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로이터연합뉴스]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 병합 구상을 노골화하며 대유럽 관세 카드까지 꺼내 들자, 유럽연합(EU) 내부에서 통상위협대응조치(ACI)를 발동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다만 EU 차원에서는 즉각적인 보복에 나서기보다는 외교적 해결책을 우선시한다는 입장이다.
18일(현지시간) BBC 방송과 AFP·DPA 통신이 엘리제궁 소식통들을 인용해 보도한 바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유럽 주요국 정상들과 잇따라 접촉하며 통상위협대응조치(ACI) 발동을 공식 추진할 계획이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을 "용납할 수 없는 일"로 규정하고, 유럽 차원의 단호한 대응을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무역 바주카포'로 불리는 ACI는 EU나 회원국을 경제적으로 위협하는 제3국에 대해 서비스, 외국인 직접투자, 금융시장, 공공조달, 지식재산권 분야의 접근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2023년 도입 이후 실제 발동된 적은 없다.
마크롱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이 지난해 7월 타결된 미·EU 무역 합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다는 점에도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대부분의 EU 대미 수출품에 15%의 기준 관세를 적용하는 대신, 다수의 미국산 산업재에 대한 관세를 철폐하는 데 합의한 바 있다.
유럽의회에서도 압박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베른트 랑게 유럽의회 무역위원장은 전날 EU 집행위원회에 ACI 발동을 공식 요구하며, 그린란드 사안과 미·EU 무역협정의 유럽의회 승인 여부를 연계할 가능성도 시사했다. 유럽의회는 이달 26~27일 무역협정 표결을 예정하고 있으나, 이를 보류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EU 주요 회원국들이 930억 유로(약 159조원) 규모의 보복 관세를 부과하거나 EU 시장에서 미국 기업의 활동을 제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이번 사안을 수십 년 만에 가장 심각한 미·유럽 간 위기로 평가했다.
당국자들에 따르면 EU 정상들은 이번 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포럼(WEF)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접촉을 앞두고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대비책을 마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U는 이미 지난해 미·EU 무역 협상 과정에서 보복 관세 대상 목록을 작성했지만, 전면적 무역 충돌을 피하기 위해 이를 유예해왔다. 하지만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위협을 계기로 27개 회원국 대사들이 18일 브뤼셀에서 긴급 회의를 열고, 해당 조치를 재가동하는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EU 외교관은 "(트럼프가) 이런 마피아 같은 방식을 계속 쓴다면 분명한 보복 수단이 있다"며 "동시에 우리는 공개적으로 진정하도록 촉구하고 싶다. 이는 채찍과 당근"이라고 말했다.
ACI를 미국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를 검토하는 데에는 다수의 회원국이 찬성했지만, 대다수는 우선 대화를 통한 해법을 선호하고 있으며 이번 다보스포럼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외교관들은 전했다.
실제로 유럽 매체 유로뉴스에 따르면 EU는 현재로서는 즉각적인 보복보다는 외교적 해결책을 우선하는 방침이다. EU는 지난 긴급 회의에서 그린란드를 둘러싼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위협에 대응해 ACI를 즉시 발동하는 방안을 일단 보류하기로 했으며, 회원국들은 당분간 미국과의 대화와 외교를 최우선 과제로 삼기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전해졌다.
주요 정상들도 개별 접촉에 나서고 있다. 마르크 뤼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은 엑스(옛 트위터)에 트럼프 대통령과 전화 통화를 하고 그린란드 및 북극 안보 상황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는 이 문제에 대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며 "다보스에서 그를 만나기를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나토 동맹국의 집단 안보 추구를 이유로 관세를 부과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고 영국 총리실이 전했다.
스타머 총리는 메테 프레데릭센 덴마크 총리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 뤼터 사무총장과 연쇄 통화를 한 뒤 트럼프 대통령과 직접 통화하며, 유럽과 대서양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북극 안보가 모든 나토 동맹국의 최우선 과제임을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그린란드에 소규모 병력을 파견한 8개국을 상대로 2월 1일부터 10%, 6월 1일부터는 25%의 대미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유럽은 이를 동맹에 대한 협박이자 '중국과 러시아에만 이로운 조치'로 규정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관세 위협 대상이 된 8개국은 공동성명을 내 덴마크와 그린란드 국민에 대한 전적인 연대를 표명하며 "관세 위협은 대서양 관계를 약화시키고 위험한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들은 "우리는 계속 단결해 대응을 조율하고, 우리의 주권을 지키는 데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폴리티코 유럽판에 따르면 안토니우 코스타 유럽이사회 상임의장은 EU 27개 회원국 정상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그린란드 위협에 대한 대응을 논의하기 위해 수일 내 회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상회의는 1월 22일로 조율 중이며, 화상이 아닌 대면 방식으로 열릴 예정이다.
황진현 기자 jinhyun97@aju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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