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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칼럼] 나라에 지도자가 없다

조선일보 김대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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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천에 용은 없고
미꾸라지만 득시글한
한국 리더십의 비극

인성·지도자 훈련 不在
치졸한 권력 보고 있으면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다
윤석열(왼쪽)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조인원 기자

윤석열(왼쪽) 전 대통령과 이재명 대통령. /연합뉴스·조인원 기자


87년 체제 이후 8명의 대통령이 있다. 민주화에 직접 기여한 김영삼·김대중을 빼고 나머지 6명의 대통령 중 한 사람은 자살했고 세 사람은 감옥에 갔거나 갈 처지에 있고 나머지도 사법적 리스크에 걸려 있다. 이 모두가 본인 또는 배우자의 금품 수수 등 부정행위에 기인한 것이다. 무엇이 문제일까? 시스템일까. 사람일까? 전문가들은 권력 구조의 비대, 양극화, 지역화 등등 여러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지도자의 결격 등 인성(人性)의 문제였다. 즉 지도자의 자질이 부족했고 지도자 훈련이 여의치 않았던 탓으로 보고 싶다.

세계 선진국을 보면 지도자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 교육과 훈련으로 만들어진다. 지도자의 사회적 역할, 공공 복무의 성실, 사적(私的) 욕구의 억지, 무엇보다 나라의 미래에 대한 성찰, 국민에 대한 책임 의식.... 이런 것들을 배우고 터득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것을 위해 그 나라들은 교육기관을 만들었다. 영국의 이튼, 해로우 스쿨과 옥스퍼드, 케임브리지 대학, 미국의 하버드·예일을 비롯한 아이비리그 8 대학, 일본의 동경대학 등 명문대는 그 나라의 인재들을 길러내는 지도자 양성소다. 일본에는 대학 말고도 마쓰시타 정경숙이라는 지도자 양성소가 따로 있을 정도다. 이들 나라의 대통령, 총리 등 정치지도자들은 거의 이 학교를 나왔다고 보면 된다.

우리에게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런 지도자 양성 학교도 없고 그런 전통도 없다. 따라서 그런 지도자도 배출하지 못했다. 정치권에는 그저 돈 먹고, 사람들 종 부리듯 하고 여기저기 이권 챙기는, 그래서 위로 상납하고 출세하는 사람들이 즐비하다. 출세한 사람 중에 국가를 위해 희생하기는커녕 국민의 의무인 군대를 기피한 사람도 여럿이다. 남의 돈을 먹고 부정한 인사(人事)를 하고 거짓말을 하고 사실은 숨기는 등, 일반인도 해서는 안 될 파렴치한 행위들이 대통령 주변에 거론되는 것은 너무도 후진적이고 부끄러운 일이다.

우리는 ‘개천에서 용(龍) 난다’는 말을 좋아한다. 어려운 역경을 딛고서 마침내 높은 위치로 나아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하지만 개천에서 곧바로 용이 날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개천에서 용이 날아오르기까지는 인내와 고통과 노력과 훈련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특히 그 용이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관리하고 사회와 국가의 존망을 책임지는 자리를 가리키는 것이라면 개천에서 그냥 용이 나와서는 안 된다. 개천이 시내가 되고 시내가 강이 되고 강이 바다로 가는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용이 될 수 없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개천의 미꾸라지가 곧바로 바다의 용이 되는 일을 우리는 지난 30여 년간 겪었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그것을 답습하며 싸우고 있다.

우리는 여전히 걸출한 지도자에 목마른 시대를 살고 있다. 4건의 사법적 소추에 걸려 있는, 그래서 임기가 끝나면 어떤 법적 제재가 작동할지 모르는 리스크를 안고 있는 현직 대통령이 있고, 같은 시각에 법정에 끌려다니며 ‘내란’이라는, 대통령으로서는 절대 받아서는 안 되는 그런 범죄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는 전 대통령이 한 공간에 동시에 존재하는 부끄러운 시대에 살고 있다. 이것이 21세기 대한민국 리더십의 현장이다. 대한민국이란 존재의 가치가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가라는 생각에 이르면 어디 쥐구멍에라도 기어들어 가고 싶은 심정이다.

야당은 권력을 빼앗기고도 모자라 지금 박힌 돌과 굴러온 돌 간의 치졸한 싸움에 여념이 없다. 하도 리더십이 없어 굴러온 돌로 간신히 명맥을 이어왔는데 불이 꺼지자 이제 박힌 돌이 굴러온 돌을 몰아내는 싸움에 여념이 없다. 하긴 굴러온 돌끼리 싸움도 허접스럽기는 마찬가지지만…. 여기서도 지도자의 금도는 온데간데없다. 집권당도 지금은 덮어두고 있지만 권력의 기운이 쇠잔해지면 그곳 역시 굴러온 돌과 박힌 돌 간의 알력이 되살아날 것이다.


이 모두가 이 나라에 진정한 리더십이 없어서다. 지금 세계는 2차 대전 이후 80년을 지탱해 온 얄타 체제가 허물어지고 미국·중국·러시아의 3극(極) 체제가 꿈틀거리고 있다. 건국 이래 최대의 발전을 누렸던 한국은 불행히도 하향 곡선 쪽에 진입하고 있다. 한국의 번영과 안보는 점차 안개 속으로 들어가고 있다. 이런 시기이기에 나라를 이끌어갈 혜안의 지도자가 절실하다. 국내적으로는 이견과 대립을 절충하며 공존으로 나아가는 지도력, 어느 한쪽의 맹장이 되기보다 국민의 이익을 살피는 타협의 덕장이 절실한 시기다. 우리는 지도자들이 사법적 대상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용이 아니라 미꾸라지 세상에서 언제까지 헤매야 하나?

[김대중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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