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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의 인물과 식물]강희안과 소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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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구포신(除舊布新), ‘옛것을 없애고 새것을 펼친다’는 뜻이다. 새해 초 정치계나 경제계에서 즐겨 쓰는 사자성어로 공자 <춘추>의 주석서 <춘추좌전>에 나오는 글귀다.

제구포신과 비슷한 뜻의 ‘제구양신(除舊養新)’이라는 글귀는 강희안의 <양화소록>의 ‘노송’에 등장한다. 세종대왕의 이종조카이자 집현전 학자였던 강희안은 뛰어난 학자였음에도 자신의 능력을 내세우지도 않고, 인맥을 통해 권력을 취하려 하지도 않았다. 그런 그의 취미는 꽃 기르기였다. 그는 <양화소록>에 총 16종의 식물을 서술했는데, 늙은 소나무를 맨 앞에 내세웠다. 백목지장인 소나무를 그만큼 중시했던 모양이다.

강희안은 선비와 어리석은 하인의 이야기를 소개하며, 노송을 가꾸면서 얻은 깨달음을 설명한다. 하루는 하인이 아침에 선비를 알현하러 왔다가, 칭찬받고자 그가 기르던 소나무 등걸의 마른 가지를 잘라내고 껍질을 벗겨내어 손에 쥐고 선비를 기다렸다. 그걸 본 선비가 그 이유를 묻자, 하인은 ‘옛것을 제거해 새것을 기르려 한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답했다. 그러자 선비는 ‘네모난 지팡이를 깎아 둥글게 만들고, 구리 화병 골동품을 씻어 하얗게 한다더니 이를 두고 한 말이로구나’라고 너그럽게 답하며, 더 이상 꾸짖지 않았다고 한다.

강희안은 이 고사 말미에 ‘신하가 재상에 오르면, 모두 경솔하게 옛 법을 개혁하고자 한다’면서, ‘아침에 만든 법을 저녁에 다시 고쳐 옛 법이 남아 있는 것이 없게 되고, 국가는 그 때문에 위태롭게 되었다’고 덧붙인다.

그는 식물을 기르면서 눈에 보이는 아름다움에만 매몰되지 않았다. 사물에 대한 애착이 과해 그 뜻을 잃게 되는 완물상지가 아니라, 그 속에서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깨닫고자 한 관물찰리를 추구했다. 그는 소나무를 기르는 선비와 하인의 일화를 통해 낡은 폐단을 급하게 고치려 하다가 오히려 그르치게 된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며, 제구양신 속의 숨은 뜻을 경계하려 했다.

소나무는 매년 새잎만 돋아나 늘 푸른 것이 아니다. 예전의 잎도 함께 달려 있다. 새로 난 잎은 최소 3~4년은 가지 끝에 달려 있다가 ‘옛것’이 되어 떨어진다. 모든 솔잎이 매년 떨어지고 새로 난다면 그것이 어찌 늘 푸른 소나무가 될 수 있겠는가.


세상이 잠시도 멈추지 않고 끊임없이 흘러가며 변하는 ‘변동불거(變動不居)’의 시대일수록 조석변개하며 서둘러서도 안 된다. 옛것의 의미와 새것의 폐단을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할 때이다.

이선 한국전통문화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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