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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에 맡겨도 불안”…30조 빠져나간 돈, 향한 곳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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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꼬리 이자’에 등 돌린 자금, 주식 계좌로 쏠린 이유
“연초인데도 통장 잔액이 줄었다는 문의가 이렇게 많은 건 처음입니다.”

지난 19일 서울의 한 시중은행 영업점. 창구 직원은 최근 달라진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예금 만기 상담보다 “돈을 어디로 옮기면 좋겠느냐”는 질문이 먼저 나온다는 설명이다.

새해 들어 예금 만기 상담보다 자금 이동과 투자 관련 문의가 늘어나며 영업점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새해 들어 예금 만기 상담보다 자금 이동과 투자 관련 문의가 늘어나며 영업점 분위기도 달라지고 있다. 게티이미지


새해 들어 은행 창구에서 느껴지는 공기는 분명 달라졌다. 자금이 빠져나가는 속도도, 규모도 예년과는 결이 다르다.

◆연초 자금 수요로 보기엔 “속도가 다르다”

20일 금융권에 따르면 이달 중순 기준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해 말보다 약 30조원 가까이 줄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체감이 잘 되지 않지만, 현장에선 “하루에 몇 조원씩 빠져나가는 느낌”이라는 말이 나온다. 급여통장이나 수시입출금 계좌처럼 언제든 꺼내 쓸 수 있는 돈이 이처럼 빠르게 줄어든 것은 흔치 않은 장면이다.

통상 연초에는 세금 납부나 기업 결제 등으로 예금이 일부 빠져나간다. 하지만 은행 내부에서도 이번 흐름은 “계절적 요인만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증시가 뜨거웠던 시기와 비교해도 감소 속도가 더 빠르다는 점에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주가가 꽤 올라도 예금이 서서히 줄었는데, 요즘은 분위기가 달라졌다”며 “시장이 움직이면 돈도 바로 반응한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빠져나간 돈, 머무는 곳은 ‘증시 근처’

은행에서 이탈한 자금의 행선지는 비교적 분명하다. 증권사 계좌에 잠시 머물며 매수 시점을 노리는 이른바 ‘대기자금’이다. 연초 이후 투자자 예탁금이 빠르게 늘어난 것도 이런 흐름과 무관치 않다.


장중 조정이 나올 때마다 개인 투자자 매수세가 붙는 배경에도 이 자금이 깔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서울 여의도의 한 증권사 지점에는 최근 신규 계좌 개설 문의가 부쩍 늘었다. 지점 관계자는 “예금 만기 자금을 들고 와 ‘지금 들어가도 늦지 않았냐’고 묻는 고객이 많다”며 “주가가 계속 오르다 보니 가만히 있으면 기회를 놓칠 것 같다는 불안이 큰 것 같다”고 전했다.

◆예금금리 내려가고, 환율은 부담으로…“이제는 예금만으론 부족”


은행 입장에선 여건이 녹록치 않다. 지난해 말 3%대를 형성했던 정기예금 금리는 최근 시장금리 하락과 함께 다시 낮아졌다. 1년 만기 기준 최고금리는 2%대 중후반에 머물고 있다. “이자 받아도 체감이 안 된다”는 고객 불만이 나오는 배경이다.

여기에 환율 상승도 부담이다. 원화 가치가 약세를 보이면서 일부 자금은 달러 자산이나 해외 투자로 눈을 돌리고 있다. 다만 금융당국이 외화예금 과열을 경계하면서 은행들은 공격적인 금리 경쟁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달러예금 잔액은 늘고 있지만, 수신 확대의 해법으로 삼기엔 제약이 많다.

은행 예금을 떠난 자금이 증시 대기자금으로 유입되며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 대기 자금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은행 예금을 떠난 자금이 증시 대기자금으로 유입되며 개인 투자자들의 매수 대기 자금이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 게티이미지


은행 내부에선 “예금만으로 고객을 붙잡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는 말도 나온다. 한 은행 임원은 “주식과 ETF, 연금까지 아우르는 자산관리 경쟁으로 완전히 넘어왔다”며 “금리 몇 십 bp 올리는 방식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증시는 당분간 강세 흐름을 이어갈 가능성이 크고, 투자자들의 기대 심리도 쉽게 꺾이지 않고 있다. 통장에서 빠져나간 돈이 다시 은행으로 돌아오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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