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대 기자] (문경=국제뉴스) 김용대 기자 = 경북 문경에서 독립운동가 박열 의사의 제52주기 추모식이 17일 오전 10시 30분, 문경시 박열의사기념관에서 엄숙하고도 뜻깊게 봉행됐다.
이날 추모식에는 박열 의사의 손자와 유족을 비롯해 신현국 문경시장, 이정걸 문경시의회 의장, 시·도의원, 이규봉 문경경찰서장, 신동성 문경예천대대장, 박인원 전(前)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박경규 노인회 문경시지회장, 지역 안보·보훈단체장과 유림단체장,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박열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박열 의사는 190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26년 일왕 폭살기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22년 2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이는 독립운동가 가운데 최장 수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끝까지 저항한 행동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제공=문경시) 독립운동가 박열의사 제52주기 추모식 |
이날 추모식에는 박열 의사의 손자와 유족을 비롯해 신현국 문경시장, 이정걸 문경시의회 의장, 시·도의원, 이규봉 문경경찰서장, 신동성 문경예천대대장, 박인원 전(前)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 박경규 노인회 문경시지회장, 지역 안보·보훈단체장과 유림단체장, 시민 등 200여 명이 참석해 항일 독립운동에 헌신한 박열 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렸다.
박열 의사는 1902년 경북 문경에서 태어나 3·1운동에 참여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스트 계열의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1926년 일왕 폭살기도 혐의로 사형을 선고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돼 22년 2개월간 옥고를 치렀으며, 이는 독립운동가 가운데 최장 수감 기록으로 남아 있다. 그는 일본 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끝까지 저항한 행동하는 독립운동가이자 사상가로 평가받고 있다.
해방 이후에도 재일교포의 권익 신장을 위해 재일본조선거류민단을 조직하고 초대부터 5대까지 단장을 역임하는 등 민족운동에 헌신했다. 그러나 6·25전쟁 당시 북한으로 강제 피랍됐고, 1974년 1월 17일 향년 73세로 파란만장한 생을 마감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적을 기려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을 추서했다.
이날 식전 행사에서는 박열 의사가 생전에 즐겨 불렀던 '이별의 부산정거장' 등이 문경문화원 하모니카 동아리의 연주로 울려 퍼지며 추모 분위기를 한층 고조시켰다. 본 행사에서는 국민의례를 시작으로 추모사, 추모 글 낭독, 추모헌시 액자 기증 및 헌시 낭독, 헌화와 분향, 만세삼창이 이어졌다.
특히 박열 의사의 모교인 함창초등학교 남·여 학생 대표가 직접 작성한 추모 글을 낭독해 선배 독립운동가의 애국정신을 되새기며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서원 박열의사기념사업회 이사장은 "제52주기 추모식은 박열 의사의 유족이 직접 참석해 더욱 뜻깊은 자리가 됐다"며 "박열 의사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문경 발전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한 에너지로 승화시켜 나가자"고 말했다. 이어 "현재 평양 애국열사릉에 안장된 박열 의사의 묘를 언젠가 고국으로 모셔오기 위해 민간 차원에서부터 차분히 준비해 나가고자 한다"고 밝혔다.
신현국 문경시장은 추모사를 통해 "박열 의사께서는 일제의 폭압 속에서도 자유와 정의의 가치를 끝까지 지켜내며 민족의 독립 의지를 세계에 알린 행동하는 독립운동가였다"며 "조국의 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그 숭고한 뜻이 앞으로도 이 땅 위에 길이 살아 숨 쉬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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