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AP 연합뉴스 |
아시아투데이 정리나 하노이 특파원 = 페르디난드 마르코스 주니어 필리핀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19일(현지시간) 하원에 공식 접수됐다. 집권 4년 차에 접어든 마르코스 정권이 전임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긴 결정이 '정치적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모양새다.
이날 로이터와 현지매체 등에 따르면 앙드레 드 제수스 변호사는 마르코스 대통령이 공공의 신뢰를 배신하고 헌법을 위반했다며 하원에 탄핵 소추안을 제출했다. 제수스 변호사는 탄핵안에서 마르코스 대통령이 전임자인 로드리고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체포해 네덜란드 헤이그의 ICC 법정에 세운 것을 두고 "납치 행위를 방조한 것"이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앞서 필리핀 당국은 지난해 3월, '마약과의 전쟁' 당시 자행된 수천 건의 초법적 처형 혐의로 두테르테 전 대통령을 체포해 ICC로 이송한 바 있다. 탄핵안 발의자 측은 이를 주권 침해이자 전임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보복으로 규정하며 마르코스 대통령의 국정 수행 자격을 문제 삼았다. 제수스 변호사는 현지 라디오 DZRH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번 탄핵 발의는 대통령과 내각이 답변을 거부해 온 문제들을 필리핀 국민이 직접 심판할 길을 열어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탄핵안에는 두테르테 이슈 외에도 △마르코스 대통령의 예산 집행 불투명성 △홍수 통제 프로젝트와 관련된 뇌물 수수 의혹 △마약 투약 의혹에 대한 해명 거부 등이 탄핵 사유로 포함됐다.
이에 대해 필리핀 대통령실은 즉각 성명을 내고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며 의회가 정직과 성실, 법치에 따라 의무를 다할 것으로 믿는다"고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대통령실은 이어 "이러한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도 대통령은 국정을 흔들림 없이 수행할 것"이라며 "공공 서비스 중단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필리핀의 탄핵 제도는 한국과 달리 일반 시민의 참여를 폭넓게 인정한다. 헌법상 시민 누구나 탄핵을 소추할 수 있으나, 이를 정식 안건으로 상정하기 위해서는 현직 하원의원의 보증이 필수적이다. 이번 소장은 야당인 푸송 피노이당 소속 제니 니세이 하원 부소수당 원내대표의 보증을 받아 정식 안건
요건을 충족했다.
주목할 점은 니세이 의원의 이력이다. 그는 최근 독립 인프라 위원회가 지목한 기소 권고 대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인물로 전형적인 '콩트랙터(Cong-tractor·의원 겸 건설업자)'로 꼽힌다. 콩트랙터란 의원 신분을 악용해 공공사업 예산을 따낸 뒤 자기 소유 건설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필리핀 정가의 부패 고리를 뜻한다.
니세이 의원은 특히 최근 마르코스 정부가 대대적인 감사를 벌이고 있는 수천억 원 규모의 '홍수 예방 프로젝트' 부실 공사 및 횡령 의혹의 핵심 연루자로 알려졌다. 현지 정가에서는 사법 처리 위기에 몰린 니세이 의원이 대통령을 향해 '방탄용 맞불'을 놓은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이번 탄핵안 발의가 지난 대선에서 손을 잡았던 '마르코스-두테르테' 연합의 완전한 붕괴를 상징한다고 분석한다. 이미 지난해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시도가 있었으나, 헌법상 1년 금지 규정에 위배된다는 대법원의 판결로 무산된 바 있다. 이번에는 화살이 마르코스 대통령을 직접 겨냥하며 양대 정치 가문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는 평가다.
다만 탄핵안이 실제 가결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중론이다. 마르코스 대통령의 사촌인 마틴 로무알데즈 전 하원의장이 최근 홍수 통제 관련 부패 스캔들에 연루되어 의장직에서 사임했으나, 하원 내 마르코스 대통령의 지지 기반은 여전히 공고하기 때문이다. 로이터는 "대통령의 동맹 세력이 여전히 의회를 장악하고 있어 탄핵 소추가 동력을 얻을지는 미지수"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임기를 약 2년 남긴 시점에서 제기된 탄핵 이슈는 마르코스 대통령의 레임덕을 가속화할 수 있다. 특히 2028년 대선의 유력 주자로 꼽히는 사라 두테르테 부통령 측이 이번 탄핵 국면을 계기로 반정부 여론을 결집할 경우, 필리핀 정국은 당분간 극심한 혼란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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