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새벽 2시 베이징 하이뎬구 룽커정보센터 C동에 있는 딥시크 연구센터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딥시크의 연구직 상당수는 센터 인근 8개 명문대 출신 인재들이다. 베이징 테크 업계 관계자는 “딥시크가 연초부터 밤샘 작업을 하며 더 빠르고 가벼운 ‘중국형 AI 모델’을 개발 중”이라고 했다./베이징=이벌찬 특파원 |
15일 밤 징항대운하를 바라보는 중국 항저우의 딥시크 본사도 야근 중이었다. 딥시크 연구진은 최근 베이징대와 공동으로 AI 모델의 '기억(메모리 저장)'과 '계산'을 분리하여 정보를 효율적으로 불러오는 기술인 '엔그램(Engram)'을 소개했다./항저우=이벌찬 특파원 |
지난 15일 오후 5시 반 중국 항저우의 후이진(匯金) 국제빌딩. 퇴근 시간이 되자 사무실 전등이 하나둘 꺼졌다. 그런데 밤 9시가 넘어도 유독 환하게 빛나는 층이 있었는데, AI 스타트업 딥시크 본사가 입주한 12층이었다. 딥시크 전체 직원 200여 명 중 40명가량이 상주하며 인공지능(AI) 제품 개발과 운영, 영업을 맡고 있다. 건물 뒤편에서 캠핑카를 고쳐 두피 마사지 가게를 하는 사장은 “늦은 밤까지 머리 쓰는 딥시크 직원을 겨냥해 밤 9시 30분까지 영업한다”고 했다.
16일 새벽 2시 베이징 룽커정보센터 C동 5층도 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 룽커정보센터는 중국 최고 이공계 대학인 칭화대 정문에서 걸어서 7분 거리에 있는 건물로 애플 등 글로벌 빅테크 사무실이 입주한 곳이다. 5층에는 딥시크 연구원 160여 명이 근무하는 연구센터가 있다. 현장 경비원은 기자 출입을 저지하며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을 절대 방해하지 말라는 별도 지시가 있었다”고 했다.
15일 밤 항저우 딥시크 본사 앞의 바퀴 달린 두피 안마 가게. 58위안(약 1만2000원)을 내면 35분간 두피 안마를 받을 수 있다./이벌찬 특파원 |
16일 딥시크 베이징 연구센터 야경./이벌찬 특파원 |
직원 200명이 전부인 딥시크가 초가성비 AI 모델 ‘R1’으로 전 세계를 충격에 빠트린 지 1년이다. 그사이 딥시크는 ‘더 싸고, 더 빠르고, 더 똑똑한 AI를 누구나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입증하며, 미국 빅테크가 이끌던 AI 패권에 균열을 냈다. GPU(그래픽처리장치)를 많이 꽂는 물량 공세보다 소프트웨어 최적화, 알고리즘의 효율성이 더 중요하다는 화두를 던졌다. 전 세계 AI 개발자들이 고성능 AI 모델을 무료(오픈소스)로 쓰게 되면서 AI 인프라가 부족한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중국의 ‘AI 일대일로(一帶一路)’의 선봉장이 됐다.
딥시크 항저우 본사와 베이징 연구센터는 중국 남북을 잇는 천년 수로 징항(京杭) 대운하 양끝에 자리 잡고 있다. 이 때문에 테크 업계에선 “연초부터 야근을 반복하는 딥시크가 중국 AI 대운하를 설계 중”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날 딥시크 본사 앞에서 만난 테크 업계 관계자는 “밤새 연구에 매진하는 딥시크는 ‘중국식 AI’의 표준을 세우는 길잡이”라며 “그 길 위에 알리바바·미니맥스·지푸 등 중국 AI 업체들이 시장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고 했다.
◇“중국 AI 대운하 설계 중“… 딥시크 본사 12층에 핵심 두뇌 24시간 상주
딥시크의 공식 사명은 ‘딥시크 인공지능(AI) 기초 기술 연구 유한공사’다. 중국 테크 업계에선 딥시크 사명에 ‘기초 기술 연구’가 들어간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본다. 중국 AI 연구의 대표 선수이자 근간이라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항저우 본사는 징항(京杭)대운하 본류 강변에, 베이징 연구거점은 운하 베이징 구간인 퉁후이허 수계 흔적이 남은 하이뎬구(區)에 자리 잡고 있다. 딥시크가 중국 남북을 잇는 천년 수로 양끝에서 'AI 대운하'를 새로 설계하는 듯한 모습이다. 사진은 15일 항저우 딥시크 본사./이벌찬 특파원 |
실제로 작년 1월 R1을 출시한 후 딥시크는 중국 대표 AI 기업으로 부상했다.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는 작년 1월 중국 리창 총리가 주재한 정부 좌담회에 참석했는데, 참석자 중 유일한 AI 엔지니어였다. 중국 AI 업계를 대표한 것이다. 그는 이 자리에서 중국 AI 발전과 미국 엔비디아 칩과 관련한 의견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작년 2월엔 마화텅 텐센트 창업자,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 런정페이 화웨이 창업자 등과 함께 베이징에서 열린 심포지엄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났다. 한 달 사이 중국 일인자와 이인자를 모두 만난 것이다. 테크모트 컨설팅의 제프리 타우슨 매니징 파트너는 “이는 중국이 미·중 전략 경쟁 상황에서 AI 산업을 국가 전략의 최우선 순위에 두고 있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했다.
딥시크는 중국 내 높은 연봉을 내걸며 우수 인재를 흡수 중이다. 딥시크의 핵심 연구 인력 대부분이 중국 대학교가 배출한 젊은 인재들이다. 임직원 연령대는 20~30대 초반으로 알려졌다. 특히 딥시크는 밤낮없이 일하는 근무로 유명하다. 테크 업계에선 “딥시크가 일주일에 100시간 일할 수 있는 젊은 인재만 뽑는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15일 오후 중국 항저우시의 AI 산업 단지인 튜링 마을에서 상업 구역 공사가 한창이다. ‘완공 후 가동’ 공식을 뒤집은 튜링 마을은 2024년 AI 데이터센터를 먼저 개방했고, 쇼핑몰·아파트 등이 들어서는 상업·생활 시설은 올해 공사를 마무리할 예정이다. 중국 전역에 AI 데이터센터만 250곳에 달할 정도로 AI 인프라가 탄탄하다./이벌찬 특파원 |
딥시크가 작년 2월 중국 현지 채용 사이트에 낸 공고에 따르면, 딥시크 대형언어모델(LLM) 핵심 기술 개발을 담당할 연구원은 최고 연봉이 154만위안(약 3억2600만원)에 달한다. 기타 개발 엔지니어 연봉은 56만위안(약 1억1900만원)에서 126만위안(약 2억6700만원)으로 알려졌다. 이는 화웨이, 텐센트 같은 중국 빅테크 월급보다 많은 수준이다. 량원펑은 2023년 중국 매체와 한 인터뷰에서 “딥시크 개발자 대부분이 대졸 신입이거나 AI 업계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단기 목표를 추구한다면 경험 있는 사람을 고용하는 것이 옳겠지만, 장기적으로는 기본적인 기술과 창의성, 열정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딥시크는 자금난에서도 자유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량원펑은 중국 퀀트 헤지펀드인 ‘하이플라이어’를 공동 소유하고 있는데, 하이플라이어는 작년 한 해 56.6% 수익률로 중국 10대 대형 헤지펀드 운용사 중 2위에 올랐다. 량원펑은 이렇게 벌어들인 자금을 딥시크에 투자하고 있다. 딥시크는 다시 한번 세계를 놀래킬 준비 중이다. 량원펑 딥시크 창업자를 포함한 연구진은 최근 베이징대 연구진과 공동으로 고성능 메모리 의존에서 벗어나 정보를 효율적으로 불러오는 기술을 발표했다. 인간이 이미 익숙한 지식은 새롭게 추론하지 않고 즉각적으로 불러오는 방식을 AI에 적용한 것이다. 베이징의 테크 업계 관계자는 “조만간 이 기술을 적용한 딥시크 차세대 모델이 발표돼 ‘제2의 딥시크 쇼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항저우·베이징=이벌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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