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파이낸셜뉴스 언론사 이미지

"그 여자 집에 들이지 말았어야"… 37년 통한의 세월[잃어버린 가족찾기]

파이낸셜뉴스 윤홍집
원문보기
물 한잔 달라며 집 들어와 딸 소희 데려가
허망하게 아이 잃고 엄마는 평생을 자책
늦게라도 아이에게 가족 존재 알렸으면


"조금만 더 의심했어도 딸을 잃지 않았을 텐데. 평생 후회하며 죄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이자우씨는 30여년 전 실종된 딸 한소희씨(현재 나이 37세·사진)를 떠올리며 이같이 말했다. 실종 당시 생후 7개월에 불과했던 한씨는 어느덧 서른일곱 성인이 됐을 만큼 시간이 흘렀다.

한씨는 1989년 5월 18일 실종됐다. 사건 당일, 모녀는 경기 수원시 남창동 자택에 있었고,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평온한 일상이 깨졌다.

이씨가 밖으로 나가보니 키가 작은 낯선 여성이 서 있었다. 이 여성은 우유 보급소에서 나왔다며, 자신의 돈을 떼어 간 '진영이 엄마'를 찾고 있다고 말했다.

이 여성은 대뜸 이씨에게 "물 한 잔만 달라"며 집 안으로 들어왔고, 마루에 걸터앉아 한씨에게 관심을 보였다. 그는 "자신도 소희만 한 아이가 있는데 시어머니에게 맡겼다"고 말했다.

이씨는 불안감을 느꼈지만 차마 여성을 내쫓지 못했다. 물을 내어준 뒤 저녁 준비에 나섰고, 잠시 후 돌아보니 딸은 사라진 상태였다. 해당 여성이 한씨를 안고 달아난 것이다.


당황한 이씨는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다. 여성을 쫓지 못하고 남편에게 전화해 딸의 납치 소식을 알렸다. 남편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했지만 한씨의 행방은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동네 주민들은 해당 여성이 한씨를 데려가는 것을 목격했으나, 이씨의 신발을 신고 있어 친척으로 오인했다고 진술했다. 이씨는 "그 여자를 집에 들이지만 않았어도, 소희를 안고 도망칠 때 쫓아가기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며 "허망하게 딸을 잃었다는 생각에 평생을 자책하며 살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와 가족들은 한씨를 찾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다녔다. 전단지를 돌리고 방송에도 나가 수많은 제보를 받아봤지만 모두 한씨가 아니었다.

이씨에게 남은 희망은 한씨가 스스로 유전자 검사를 통해 친모를 찾는 것이다. 다만 실종 당시 한씨 나이가 너무 어려 자신의 출생 배경을 알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


이씨는 "소희를 데려간 여성이 뒤늦게라도 잘못을 뉘우쳐 친모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으면 좋겠다"라며 "딸이 어딘가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는지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더 바랄 게 없다"고 말했다.

이씨의 남편은 딸이 실종된 이후 단 한 번도 아내를 원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이씨도 남편 덕에 마음을 다 잡고 일상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실종 가족의 상당수가 갑작스러운 불행을 견디지 못해 갈라서는데, 이를 극복한 것이다.

이씨는 "애 아빠가 마음속으로는 얼마나 나를 원망했겠나"라며 "하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막말을 하지 않았고 늘 나를 위로해 줬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이어 "어느 날은 집 앞에 나가보니 남편이 전봇대를 치면서 울고 있더라"며 "그때 남편을 보며 나도 마음을 다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이씨는 딸이 스스로를 버림받았다고 여기지 않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그는 "보육원에서 아이들을 만나보면 부모가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며 "소희가 부디 나쁜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banaffle@fnnews.com 윤홍집 기자

Copyrightⓒ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친명, 반명 갈라치기
    친명, 반명 갈라치기
  2. 2트럼프 그린란드 병합
    트럼프 그린란드 병합
  3. 3임성근 음주운전 논란
    임성근 음주운전 논란
  4. 4이민성 감독 한일전
    이민성 감독 한일전
  5. 5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연말정산 간소화 서비스

파이낸셜뉴스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