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그린란드 병합 계획 반대 유럽 국가에 관세 위협 ⓒ 로이터=뉴스1 ⓒ News1 류정민 특파원 |
(서울=뉴스1) 이창규 기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를 차지하기 위해 관세 카드까지 꺼내 유럽을 압박하면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49년 창설돼 75년 넘게 유지돼 온 나토 동맹이 창설 이래 가장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
유럽 국가들은 지난해 트럼프 취임 후 우크라이나 전쟁과 무역 전쟁 등으로 갈등을 겪기도 했으나, 비판을 자제하면서 미국과의 관계를 관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을 위해 관세 부과까지 꺼내들자 유럽 내에서도 더는 좌시할 수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그린란드에 병력을 파병한 유럽 8개국에 대해 2월부터 10% 관세를, 6월부터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영국, 핀란드가 덴마크가 주관하는 '북극의 인내 작전'에 파병할 뜻을 밝힌 것에 대한 대응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1기 때부터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였다.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고 안보를 강화한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유럽 8개국은 트럼프 대통령의 우려를 해소하고, 북극 지역에 대한 관리 및 감시를 강화하기 위해 병력을 파병했지만,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을 자극했을 수 있다고 뉴욕타임스(NYT)는 분석했다.
유럽 8개국은 공동성명을 통해 이번 파병이 "누구에게도 위협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유럽에 대한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장관이 NBC 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미국의 국가안보와 우리 반구의 안보를 다른 나라에 위탁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유럽의 안보 강화 조치와는 관계없이 미국이 그린란드를 차지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드러낸 것이다.
유럽에서는 트럼프 대통령과 대화 및 타협이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는 분위기가 고조되면서 이제는 '강 대 강'으로 맞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유럽의회 내 최대 정당인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트 베버 대표는 미국의 압박에 대한 대응으로 "지난해 체결한 미국과의 무역 협정에 대한 비준 절차를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지난해 7월 상호관세 15%를 비롯한 무역 합의를 타결했다.
EU가 '반(反)강압 조치'(ACI·Anti-coercion Instrument)를 발동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무역 바주카포'로도 불리는 ACI는 제3국이 EU나 회원국의 주권적 정책 결정을 경제적 위협으로 방해하려 할 경우, EU 단일시장 접근 차단이나 외국인 직접투자 제한, 공공조달 참여 배제, 지식재산권 보호 중단 등의 강력한 대응책을 규정하고 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다음 주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에 ACI 발동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미국이 관세를 부과할 경우, ACI 발동을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관계자들은 EU가 지난해 미국의 관세 위협에 대비해 마련했다가 보류했던 930억 유로(약 160조 원) 규모 보복 관세를 미국의 관세 부과에 맞춰 부과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독일 람슈타인의 미국 공군 기지 격납고 앞에 서 있는 전투기. 2024.6.6./뉴스1 ⓒ 로이터=뉴스1 ⓒ News1 이창규 기자 |
유럽 내 미군 기지 폐쇄도 유럽이 꺼내들 수 있는 카드로 거론된다.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한 유럽 외교관은 미군 기지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자는 제안을 포함해 유럽 주둔 미군 지원 중단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고 말했다.
2024년 기준 미국은 유럽에 31개의 상설 기지와 19개의 기타 군사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총 6만 7500명의 병력이 배치돼 있다. 특히 나토 최대 규모인 독일 람슈타인 공군 기지는 미국이 중동·아프리카에 병력을 투입하기 위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벤 호지스 전 유럽 주둔 미군사령관은 "유럽 내 미군 기지들은 전투 준비태세 유지와 전 세계적 전략 전개 능력에 필수적"이라며 "기지들을 포기할 경우 미국의 군사 작전에 재앙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며 미국은 정보 공유 능력의 약 절반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은 지난해 6월 이란 핵 시설을 폭격할 당시 루마니아 흑해 연안 인근의 나토 공군기지 등에서 유럽의 공군 지원을 요청했고, 지난주에는 러시아의 '그림자 선단' 유조선을 나포하는 작전에 영국 기지를 사용하기도 했다.
유럽 관계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여전히 유럽 내 군사 시설을 필요로 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말했다.
유럽이 미국산 무기 구매를 중단해도 미국에겐 큰 타격이 될 수 있다. 유럽은 2024년 총 760억 달러 규모의 미국산 무기 구매를 승인했는데 이는 그해 미국의 무기 수출량의 절반을 넘는 규모였다.
다만 유럽의 대미 의존도를 고려할 때 유럽이 미국의 압박에 강하게 맞대응하는 것도 쉽지는 않다. NYT는 유럽이 우크라이나 전쟁에서의 지원, 나토를 통한 보호 등 미국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 전면적인 무역전쟁은 다른 분야에서도 심각한 파장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균열로 트럼프 대통령이 나토 종식을 선언할 경우 유럽은 미국 없이 독자적인 군사 동맹을 구축해야 하고, 이는 만성적 저성장과 빠듯한 공공 재정에 시달리고 있는 국가들에는 막대한 부담이 될 것이라고 WSJ는 전했다.
이에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는 18일(현지시간) 기자회견에서 "여기서 중요한 점은 갈등을 고조시키는 것이 아니라 대화를 노력하는 것"이라고 신중한 대응을 주문했다.
그러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유럽의 대응과는 관계없이 이미 금이 간 미국과 유럽의 관계는 되돌릴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더그 루트 전 나토 주재 미국 대사는 NYT에 "(나토) 조직 자체는 살아남겠지만, 75년 넘게 조직을 지탱해 온 신뢰가 산산조각 났기 때문에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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