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에서 귀화한 박씨마 목사가 지난 15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이란 반정부 시위의 상징을 언급하며 승리(Victory)를 뜻하는 ‘V’를 들어보이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숨을 못 쉬는 나라에서 히잡만 벗으면 무엇하나요, 살 수가 없는데. 지난 히잡 시위가 ‘여성, 인권, 자유’였다면 이번에는 ‘여성’ 다음의 ‘인권, 자유’로 나아갔습니다.”
이란 반정부 시위에 대한 유혈진압을 전세계가 조마조마한 눈길로 지켜보고 있다. 해외에 살고 있는 이란인과 이란 출신 귀화자들도 연일 뜬 눈으로 밤을 샜다.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페르시아어 설교를 맡고 있는 박씨마 목사도 그 중 하나다. 그는 한국인 남편과 결혼해 1979년 이란에서 이슬람혁명이 일어난 이후 한국으로 와 귀화했다.
박씨마 목사는 최근 다른 재한 이란인들과 함께 이란 정권을 규탄하는 시위에 나서고 있다. 그의 말대로 “먹는지 자는지도 모르고 매일 우는” 일상을 보낸다. 2022년 마흐사 아미니의 의문사를 계기로 불거진 히잡 시위에서도 재한 이란인들은 힘을 보탰다. 그는 이 활동을 독립운동에 빗댔다. 한국인들이 과거 일제강점기 외국에서 임시정부를 세우고 독립운동을 했듯 외국에 거주하는 이란인들도 본국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또 47년간 억압받은 이란 여성을 비롯한 이란인들이 ‘목숨을 걸고’ 하는 이야기에 한국과 세계가 관심을 가져달라고도 호소했다.
[플랫]히잡 벗고 담뱃불…다시 ‘저항 상징’된 이란 여성들
“자유 찾기 위해 독립운동하는 느낌”
재한 이란인들은 최근 서울 용산구 주한이란대사관 앞 등지에서 이란 민주화운동 지지 집회를 열고 있다. 박씨마 목사는 인터뷰를 한 날도 다음 집회를 준비 중이었다. 재외 이란인들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튀르키예 등에서 반정부 시위대에 연대하고 있다.
- 어떤 마음으로 인터뷰에 나섰나요.
“고통의 마음으로 왔습니다. 이 고통은 뭐라 말로 표현이 되지 않습니다. 이란 내부에서는 인터넷이 끊어져 바깥과는 연락이 전혀 되지 않습니다. 이란 길거리에 나와서 목숨을 잃어가고 있는 이들의 소리를 다들 모르니, 우리라도 그 소리가 돼줘야겠다 싶었습니다.”
- 이란에 계신 가족·친구들과 연락이 되고 있나요?
“연락이 되질 않아 전혀 모르겠습니다. 시위가 시작되던 날 친구에게 왔던 연락이 마지막입니다. 그날 저녁 ‘불법이니 절대 시위에 가담해선 안된다’는 경고 메시지가 왔다고 보여주더라고요. 그 뒤로는 인스타그램, 엑스, 메신저가 다 끊겼습니다. 이제 조금씩 연결되다 보면 소식이 들릴 것 같습니다.”
- 2022년 이후 잦아들은 것 같았던 시위가 다시 이렇게 크게 번진 이유는 무엇인가요.
“많은 분들이 경제 때문에 길거리에 나오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데, 상인들부터 시위가 시작되긴 했지만 47년 동안 억압받고 눌려있던 것이 결국 터진 것입니다. 이 정권이 있는 한 자유가 없다는 것을 이제 국민들이 압니다. 대통령을 바꾼다고 해서 더 나을 것이 없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이 정권 자체, 뿌리 자체를 바꾸려고 시위하는 것입니다. 한국은 대통령이 바뀌면 정권이 바뀌죠. 이란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지 않기 때문에 대통령이 정부를 바꿀 순 있어도 이슬람 정권은 바뀌지 않습니다. 종교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모든 것을 다 하고, 대통령은 꼭두각시입니다.”
- 이란 정권이 재외이란인 활동도 감시할 것 같은데요. 위협을 받은 적은 없나요?
“저는 (한국인으로 귀화해서인지) 아직까진 없었습니다만 주변인들은 있었습니다. 2022년 당시 한국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했던 재한이란인들의 이란 가족들에게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부모님이 출국 금지되거나, 당뇨 환자를 병원에 가지 못하게 한다거나, 직장에서 강제해고되거나, 조사받는 일도 있었습니다. 여기 있는 이들은 이란에 못 가고 가족들은 이란 밖으로 출국이 안 되니 ‘평생 다시 만날 생각 말아라’고 협박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저도 아마 블랙리스트일 것입니다. ”
- 그럼에도 한국에서 활동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독립운동하는 것 같습니다. 독립운동가라고 감히 말은 못하겠지만 나라의 자유를 찾기 위해서 하는 것이니까요. 대한민국도 일제강점기에 임시정부를 세우고 3·1운동도 하고 많은 이들이 감옥에서 숨졌잖아요. 한국 사람들도 당시 자유를 찾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런 것처럼 우리도 활동하는 것입니다.”
“이란 여성들, ‘죽으면 죽겠다’는 각오”
이란 정권은 2022년에도 위기를 겪었다. 대학생 마흐사 아미니가 ‘히잡을 제대로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도덕경찰에 끌려가 의문사한 이후 히잡 반대 시위가 벌어졌고, 반정부 시위로 발전해 전국으로 확산했다. 당시 이란의 10대 여성이 소셜미디어를 주축으로 벌인 저항과 여성들이 공공연히 히잡을 쓰지 않는 모습, 하메네이의 사진을 조롱하는 장면 등이 시위의 상징이 됐다.
2026년에도 이런 모습은 유사하게 재현되고 있다. 이란 여성들이 하메네이의 사진을 불태워 담뱃불로 삼는 장면이 전세계를 휩쓸었다. 여성이 담배를 피우는 것, 하메네이의 사진을 함부로 취급하는 것 모두 이란 사회의 금기다. 이란 사회 일반의 사회·경제적 억압에 더해 여성이라는 이유로 더 큰 부조리를 겪어왔던 이란 여성들은 다시 거리로 나와 정권을 뒤흔든다.
- 젊은 이란 여성들이 히잡을 벗은 상태로 하메네이 초상을 담배로 불태우는 장면이 한국에서도 굉장히 화제가 됐습니다. 그것을 보고 어떤 생각을 했나요?
“역시 대단한 우리 여자들, 잘한다 싶었습니다. 정말 뿌듯했습니다. 우리 엄마들도 강합니다. 이번에 아들 둘을 한꺼번에 잃은 엄마가 장례식에서 춤을 췄습니다. 또 이야기를 들어보니, 시위 앞줄에 나이드신 여성들이 서있으니 청년들이 ‘어머니들 위험하니 뒤로 가세요’라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여성들이 ‘죽더라도 우리가 죽는 게 낫다’ 했다고 하더라고요. 이란 여성들에게 박수를 쳐주고 싶습니다. 전부 죽으면 죽으리란 각오로 나온 거예요.”
- 2022년에도, 지금에도 이란 여성들은 무엇이 그렇게 절실한가요.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에도 크고 작은 시위가 있었습니다. 자유롭게 여행하고 유학도 다녀왔던 여성들에게 갑자기 히잡을 쓰라고 하니 들고 일어날 수밖에 없었죠. 이란 여성은 7살부터 히잡을 써야 하고 샤리아(이슬람 율법)는 여성이 9살부터 결혼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난 47년 동안 얼마나 많은 여자아이가 억지로 결혼하게 됐을지 모르겠습니다. (직접적으로 죽이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도 큰 학살입니다.
아주 쓴웃음이 나는 이야기인데, 여자 대학생이 캠퍼스 내 기숙사에서 쓰러지는 일이 있었습니다. 구급차를 불렀는데 ‘여성 기숙사라 못 들어간다’, 실랑이하다 왔는데 ‘여성 환자가 옷을 제대로 안 입고 있다’고 시간이 지체되고 해서 옷 입히고 가는 동안 죽었어요. 이러한 배경이 있기 때문에 이란 여성들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히잡을 쓰고 안 쓰고의 문제가 아닙니다. 숨을 못 쉬는 나라에서 히잡만 벗으면 무엇하나요, 살 수가 없는데. 지난 히잡 시위가 ‘여성, 인권, 자유’였다면 이번에는 ‘여성’ 다음의 ‘인권, 자유’로 나아가는 단계입니다.”
“왜 목숨 걸고 외치는지 세계가 알았으면… 이란에 승리 찾아오길”
이란에서 귀화한 박씨마 목사가 15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의 한 카페에서 ‘이란의 반정부 시위’등과 관련해 인터뷰를 하고 있다. 서성일 선임기자 |
박씨마 목사의 말처럼 이란 국민들은 성별과 연령을 가리지 않고 전국에서 시위를 벌였다. 추정 희생자 규모도 나날이 커지고 있다. 한 민간단체에서는 사망자가 1만2000명 이상이라는 추정치를 내놓기도 했고, 실제론 그보다 심각하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란 당국이 시위대를 구금해 재판 없이 사형했다, 아동·청소년도 사망했다, 시위대를 겨누고 사격했다는 외신 보도가 줄잇는다. 이란 국민들이 ‘목숨을 걸었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니다.
이번 사태가 민중의 염원대로 끝날 수 있을까. 이 항쟁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박씨마 목사를 비롯한 이란인들은 조심스레 희망을 품는다.
반정부 시위대 일각과 재외 이란인들 사이에서는 이란의 ‘마지막 왕세자’인 레자 팔레비(66)를 구심점으로 삼자는 주장도 나온다. 레자 팔레비는 1979년 이슬람혁명으로 축출된 왕의 맏아들로 미국에서 망명 생활을 해왔다. 그는 신정체제가 몰락한다면 자신이 이란으로 돌아가 세속화·민주화를 이끌겠다고 말했다.
- 이번 시위의 상징과 구호는 무엇인가요.
“상징이 된 손동작은 ‘빅토리(Victory·승리)’의 ‘V’입니다. 이번에는 팔레비 왕세자가 리더가 돼 주면서 시위대가 ‘저비드 샤(Javid Shah·영어로 Long live the King)’를 외치고 있습니다. 군주제를 찬성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상징적 구호입니다.”
- 이번 시위와 예전 시위의 차이는 무엇인가요.
“2022년 시위만 하더라도 리더가 없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시위를 많이 못 나왔습니다. 다민족 국가인 이란이 분열될까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정권에서도 항상 ‘너희가 시위하면 나라가 찢어진다’고 겁을 줬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리더가 있고, 그가 ‘이란을 하나로 만들겠다’고 했기 때문에 시위를 해도 분열되지 않는다는 생각에 더 나올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에야 드디어 그렇게 된 것입니다. 이번엔 완전히 다르다는 생각에 정권도 겁을 먹고 더 발버둥치는 것 같습니다. 무너질 것이라고 봐요.”
- 한국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줬으면 좋겠나요.
“이란 안에 있는 사람들이 목숨 걸고 외치는 것이 무엇인지 봐주면 좋겠습니다. 이란 정권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바뀌지 않고 이대로 간다면 많이들 다치고 죽을 것입니다. 우리도 이란을 위해 계속 활동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란이 자유로워져서 누구나 행복하게 사는 나라가 되길 바랍니다.”
▼ 김서영 기자 westzero@khan.kr
김서영 기자 westzero@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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