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본법은 혁신 중심의 규제 완화와 함께 국민 안전 확보를 동시에 추구한다. 정부는 최소 1년 이상의 규제 유예 기간을 두고 산업계의 혼란을 최소화하겠다는 입장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AI 기본법은 규제법이 아닌, 국가 AI 경쟁력을 위한 진흥법”이라며 “법의 상당 부분이 지원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고 설명했다.
AI 기본법은 사전 통제보다는 ‘혁신 우선’ 원칙을 내세운다. 누구나 자유롭게 AI 기술을 개발하고 서비스를 출시할 수 있도록 보장하며, 법적 근거 부재를 이유로 한 기술 차단을 막는다. 정부는 AI 전용 데이터센터 구축, 기술 표준화, 전문 인력 양성 등 산업 지원 예산을 법적으로 명문화했다.
다만 국민 생명과 안전에 직결되는 분야는 ‘고영향 인공지능(High-Impact AI)’으로 별도 분류해 관리한다. 의료기기, 에너지, 채용, 원자력 설비 등이 이에 포함된다. 해당 사업자는 위험 관리와 모니터링 체계를 갖추고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AI 생성물에 대한 ‘투명성 조항’도 포함됐다. 생성형 AI가 만든 이미지·영상·음성에는 ‘AI 생성물’임을 명시하는 워터마크를 부착해야 하며, 이는 사람의 눈에 보이는 형태뿐 아니라 기계가 인식 가능한 비가시 워터마크까지 포함된다.
AI 정책을 총괄할 국가인공지능위원회도 출범한다. 대통령이 위원장을 맡고, 민관이 함께 AI 국가 전략을 수립한다. AI의 안전성을 전문적으로 검증하는 ‘AI 안전 연구소’도 지난해 11월 문을 열었다.
정부는 시행령을 통해 AI 기본법의 구체적인 적용 기준을 보완했다. 시행령은 AI 연구·개발, 학습용 데이터 구축, AI 집적단지 지정 기준 등을 명확히 규정하며, ‘고영향 AI’ 판단 기준과 사업자의 책무를 구체화했다.
그러나 시행령 입법예고 기간(12월22일까지) 동안 산업계와 시민단체로부터 “정의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특히 ‘고영향 AI’ 범위가 명확하지 않아, 신용평가·고객 분류·채용 시스템 등 일반적 AI 서비스도 고영향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AI 기본법은 진흥 중심 법임을 내세우지만, 산업계에서는 규제 확대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AI 생성물 워터마크 의무화와 고영향 AI 관리 조항이 대표적이다. 업계에서는 “자동 번역이나 스마트폰 카메라의 AI 기능까지 워터마크를 요구하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스타트업은 특히 대응 여력이 부족하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98%가 AI 기본법 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한 것으로 조사됐다. 단 2%만이 ‘대응 계획을 마련 중’이라고 답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EU 집행위원회가 ‘디지털 옴니버스(Digital Omnibus)’를 통해 AI법 시행 시점을 유예한 점을 언급하며 “준비가 미비한 상태에서 규제를 밀어붙이면 기업에 불확실성을, 정부엔 집행 리스크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정부는 과태료 등 처벌 조항의 집행을 최소 1년 유예하기로 했다. 다만 인명사고, 인권 침해 등 사회적 피해를 초래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사실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지난해 12월30일 국회를 통과한 AI 기본법 개정안도 1월22일 함께 시행된다. 개정안은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개편 ▲AI연구소 설립·운영 ▲공공 분야 AI 수요 창출 ▲AI 창업·전문인력 지원 ▲AI 취약계층 지원 근거 마련 등을 담았다.
그러나 개정안의 일부 핵심 정책은 시행령 개정이 필요해 공포 후 6개월 뒤에야 효력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산업 진흥 정책이 법 시행과 엇박자를 낼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법과 시행령 개정이 동시에 이뤄지며 현장 혼란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AI 기본법을 ‘완결된 규제’가 아닌 ‘시작점’으로 본다. 임문영 대통령직속 국가인공지능전략위원회 부위원장은 “AI 사회는 우리가 경험하지 못한 영역”이라며 “법 시행 자체를 늦추는 것보다, 시행 후 문제를 수정·보완하며 제도를 안착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처럼 AI 기본법은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지속적으로 개정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산업계·시민단체·학계가 참여하는 연구반을 구성해 제도 개선 방향을 논의하고, AI 집적단지 및 전문인력 지원책도 병행 추진한다.
특히 AI 기본법의 시행은 한국이 세계 AI 거버넌스 논의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다만 규제 명확성, 행정 부담, 산업 경쟁력 간 균형을 어떻게 맞추느냐가 향후 성패를 가를 핵심 변수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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