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와 인터뷰하는 혜빈 제임스 존스턴 동신대 교수 |
(나주=연합뉴스) 박현수 기자 = "한국화는 붓 하나로 얼마나 다양하고 특별하게 그릴 수 있는지 연구하는 거라고 봐요. 마치 태권도처럼요. 모든 동작에 의미가 담겨 있고, 그 자체가 시적이죠."
미국 텍사스 출신 혜빈 제임스 존스턴 동신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한국 전통미술에 푹 빠진 사연이 화제다. 최근 전남 나주시 작업실에서 만난 제임스 교수는 한국화 특유의 매력을 이렇게 설명했다.
제임스 교수는 "서양화에서는 기본적으로 물감을 붓에 묻혀 캔버스에 올리지만, 수묵화는 모든 동작에 의미가 담겨 있다"며 "붓을 잡는 방식에도 의미가 있고, 수묵화가 서예나 시 쓰기와 함께 발전하면서 시적인 특성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 생활 15년째인 그는 한국인 아내와 결혼해 나주에 정착했다. 미술을 좋아하던 그가 본격적으로 한국화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강진 민화박물관 방문이었다. 당시 큐레이터가 그가 이해할 수 있도록 한국어로 천천히 민화의 의미와 다양한 작품 유형의 배경을 설명해줬다.
"점점 더 궁금증이 커지기 시작했어요. 유튜브 영상도 보고, 박물관이나 미술 전시회도 많이 다녔죠."
수묵화 그리고 있는 제임스 교수 |
나주시의 문화 강좌 무료 수강 제도를 통해 백은영 한국화 화가를 만난 것이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백 화가로부터 4년째 수묵화와 민화를 배우고 있는 그는 "선생님께서 먼저 수묵화를 소개해 주시고, 제가 민화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아시고는 추가로 강사를 초빙해 특별 강의를 마련해 주셨다"고 말했다.
제임스 교수는 백 화가로부터 그림 기법뿐만 아니라 미술 전시회를 여는 방법까지 배웠다. "미술 협회에 가입하도록 권유해 주고, 전시회 신청 방법도 설명해 주셨어요. 그게 첫걸음이었던 것 같아요."
이후 제임스 교수는 나주, 광주, 베를린 등 여러 곳에서 전시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0월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16회 광주국제아트페어'에도 참가했다. "전 세계에서 온 예술가들과 관람객들이 모여서 정말 좋은 경험이었죠. 백 선생님이 제 작품을 먼저 소개해 주시면, 저도 한국어로 제 작품을 설명하려고 애썼는데 정말 어려웠어요."
외국인이 한국 미술을 배운다는 점에서 많은 관람객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조금씩 용기를 내야겠다고 생각한다"며 "최선을 다하고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교수와 백은영 화가 |
제임스 교수가 한국화에서 가장 매력을 느끼는 부분은 움직임의 포착과 여백의 미학이다. "한국 미술 작품은 사람이나 자연, 나무의 움직임을 포착하는 게 놀라워요. 그리고 한국 예술가들이 단단한 물체에서 안개나 구름으로 자연스럽게 전환하는 게 정말 대단하죠."
그는 또 "붓질 몇 번이면 배경에 사람이 뚝딱 그려지는 게 신기하다"며 "태권도에서 몸을 쓰면서 모든 동작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만들지 생각하는 것처럼, 한국화도 똑같다"고 강조했다.
김홍도 미술관을 방문했을 때 본 풍속화는 그에게 특별한 영감을 줬다. "김홍도가 원근법을 연습한 작품 중에 사람들이 밖에서 시험 보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 있었는데, 우산이 많이 그려져 있더라고요. 그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비슷한 구도로 한국 축제 장면을 그려보려고 해요."
현재 그는 주로 민화 작업을 하고 있다. 작품의 소재는 세 가지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했다. 첫째는 자신의 일상 속에 있는 것들이다. 둘째는 책가도(冊架圖)나 모란꽃 같은 전통 작품들이고, 셋째는 아내의 조언이다. "아내 말을 잘 들어요. 아내가 아름다운 것들, 꽃 같은 것들을 많이 그리라고 격려해주거든요."
'제16회 광주국제아트페어'에 출품한 작품들 |
인터뷰에 자리를 함께 한 백 화가는 제임스 교수의 화풍에 대해 "기본적인 사군자부터 산수도를 가르쳐주는데, 본인의 개성에 따라 그림이 탈바꿈한다"며 "먹색에 대해 굉장히 심층적으로 연구하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특히 제임스 교수가 그린 현대적 책가도에 대해서는 "애장하는 슈퍼맨 인형, 자동차 키, 사군자가 들어 있는 병풍을 그렸는데, 하나하나 보면 다 연결된 공통점이 있더라"며 "전통 민화를 습득한 다음 자기만의 민화로 재구성하는 재능을 가졌다"고 말했다.
백 화가는 "처음엔 제가 가르쳤지만, 사실은 함께 그림을 하는 동료라고 생각한다"며 "굉장히 재미있는 발상들을 가져와서 그림을 그리는 걸 보면 저도 굉장히 재미있고, 함께하는 기쁨이 있다"고 덧붙였다.
제임스 교수는 최근 영암의 무화과를 주제로 한 작품을 완성했고, 창조미술협회 전시도 계획돼 있다. 그는 "제 목표는 뭔가 대단한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계속 발전하고, 가능한 한 아름다운 그림을 많이 그리는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제가 한국 문화에 대해 느끼는 애정이 작품에 담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제임스 교수 대표작 '나주 곰탕' |
다문화 사회로 변화하는 한국에 대해 그는 "요즘 만나는 예술가들이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말을 걸어주고 평범한 사람처럼 대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인들이 외국인과 교류할 때 한국어로 천천히 말하되 쉬운 단어를 쓰면, 새로운 우정도 많이 생기고, 외국인들이 한국에 대해 더 많이 배우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제임스 교수는 "백 화가는 그림뿐만 아니라 한국에 대해서도 많은 걸 가르쳐 줬고, 나주가 제 고향처럼 느껴지도록 도와주셨다"며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중에서 가장 친절한 분"이라며 고마움을 잊지 않았다.
phyeons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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