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열린 농촌 보건 의료 투자 촉진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백악관으로 돌아온 첫해 미국 안팎을 가리지 않고 종횡무진 행보를 이어왔다. 2025년 한 해 동안에만 행정명령 200여건으로 반이민 정책, 연방 공무원 감축, 다양성 정책 폐기 등을 밀어붙이며 미국 사회를 재편했다. 미국 우선주의와 일방주의를 앞세워 글로벌 통상·안보 질서에도 대격변을 불러왔다.
미 대통령사를 연구하는 바버라 페리 버지니아대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 집권 2기 첫해를 “변화의 속도, 그의 스타일과 진행방식, 접근법 등 모든 면에서 미 역사상 어떤 대통령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평가했다. 2025년은 이처럼 트럼프 대통령이 이끈 격동의 해였지만, 중간선거를 앞둔 2026년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입지와 집권 2기 향방을 결정짓는 시험대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초부터 “중간선거에 지면 탄핵 소추당할 것”이라며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본격 돌입했다. 올해 미국의 경제 상황, 관세 정책, 외교 현안의 진전 여부 등이 지지율을 좌우할 주요 쟁점들로 꼽힌다.
“생활비 잡아라” 트럼프의 위험한 승부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12월9일(현지시간) 펜실베이니아주 마운트 포코노의 마운트 에어리 카지노 리조트에서 미국 경제에 관한 연설을 하기 위해 도착해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
경제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운명을 결정지을 최대 쟁점으로 떠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등 각종 경제지표를 거론하며 “미국의 황금시대가 왔다”고 주장하지만 ‘감당 가능한 생활비’ 이슈를 둘러싼 민심은 여전히 악화하고 있다. 자산시장 호황을 토대로 소득·소비를 늘린 고소득층이 견인하는 이른바 ‘K자형 경제’가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과 민심의 괴리를 낳는 배경으로 지목된다. 전반적으로 양호한 경제 지표를 뜯어보면 물가 상승과 고용 둔화의 충격은 서민층이 고스란히 떠안았다는 것이다.
CNN은 “다수 미국인은 전 세계에 코로나19 팬데믹 그림자가 드리운 2021년 초 이후 경제 상황에 대해 최근처럼 부정적인 감정을 느껴본 적 없다”고 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지난 16일 발표한 여론조사에선 유권자 절반이 “경제가 나빠졌다”고 답하고 트럼프 대통령이 베네수엘라, 이란 등 대외 현안에 집중하느라 가장 시급한 민생과 경제 문제를 등한시한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후보 시절부터 조 바이든 전 정부의 고물가를 비판하며 ‘경제 해결사’를 자처해온 것이 오히려 그의 지지율을 깎아 먹는 요인이 됐다고 미 언론들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생활비를 둘러싼 비판 여론이 외면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지자 연초부터 물가 낮추기에 주력하고 있다. 신용카드 금리 상한 도입, 주택시장 개입, 에너지 가격 관리 등 가계의 체감 비용을 겨냥한 조치를 내놓은 데 이어, 금리 인하를 압박하기 위해 제롬 파월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에 대한 수사·기소 추진이라는 초강수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뉴욕타임스는 “민간 기업을 상대로 한 규제 위협부터 정책 결정자를 겨냥한 징벌적 조치에 이르기까지, 트럼프 대통령은 좀처럼 꺾이지 않는 물가를 억누르기 위해 정부 권한이라는 강력한 수단을 동원하기 시작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이런 경제 전략에 대해 위험 부담이 크다는 지적이 나온다. WSJ는 의회, 연준, 규제 당국이 각각 독립적으로 운용해온 재정·통화·신용정책이 중간선거를 염두에 둔 트럼프 정부의 목표를 반영해 모두 ‘경기 부양’에 초점을 두게 됐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경제를 활황으로 이끌기 위해 전례 없는 조처를 하고 있고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크지만, 그에 따른 대가가 나타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단기 경제지표를 좋게 만들지언정 국가 부채 관리, 연준의 독립성, 장기적 금융 안정성 같은 가치를 희생시켜 오히려 경제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역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이다.
시즌2 접어든 “관세왕”…대법원 판결 전 세계 ‘주목’
유럽연합(EU)과 그린란드 국기 앞에 놓인 트럼프 대통령의 미니어처 모델. 로이터연합뉴스 |
세계 자유무역 질서를 뒤흔든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정책도 중대 변곡점을 맞는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2주 만에 중국 등에 이른바 ‘펜타닐 관세’를 부과한 후 품목관세, 국가별 ‘상호관세’까지, 무역 현안뿐 아니라 외교·안보 현안을 아우르는 압박 수단으로 관세를 활용했다. 관세는 세계 각국을 상대로 미국의 ‘동맹’과 ‘적’을 가르는 도구이자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협상 조건을 얻어내는 지렛대로 기능했다. 예일대 예산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미국의 평균 실효관세율은 16.8%에 달해 트럼프 대통령 취임 당시(2.4%)보다 큰 폭으로 늘어나 1935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전방위 관세 정책은 경제적 여파, 법적 정당성 등 숱한 논란을 불러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올해 들어 전선을 더욱 넓히고 있다. 그동안 미뤄왔던 반도체 관세 도입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미국의 덴마크령 그린란드 병합 구상을 견제하는 유럽 8개국을 향해서도 추가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는 이란을 두고는 교역국에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이는 협상용 엄포에 그칠 가능성도 있으나 한동안 소강상태에 접어든 무역전쟁의 또 다른 불씨가 될 수도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이처럼 ‘시즌2’에 접어든 관세 정책은 미 연방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있다. 대법원은 미국의 무역적자가 국가 비상사태에 해당한다며 1977년 제정된 국제비상경제권한법을 근거로 관세를 부과한 것이 대통령의 합법적인 권한인지 심리 중이다. 이르면 오는 20일 판결 선고 가능성도 점쳐진다. 앞서 1심 법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지적하며 상호관세 등을 무효라고 판단했다. 2심 법원도 이를 유지했다.
대법원이 원심 판단을 유지하면 관세 정책 동력은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트럼프 정부는 패소를 대비해 무역확장법 232조, 무역법 301조 등을 토대로 ‘플랜B’를 준비해둔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선택지들은 기존 정책보다는 속도가 느리거나 범위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정부가 승소할 경우 사법기관에서 정당성을 인정받은 ‘관세 무기화’가 심화하면서 전 세계의 불확실성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자신을 “관세왕”으로 칭하며 관세가 무효로 되면 미국은 끝장날 것이라는 여론전에 열을 올리고 있다.
베네수·그린란드·이란까지…광폭 대외행보 성과 낼까
지난 17일(현지시간) 덴마크령 그린란드 수도 누크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구상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미 영사관을 향해 행진하며 시위를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미국이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끌어낸 사태를 기점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대외정책은 새로운 장에 접어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정부 당국자들은 베네수엘라 작전 직후 자신감에 찬 트럼프 대통령을 두고 비공식적으로 “세계의 대통령”이란 별명을 붙였다고 WSJ는 전했다. 집권 2기 2년 차에 접어들어 더 커진 트럼프 대통령의 야망과 공격적인 태도를 반영한 별명이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 별명에 걸맞게 새해 들어 2주 만에 그린란드를 갖겠다고 위협하고, 이란에 군사 개입을 경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한층 대담해진 대외 행보는 국익을 명분으로 내세워 핵심 지지층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의 호응을 얻기도 했지만 “도가 지나치다”는 반대 여론도 키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미 언론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와 민생 과제 사이 적절한 균형을 잡을 수 있는지가 중간선거 핵심 변수가 될 수도 있다고 지적한다. 특히 반정부 시위가 이어진 이란에 대한 대응에 관심이 쏠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 정부를 압박하는 동시에 협상 가능성을 저울질해왔는데, 최근 서반구를 중심으로 진행된 트럼프 정부의 군사 개입이 이란까지 범위를 넓힐지 가늠할 계기로 꼽히기 때문이다.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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