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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의 시사펀치> 234일 분기점에 선 이 대통령

일요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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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김삼기 시인·칼럼니스트·시사평론가


지난해 4월9일 당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대표직을 내려놨다. 명분은 분명했다. 대선을 향한 출발이었다. 그날은 2024년 8월18일 출범한 ‘이재명 2기 민주당’이 정확히 234일째 되는 날이었다. 이재명의 정치는 늘 무언가를 내려놓는 지점에서 다시 시작됐다.

중심에서 물러난 후 정치의 궤적을 새로 그리는 방식이었다.

19일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6월3일 대통령에 당선된 지 역시 234일째다. 공교롭거나 우연이라 보기에는 상징이 분명하다. 이 대통령에게 234일은 권위의 누적이 아니라, 기존 권위에서 한 걸음 물러나 새로운 국가 비전을 준비해야 할 시간이다. 더 높이 오르기 위해 바닥을 점검해야 하는 시점이기도 하다.

이재명의 정치에는 늘 ‘되돌아감’이 없다. 그는 1로 돌아가지 않는다. 멈추지 않고 2에서 3으로, 3에서 4로 이동한다. 그래서 그의 정치에는 ‘234’라는 숫자가 반복된다. 완결이 아닌 이행의 숫자이며, 출발선이 아닌 점검선의 숫자다. 이 234일째에 무엇을 준비하느냐에 따라 이정부의 다음 궤적이 달라질 수 있다.

탁구공은 충격이 아니라 바닥에서 튄다

탁구공은 떨어질 때의 힘보다 바닥의 상태에 따라 더 높이 튀거나 그대로 멈춘다. 아무리 세게 내려쳐도 바닥이 물렁하면 에너지는 흡수되고, 약하게 떨어져도 바닥이 단단하면 반발력은 커진다. 이 단순한 물리 법칙은 개인의 삶뿐 아니라 국가 운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정치는 종종 충격의 강도로 경쟁한다. 더 센 개혁, 더 빠른 결단, 더 강한 메시지가 성과처럼 포장된다. 그러나 충격은 결과가 아니라 과정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그 충격을 받아낼 제도와 신뢰라는 바닥이다. 바닥이 준비되지 않으면 충격은 방향을 얻지 못한다.


지금 한국 정치의 문제는 충격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충격은 충분했다. 문제는 그 충격을 축적하고 반전시킬 바닥이 제대로 다져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탁구공이 튀지 않는 이유는 힘이 약해서가 아니라, 바닥이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234일이라는 반복되는 시간의 정치

이 대통령은 숫자를 정치적 언어로 쓰는 정치인이다. 그는 2023년 6월 19일 민주당 대표 자격으로 국회 교섭단체 연설을 할 때도 윤석열정부를 향해 “이태원 10·29 참사 이후 234일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지만 국가는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그에게 234일은 ‘충분히 판단해야 할 시간’의 상징이었다.

이 대통령에게 234일은 유예의 시간이 아니라 책임을 묻는 기준선이다. 기다려줄 만큼 기다렸고, 이제는 판단해야 한다는 시간 감각이다. 그 기준은 상대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이제 그 시간은 이 대통령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돌아왔다. 국정의 성과와 한계 모두가 이 숫자 앞에서 평가 대상이 된다.


정치는 숫자를 외면할 수 없다. 반복되는 숫자는 우연이 아니라 정치적 리듬이 된다. 이 대통령의 정치에서 234일은 하나의 국면이 끝나고, 다음 국면을 준비해야 하는 지점으로 작동해 왔다. 지금의 234일 역시 예외일 수 없다. 이 시간은 방향을 수정할 기회이자, 동시에 선택을 미룰 수 없는 분기점이다.

이 대통령 정치의 특징, 내려놓고 다시 시작하기

이 대통령의 정치에는 독특한 감각이 있다. 그는 권력을 축적하는 방식보다 일정 지점에서 그것을 내려놓고 다시 출발하는 선택을 반복해 왔다. 대표직 사퇴도, 단식 이후의 복귀도, 늘 중심에서 한 발 물러난 뒤 정치의 방향을 재설정하는 방식이었다. 이 과정에서 그는 스스로를 고정된 위치에 묶지 않았다.

이 방식은 분명한 장점과 한계를 동시에 가진다. 유연성과 확장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그만큼 안정성은 흔들리기 쉽다. 기존 질서를 빠르게 전환할 수는 있으나, 제도와 신뢰를 축적하는 데에는 더 많은 시간과 설계가 필요하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역동성은 바로 이 긴장 관계에서 만들어져 왔다.


국가 운영은 다른 차원의 문제다. 이 대통령의 정치적 리듬이 국가 운영의 리듬과 그대로 겹칠 수는 없다. 이 대통령의 234일은 실험의 시간이 아니라, 제도적 안정으로 이행해야 하는 시점이다. 내려놓는 정치가 이제는 ‘다시 쌓는 정치’, 즉 바닥 공사로 전환될 수 있느냐가 이정부의 분기점이 된다.

이정부 234일, 속도 있었지만 바닥은 약했다

이정부의 지난 234일은 분명 속도가 있었다. 정책 추진은 빠르게 이뤄졌고, 국정 메시지는 비교적 선명했다. 정권 초반의 동력은 강했고, 정면 돌파형 국정운영은 지지층에게 분명한 신호를 보냈다. 방향을 숨기지 않는 정치라는 점에서 장점도 있었다.

그러나 제도적 합의, 행정적 점검, 사회적 숙성이라는 바닥 공사는 충분히 병행되지 못했다. 정책은 연쇄적으로 투입됐지만, 효과는 축적되기보다 분산되는 경향을 보였다. 정책의 취지와 체감 사이에 간극이 발생한 이유다. 속도는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

탁구공은 연속으로 내려친다고 더 높이 튀지 않는다. 오히려 바닥 상태를 점검하지 않은 충격은 공을 엉뚱한 방향으로 튀게 만든다. 지금 이정부의 가장 큰 과제는 정책의 의지가 아니라, 그 의지를 받아낼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바닥 점검 없는 속도는 도약이 아니라 위험 신호가 될 수 있다.

집권여당의 착각, ‘우리가 바닥이다’

집권여당은 종종 자신이 바닥이라고 착각한다. 다수 의석과 정권교체의 정당성이 곧 제도적 안정성을 대신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바닥은 권력의 크기가 아니라, 신뢰의 축적에서 만들어진다. 신뢰는 힘이 아니라 일관된 절차에서 생긴다.

민주당은 강한 입법과 빠른 정책을 주요 성과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숙의와 조율, 사회적 중간 지대와의 접촉은 상대적으로 약했다. 이러한 방식은 바닥을 다지는 정치라기보다 충격을 증폭시키는 정치에 가까웠다. 단기 동원에는 유리했지만, 지속 가능성은 약했다.

바닥이 약해질수록 정치적 반발은 커진다. 정책의 내용보다 절차와 방식이 먼저 문제로 제기된다. 이는 개별 정책의 실패라기보다, 정치 전반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고 있다는 신호다. 바닥이 흔들리면 성과는 설명되지만, 설득되지는 않는다.

야당도 바닥 공사 책임서 자유롭지 않다

국민의힘 역시 이 문제에서 예외는 아니다. 여당의 충격에 더 강한 반대 충격으로 대응해 왔지만, 대안적 바닥 제시는 충분하지 않았다. 정치적 저항은 분명했으나, 그것이 제도 보완이나 구조 개선으로 이어지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반대를 위한 반대는 충격을 상쇄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치의 바닥을 더 울퉁불퉁하게 만들 뿐이다. 정책 경쟁이 아닌 메시지 충돌은 사회 전체의 반발계수를 낮춘다. 그 결과 정치는 문제 해결의 장이 아니라 감정 소모의 공간으로 인식된다.

야당의 본래 역할은 정부와 여당의 공을 되받아치는 것이 아니라, 견제와 감시의 바닥을 보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그 역할을 충분히 수행하지 못했다. 견제는 있었지만, 안정으로 이어지는 설계는 부족했다. 이 공백이 정치 전반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

기울어진 바닥, 자본·인재는 조용히 이동한다

바닥이 기울어지면 탁구공은 위로 튀지 않는다. 다른 방향으로 이동한다. 국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제도의 일관성이 흔들리면 자본과 인재는 소리 없이 해외로 방향을 바꾼다. 이 이동은 충돌이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최근 한국 사회에서 나타나는 투자 지연과 인재 이탈은 단순한 경기 요인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정치적 예측 가능성이 낮아질수록, 바닥은 기울어진다. 정책의 방향보다 정책의 지속성과 기준이 불분명하다는 인식이 선택을 지연시키고 해외로의 이동을 촉진한다.

정치가 충격을 주는 동안 우리 자본과 인재는 조용히 빠져나간다. 튀지 않는 공을 붙잡기 위해 더 세게 내려치는 순간, 바닥의 기울기는 더 커진다. 이 침묵의 이동이 뒤늦게 수치로 드러나면 되돌리기 어려운 상태에 이르기 쉽다.

234일, 지금 필요한 건 더 센 충격이 아니다

한국 정치에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충격이 아니다. 이미 충분히 많은 충격을 경험했다. 필요한 것은 바닥 공사다. 느리고 지루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이 과정을 건너뛴 개혁은 오래가지 못한다.

234일은 평가의 시간이자 선택의 시간이다. 이 대통령이 이 시점을 충격의 강도를 높이는 계기로 삼을 것인지, 아니면 제도와 신뢰를 다지는 출발점으로 삼을 것인지에 따라 이후 국정의 궤적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이 선택은 단기 지지율이 아니라 장기 안정성과 직결된다.

탁구공은 바닥이 단단할수록 더 높이 튄다. 지금 이 234일에 비전과 제도라는 바닥 장치를 제대로 깔아둔다면, 다음 도약은 지금보다 훨씬 멀리 갈 수 있다. 정치가 다시 튀기 시작하려면, 이제는 내려치는 손보다 바닥을 다지는 손이 앞서야 한다.

이정부 출범 234일째 되는 19일 오늘은 이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이 권한을 내려놓고 다시 비전을 향해 출발해야 하는 날이다. 필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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