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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규칼럼] 李 통합 행보가 공감 못 얻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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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출신 발탁하며 ‘국민대표’ 자처
기조 바꾼 외교로 호평받았지만
국내 현안에선 여당 편들기 일쑤
지지자에 갇히면 ‘정파적 지도자’
이재명 대통령은 기회 될 때마다 통합을 외친다. 이제는 야당 대표가 아닌 ‘국민의 대표’라면서 ‘파란색’(민주당 상징색)만 챙기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반복적으로 발산한다. 야당 출신을 발탁하는 탕평 인사도 했다. 그런데도 ‘정파적’이라는 꼬리표는 좀체 사라지지 않는다. 대통령실은 서운할 수 있겠지만, 불신을 키워온 정치의 업보다. 레토릭을 넘어선 통합 행보가 필요하다. 쉬운 일은 아니다. 그런 통합은 십중팔구 여당과 지지자의 반발을 부른다.

‘정당 민주주의’ 국가의 대통령은 태생적으로 정파적이다. 정파의 지도자로 후보가 돼서 정파적 공약을 내걸고 당선된다. 취임사에서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했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무당파’ 국민 대통령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선거 공약을 이행하고 다음 선거에서 국민의 평가를 받아야 하는 책임 정치의 관점에서도 그렇다. 총선 패배로 소수파 대통령이 된다면 당장 정책 하나 입법화하기 힘들고 ‘식물 대통령’ 신세가 된다. 선거에서 국민에게 위임받은 정책을 성공시키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은 여당과 손을 잡을 수밖에 없다.

조남규 논설실장

조남규 논설실장

동시에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이다. 국민의 대표이자 정파의 지도자라는 두 개의 페르소나는 충돌한다. 대통령은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 이 대통령이 지난주 여야 지도부 오찬 간담회에서 “이제는 전 국민을 대표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고 말하던 시점에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결사반대한 ‘2차 특검법’을 강행 처리했다. 대통령이 ‘통합’ 책무를 맡긴 이석연 국민통합위원장도 만류한 법안이다. 국민의 대표라면 거부권을 행사해야 하고, 정파의 지도자라면 공포해야 한다. 실리와 명분 사이의 선택이다. 국민은 대통령의 말 대신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

정상외교 과정에서 이 대통령은 국민의 대표다웠다. 야당 대표 시절 우방 미국과 일본을 향해 거친 언사를 쏟아냈던 이 대통령이 맞나 싶을 정도였다. 일본 공영방송 인터뷰에서 “야당의 정치인일 때와 국가의 운명을 책임지는 국가 지도자의 입장에 있을 때하고는 또 다른 것 같다”고 했다. 말뿐이 아니었다. 이 대통령은 박근혜정부의 ‘일본군 위안부 합의’와 윤석열정부의 ‘강제동원 제3자 변제 방안’을 뒤집지 않았다. 놀랐다는 보수 인사들이 많다. 일본 언론도 “전임 정부의 한·일 합의를 뒤엎곤 했던 역대 진보정부와 다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방미 기간에 “이제 과거와 같은 ‘안미경중(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의 입장을 유지할 수 없게 됐다”고 한 발언은, 친중국 성향의 진보 진영 인사들을 당황케 했다. 필자는 이 칼럼에서 단기적 실익만 따지는 듯한 ‘실용 외교’라는 표현을 쓸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을 했지만, 무슨 용어로 부르든 이 대통령의 ‘변신’은 박수를 받을 일이다. 지지층도 이 정도의 변신은 용인하는 분위기다.

국내 현안에선 달랐다. 강성 지지층은 대통령도 봐주지 않는다. 이른바 ‘명·청 대전’으로 부르는 이 대통령과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갈등 이면에는 이 대통령과 지지 세력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숨어있다. 몇 차례 갈등 국면이 있었지만, 이 대통령은 그때마다 물러섰다. 사실상 이 대통령이 추인한 정부의 공소청·중수청(중대범죄수사청) 법안도 그런 식으로 흘러가고 있다. 지지층이 반발하자 이 대통령은 “당이 숙의하고 정부가 그 의견을 수렴하라”고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지지 세력을 배반하는 결정을 내리곤 했다. “반미면 좀 어떠냐”고 했던 노무현이었지만, 미국의 이라크 전쟁 파병 요청을 받아들이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했다. 여권이 분열하면서 정치적으로 손해를 봤지만, 국익에는 도움이 됐다. 그는 지지층의 비판에 “나의 결정은 대한민국의 운명과 직결되어 있다. 그때와 지금은 다르다. 지금의 나는 달라졌다”고 토로했다(윤태영, ‘기록’). 이 대통령도 국익과 지지 세력의 요구가 부딪치는 상황이 되면 노무현의 토로를 곱씹어 봐야 한다. 국내 현안만이 아니다. 미·중 패권갈등 와중에 우리는 언제든 운명이 걸린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 있다. ‘국민의 대표’가 되려면 때론 지지자와도 맞서야 하고 정치적 손해도 감수해야 한다.

조남규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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