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T테크놀로지리뷰가 선정한 올해의 10대 혁신 기술에는 인공지능 기술이 4개로 가장 많다. 픽사베이 |
인공지능의 발전을 반기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누군가는 마음 놓고 대화할 수 있는 상대가 생겨 기쁘고, 누군가는 하기 싫은 숙제를 대신 해 주어서 신나고, 누군가는 잘 쓰지 못하는 글을 그럴듯하게 써 주어서 고맙다. 업무의 영역에서라면 단연 생산성과 효율성의 제고, 인지적 부담의 경감이 주요한 이유다. 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속도’다. 여기에서 종종 간과되는 질문 하나를 던져보고자 한다. 왜 사람들은 이렇게 빠름에 집착하게 되었을까? 무엇이 우리를 끝없는 속도전으로 밀어 넣었을까?
Artificial intelligence with human brain circuit electric background. Digital futuristic big data and machine learning. vector banner art illustration. |
이에 대한 설득력 있는 답은 근대 이후의 가속에 대한 연구를 진행해 온 하르트무트 로자(Hartmut Rosa)의 논의에서 찾아볼 수 있다. 로자에 의하면 가속화를 이끈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재화의 수가 급속히 증가했다는 사실이다. 가족이 함께 사는 주거공간이라면 대부분 도서, 문구, 식기, 각종 포장재, 의류, 식음료, 가구, 스마트폰과 컴퓨터를 비롯한 전자제품 등이 집안을 가득 메우고 있다. 양적으로 보면 21세기 유럽이나 북미의 가정에 보통 만 개 내외의 물건이 있다고 하는데, 20세기 초에는 수백 개 정도였다고 하니 한 세기 동안 수십 배가 증가한 셈이다.
물건이 많아지니 해야 할 일이 줄줄이 따라온다. 정리와 청소는 필수다. 유지보수 및 관리의 필요성도 커진다. 주의가 여러 곳으로 분산될 수밖에 없다. 이것저것 하다가 정신이 없는 상황과 마주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가끔은 서랍이나 큰 상자에 물건을 욱여 넣는 방식으로 깔끔함을 성취한다. 눈속임의 대가는 비싼 법. 많은 이들에게 이사는 부담을 넘어 공포다.
교류하는 사람의 수 또한 급격히 증가했다. 근대 이전, 특정 지역을 중심으로 삶을 꾸리고 그 밖으로 나갈 일이 거의 없었던 시절에는 지인이 많지 않았고, 변화의 폭도 작았다. 이젠 상황이 다르다. 교통의 발달로 만남이 늘었고, 통신의 발달로 접촉이 급속히 증가했다. 피싱과 스캠 문자가 시도때도 없이 날아든다. 어떻게 연결된 지 모를 이들을 메신저에서 만나는 건 일상이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컴퓨팅과 네트워크, 다양한 온라인 서비스의 발달로 콘텐츠가 쏟아진다. 하루가 멀다고 업데이트되는 구독 채널의 영상들, ‘꼭 봐 줘야 하는’ 뮤직비디오와 웹툰, 지인과 유명인의 소셜미디어 계정에 올라오는 소식 등, 놓치면 큰일 날 것만 같은 것들이 많다. 부끄럽지만 필자 또한 '아니 다 읽지도 못할 논문을 왜 이렇게나 많이 다운로드했나?'라는 자괴감에 종종 휩싸인다.
문제는 이 모든 상황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하루 스물 네 시간은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재화, 관계, 콘텐츠 대 변함없이 유지되는 하루 24시간의 구도는 우리를 분주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도록 만든다. 온라인에서든 오프라인에서든 마음 속으로든.
인공지능을 제작하고 서비스하는 기업은 우리에게 속삭인다. “이걸 사용해 보세요. 남보다 더 빠르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어요.” “이렇게 활용해 보세요. 여유가 생길 거예요.” 그러나 약속은 결코 실현되지 않는다. 물건은 늘어나고, 관계는 확장되고, 콘텐츠는 시시각각 업데이트된다.
끊임없이 팽창하는 삶의 조건들을, 그 가운데서 결국 스물 네 시간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숙명을 숙고하지 않는다면 우린 결국 더 가혹한 속도전에 내동댕이쳐질 뿐이다. 인공지능은 가속을 심화하고, 경쟁은 그만큼 격화된다. 휘몰아치는 삶의 속도를 홀로 버텨내긴 힘들 것이다. 그렇기에 함께 물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덜어낼 것인가? 더 깊고 풍성하게 연결되기 위해 어떤 연결과 작별을 고할 것인가? 어떻게 속도를 줄일 것인가?”
응용언어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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