부가 8000억원을 투자해 줬다. JP모건도 5000억원을 더했다.

"1조3000억원을 받으면 실패하는 놈이 아무도 없죠. 다 성공합니다."

'셀트리온 신화'의 주인공 서정진 회장이 지난해 9월 이재명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중인 국가 혁신 투자 프로젝트 '국민성장펀드' 행사에서 밝힌 말이다. 후배 창업가들을 위해 창업과정에서 투자가 얼마나 중요한지, 투자를 획일적으로 가로막고 있는 '금산분리'가 얼마나 낡은 규제인지를 역설하기 위한 발언이지만, 거대 자본이 '실패하는 놈'에 투자할 리가 없다. '서정진'이라는 걸출한 혁신가의 끈기와 비전에 투자한 것이다.

새 정부 들어 '생산적 금융'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국가의 명운이 걸린 첨단전략산업에 5년간 '국민성장펀드' 150조원을 투입한다. 사회 불평등, 양극화의 주요인 중 하나인 부동산에 쏠려 있는 자금을 생산적 금융으로 대전환을 이루겠다는 포부다. 돈의 물줄기를 생산주체로 향하게 하는 방향성은 참으로 긍정적이다.

그런데 서정진 회장의 말처럼 1조3000억원이 생기면 다 성공할까?

핵심은 인재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야수의 심장'과 포기하지 않는 '근성', 무엇보다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를 지닌 혁신가 말이다.


한국은 어떠한가. 부모들은 자식을 의대에 보내려고 혈안이다. 의대에 가는 순간, 앞으로의 삶은 예측 가능한 '의사의 길'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반면 공대는 '비포장 도로'다. 공부는 의대만큼 잘했지만 네이버 이해진 같은 성공한 창업가가 될지, 공대 생활에 적응하지 못해 방황할 지 예측이 어렵다. '리스크'가 크다는 뜻이다.

더 큰 문제는 개인의 입장에서는 손도 쓸 수 없는 한국 사회의 '규제 리스크'다. 공대생이 세상을 바꿔보겠다며 혁신에 나서도 규제라는 냉혹한 현실에 부딪히게 된다.

미국 명문 카네기멜론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젠트리피케이션'이라는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소액 부동산 조각 투자 시장을 개척한 루센트블록 허세영 대표의 꿈도 'K-규제'에 산산조각 났다.


법적으로 회색지대에 있는 시장을 꽃피우기 위해 2018년 회사를 세웠지만 각종 규제에 2022년이 돼서야 '소유' 서비스를 런칭할 수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정부가 유통 플랫폼 인가에 나섰는데 양대 거래소인 한국거래소-코스콤(KDX) 컨소시엄과 넥스트레이드(NXT) 컨소시엄에 밀려 탈락한 신세다. 금융위원회가 조각투자 가이드라인을 발표한 지 4년이 흘렀지만 제도화가 지연되는 사이 혁신기업이 '희망고문'을 견딘 결과가 폐업 위기인 셈이다.

스테이블코인, 실물자산 토큰화(RWA) 등 전세계가 하루가 멀다 하고 급변하고 있지만 'K-디지털자산'(가상자산) 제도화도 '하세월'이다. 기본법 제정이 계속 미뤄지는 가운데, 금융당국은 가상자산 거래소 대주주 지분을 15%로 제안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전세계적 '코인 붐'에 발맞춰 온갖 리스크를 지고 사기꾼 취급 받으며 한때 세계 1위인 거래소를 만들어놨더니 정부가 창업자 지분을 강제로 뺏겠단다.


개인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고수익'의 미국 주식으로 몰리면서 고환율이 진정되지 않는 상황인데 업비트·빗썸 등 국내 거래소가 없었다면 1년 전만해도 하루 81억달러(약 12조원)에 달했던 코인 투자금마저 바이낸스 등 해외로 유출됐을 것이다.

인재도 한국을 떠나고 있다. 미국 등 해외에서는 되는 일이 한국에서는 '감옥 갈 결심'을 해야 하는 일이다.

AI 혁명으로 촉발된 글로벌 테크전쟁을 이끌 전사는 혁신기업이다. 국가 차원에서 혁신기업을 키워도 시원찮을 판인데 규제의 벼랑끝으로 내몬다.

'공대에 미친 중국, 의대에 미친 한국'의 문제를 아무리 한탄해도 내 자식은 의대에 보내고 싶은 한국의 현실에 혁신의 전쟁터에 누가 뛰어들겠는가.

인재가 떠나고, 자본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혁신기업에 대한 존중은 커녕 규제의 벼랑 끝에 내모는 나라에서 국가 경쟁력이 커질 리 없다. '국민성장펀드'가 성공하려면 먼저 혁신가를 죄인 취급하는 규제부터 걷어내야 한다.

2bric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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