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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만에 등장한 '김치본드'…기업들, '환율 구원투수'로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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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성 기자]

원달러 환율 변동성이 커지자 국내 기업과 국책은행, 공공기관들이 잇따라 외화채 발행에 나서고 있다.

외환시장에서 달러를 직접 매입하는 대신 외화 표시 채권을 발행해 자금을 조달하는 방식으로, 환율 상승 압력을 완화하는 동시에 정부의 외환시장 안정 기조에 보조를 맞추겠다는 전략이다.

고환율 국면에서 외화채 발행은 기업의 환율 리스크를 낮추는 동시에 외환시장에 달러를 공급하는 '방패' 역할을 한다.

외화채로 조달한 달러가 통화스와프를 거쳐 시중으로 흘러들면 원화 환율 하락 압력으로 작용한다. 기업과 금융기관, 정부가 동시에 외화채 시장에 나서는 배경이다.

자본시장에서는 올해 외화채 발행 규모가 지난해보다 20% 이상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포스코를 비롯한 대기업과 국책은행, 공공기관들이 외화채 발행을 본격화하면서 외화 유입 경로가 다변화되고 있다.


외화채는 달러를 빌려 쓰되 상환은 원화로 이뤄지는 구조여서 외환시장에서 달러 수요를 직접 자극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고환율 국면에서 효과적인 조달 수단으로 꼽힌다.

정부 역시 외환보유액을 직접 소진하지 않으면서 외화를 공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외화채 활용을 권하고 있다.

◆ 15년 만에 되살아난 김치본드…규제 완화 효과 본격화


이 같은 흐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김치본드다.

현대카드는 최근 국내 발행 외화 표시 채권인 김치본드를 2000만달러 규모로 발행했다고 19일 밝혔다.

원화 환전 목적의 김치본드 발행 규제가 완화된 지난해 6월 이후 국내 기업이 공모 방식으로 발행한 첫 사례다. 단기외채 증가와 원화 강세를 유발할 수 있다는 우려로 2011년 7월 통화당국이 규제를 강화한 이후 약 15년 만에 김치본드가 시장에 다시 등장했다.


현대카드가 발행한 김치본드의 만기는 1년이다. 발행 금리는 미국 무위험 지표금리인 SOFR(Secured Overnight Financing Rate)에 60bp(1bp=0.01%포인트)를 가산한 수준에서 결정됐다.

김치본드는 우리나라에서 달러 등 외화를 조달할 목적으로 발행되는 채권이다. 발행자가 국내 기업이든 외국 기업이든 상관없이 국내에서 발행되며, 액면금액이 외화로 표시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외국 기업이 국내에서 원화를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아리랑본드, 국내 기업이 원화를 조달하기 위해 발행하는 일반적인 원화 채권과 구분된다.

김치본드는 한때 국내 기업들이 국내에서 비교적 편리하게 달러를 조달할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됐지만, 단기외채 증가와 원화 강세를 유발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한국은행은 2011년 7월부터 국내 금융회사의 김치본드 투자를 엄격히 제한했다.

증권신고서에 기재된 투자금 사용 목적을 확인해 원화로 곧바로 환전해 국내에서 사용할 목적일 경우 투자를 금지했다.

그러나 외환시장 수급 불균형과 원화 약세 압력이 커지자 한국은행은 지난해 6월 외국환업무취급기관의 김치본드 투자를 전면 허용했다. 그 결과 김치본드가 다시 외화 조달 수단으로 부상했다.

단독 주관사인 키움증권은 이번 공모 김치본드에 대해 당국이 기대했던 '외화 자금의 국내 순환'을 실현해 환율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발행사가 김치본드로 조달한 외화는 통화스와프(CRS)를 거쳐 원화로 환전돼 국내에서 사용된다. 이 과정에서 외화가 국내 자금시장에 공급되는 효과가 발생한다.

현대카드는 "시장에서 발행이 중단됐던 김치본드를 15년 만에 재개한 것"이라며 "안정적인 유동성 확보를 위해 김치본드 발행을 추진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발행을 계기로 현대카드는 해외 달러화 표시 채권, 신디케이트론, 자산유동화증권(ABS)에 이어 외화 기반 조달 수단을 한층 다변화하게 됐다.

◆ 포스코·국책은행 잇단 외화채…달러 공급 '방패'

민간 기업과 국책은행의 외화채 발행도 잇따르고 있다.

포스코는 지난 12일 총 7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채권을 발행했다. 5년 만기물 4억달러, 10년 만기물 3억달러로 구성됐다.

포스코는 미국 국채 금리에 5년물 1.15%포인트, 10년물 1.30%포인트를 가산한 최초 제시 금리로 투자자 모집에 나섰다.

수요예측에는 아시아 67%, 유럽·중동 18%, 미국 15% 등 전 세계 180여개 기관 투자자들이 참여해 공모액의 9배가 넘는 66억달러의 주문이 몰렸다.

이에 따라 최종 가산금리는 5년물 0.75%포인트, 10년물 0.90%포인트로 각각 0.4%포인트 낮아졌고, 쿠폰 금리는 5년물 4.5%, 10년물 5.0%로 확정됐다.

무디스와 스탠더드앤드푸어스(S&P)는 포스코 채권에 각각 'Baa1', 'A-'의 신용등급을 부여했다.

포스코의 외화채 발행은 2024년 1월 이후 2년 만이다. 당시 약 5억달러를 조달하는 데 그쳤으나 이번에는 발행 규모를 크게 늘렸다. 외화채 발행에는 기존 차입금 상환과 추가 자금 조달 목적이 포함돼 있다.

포스코는 호주에서 철광석 등 원자재를 조달하고, 중국과 캐나다에서 2차전지 설비 투자를 이어가고 있어 외화 수요가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구조다.

배터리 제조사 SK온의 미국 법인 인 SK배터리아메리카(SKBA)는 이달 26일 만기가 돌아오는 달러채 회사채 7억 달러(약 1조171억원)를 갚기 위해 같은 규모의 달러채(그린본드) 발행에 다시 도전한다.

발행 규모는 해외 기관투자자들의 북빌딩(book-building)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차환 목적의 발행이긴 하지만 달러 수급에는 긍정적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평가다.

국책은행과 공공기관도 외화채 발행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이달 7일 한국수출입은행은 총 35억달러 규모의 글로벌 채권을 발행했다. 정부가 1998년 발행한 40억달러 규모 외화채를 제외하면 우리나라 외화채 발행 사상 최대 규모다.

이 가운데 10년 만기 채권은 국내 최초로 '인공지능(AI) 전환' 지원 내용을 명시해 발행됐다. 3년 만기 채권은 탈탄소·친환경 프로젝트에 활용하는 그린본드로 구성됐다.

수출입은행 관계자는 "지정학적 긴장 고조와 글로벌 통화정책 불확실성이 맞물린 어려운 시장 여건에도 5년 연속으로 새해 한국물의 첫 포문을 성공적으로 열었다"고 말했다.

한국산업은행도 올해 외화채 발행 등을 통해 94억달러를 조달할 계획이다. 이는 지난해 목표보다 6.8% 늘어난 규모다. 산업은행은 이르면 이달 말 약 30억달러 규모의 외화채를 정부·국제기구·기관(SSA) 투자자를 대상으로 발행할 예정이다.

주요 시중은행 중에서는 우리은행은 달러채, 하나은행은 유로화 커버드본드 발행을 타진하고 있다.

이 밖에 한국석유공사, 한국해양진흥공사, 한국주택금융공사, 한국가스공사 등도 1분기 외화채 발행을 준비 중이다.

안병길 한국해양진흥공사 사장은 "외화채권 조달에서 한국산업은행과 한국수출입은행 같은 경쟁력 있는 금리로 자금을 조달해서 한국 해운·물류업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 국민연금도 가세하나?…정부도 외평채 확대

자본시장에서는 국책은행과 공공기관을 중심으로 한 외화채 발행이 2분기 이후 민간 기업으로 더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금융센터에 따르면 외화채 발행 규모는 2019년 343억달러에서 2023년 530억달러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600억달러를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올해는 720억달러까지 확대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외화채 물량만 645억달러에 달한다.

정부도 외화채를 통한 외화 조달에 적극적이다. 외국환평형기금채권(외평채) 발행 한도는 지난해 14억달러에서 올해 50억달러로 3.5배 확대됐다.

외평채는 정부가 직접 발행하는 외화 표시 채권으로, 외국 투자자로부터 달러를 조달해 외환보유액으로 쌓아두고 환율 급등 시 시장에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국민연금도 해외 투자에 필요한 달러를 외화채 발행으로 조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시장에서는 환율 안정에 유의미한 효과를 내기 위해 최소 50억달러 이상의 외화채 발행이 필요하다는 관측이 나온다.

보건복지부는 관련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한 절차에 착수했으며, 오는 4월 연구용역이 마무리되면 윤곽이 드러날 전망이다.

다만 국민연금법 개정과 신용평가 확보, 주관사 선정, 투자자 대상 IR 등 준비 절차가 남아 있어 실제 발행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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