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인근 연방 건물 앞에서 경찰과 시위대가 2차선 도로 하나를 놓고 대치하고 있는 모습.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김은중 특파원 |
1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인근 연방 건물 앞에서 트럼프 정부의 이민 정책에 반대하는 이들이 모여 구호를 외치고 있다.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김은중 특파원 |
“당신들은 나라의 수치다. 복면은 벗어 던지고 제대로 된 일자리부터 구하라.”
15일 찾은 미국 미네소타주(州) 미니애폴리스 인근 연방 건물인 ‘위플 빌딩’ 앞에는 중무장한 경찰 병력 100여 명과 시위대가 2차선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대치하고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불법 이민자 단속을 지시해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 약 3000명이 미니애폴리스 일대에 배치된 가운데, 지난 7일 백인 여성 르네 니콜 굿이 ICE 요원의 총격에 사망한 사건에 분노한 이들이 이곳으로 몰려와 매일같이 반(反)이민 구호를 외치고 있다. 전날 밤에도 베네수엘라 출신 이민자를 상대로 ICE 요원의 발포가 있었고, 이날 트럼프가 “내란법(Insurrection Act)을 발동할 수 있다”고 엄포를 놓은 터라 시위대가 더 격앙된 모습이었다. 이들은 펜스 너머로 보이는 ICE 요원들을 향해 “부끄러운 줄 알아라” “우리 동네에서 당장 나가라” “일단 사람부터 돼야 한다”고 야유를 퍼부었다. 시위대가 도로를 넘어올 땐 경찰이 경고를 한 뒤 최루탄 가스를 터뜨려 매캐한 연기가 눈과 코를 찔렀다. 이런 대치가 이날 오후 내내 반복됐다.
그래픽=박상훈 |
2024년 대선 당시 연간 100만명이라는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불법 이민자 추방 작전을 공약한 트럼프는 지난해 1월 20일 취임한 뒤 ‘불법 이민 단속’을 최우선 국정 과제로 삼았다. ‘하루 3000명’ 할당량을 받은 이민 당국은 불법 이민자들이 밀집한 곳이면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무작위로 덮치는 저인망식 단속을 진행했다. 필요하면 백악관이 나서서 이들을 극악한 살인자·강간범 등으로 묘사하는 여론전을 펼쳤다. 외국인 전반에 대한 비자 심사를 대폭 강화해 유학생 비자를 시작으로 영주권·시민권 심사에까지 엄격한 잣대를 적용했고, ‘아메리칸드림’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전문직용 취업 비자(H-1B) 역시 선발 절차를 대폭 수정했다. 트럼프를 추종하는 핵심 지지층인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는 이런 정책에 열광했지만, 강압적인 단속에 선의의 피해자들도 속출하면서 이민 문제를 둘러싼 보수·진보 분열이 심화하고 있다. 로이터·입소스 조사에서 트럼프의 이민 정책 지지율은 작년 1월만 해도 50%에 육박했지만, 이달 13~14일 진행된 조사에선 사상 최저치인 40%까지 떨어졌다.
1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인근 한 커피숍에 이민세관단속국(ICE) 등 연방 정부 직원의 출입을 사절한다는 내용의 안내문과 그림이 붙어 있다.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김은중 특파원 |
16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의 소말리아계 이민자 밀집 거주 지역에 이민세관단속국(ICE)에 반대하는 내용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김은중 특파원 |
2020년 흑인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에 목이 눌려 사망한 뒤 인종 차별 시위가 들불처럼 번진 미니애폴리스는 그 긴장감이 가장 적나라하게 표출되고 있는 곳이다. 복면을 쓰고 중무장한 ICE 요원이 주유소, 마트, 버스 정류장, 풋볼 경기장 앞 등 도시 곳곳에서 게릴라식 단속을 벌이고 있다. 미 사전에 ‘중서부의 따스함(Midwestern Nice)’이란 관용어가 있을 정도로 미네소타 주민들은 친절함으로 정평이 나 있지만, 지금은 정치 분열의 임계점에 도달해 의심과 증오만이 남은 모습이었다. 조지 플로이드 광장 인근 한 커피숍은 ‘ICE나 마약단속국(DEA) 등 연방 정부 요원들은 출입을 사절한다’는 내용의 빨간색 스티커를 붙여놨다. 한 직원은 기자에게 “다른 주에서 백인 우월주의를 외치는 이들이 몰려와 위험한 구호를 외치고 있다”며 “당신도 동양인이니 조심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트럼프는 1기 때 조지 플로이드 사태로 임기 후반 국정 운영 동력을 상실했던 경험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듯 강공을 펼치고 있다. 특히 미네소타에는 약 10만명의 소말리아계 이민자 커뮤니티가 있는데, 연방 정부가 지원하는 복지 프로그램에서 돈이 줄줄 샜다는 의혹이 제기돼 자금을 전면 동결하는 등 10여 개 기관이 조사에 나선 상태다.
제이미 팜퀴스트씨가 1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인근 공화당 본부 건물 앞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불법 이민 단속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김은중 특파원 |
15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 인근 공화당 본부 건물 앞에서 시위 참가자들이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불법 이민 단속에 반대하는 내용의 피켓을 들고 있다.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김은중 특파원 |
미니애폴리스 인근 에디나의 공화당 미네소타 지부 건물 앞에서 만난 제이미 팜퀴스트씨는 “이 나라가 트럼프 정부 들어 외교·내치 할 것 없이 얼마나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알리고 싶어 40주 전부터 매주 시위를 펼치고 있다”며 “백인·기독교인과 그게 아닌 사람으로 갈라 분열을 조장하는 트럼프의 행태가 매우 우려스럽다”고 했다. 이날 시위 참가자들은 ‘의회가 무소불위 대통령을 견제해야 한다’ ‘미네소타는 ICE로부터 해방하고 싶다’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있었다. 미네소타 토박이인 60대 백인 여성 몰리씨는 “우리는 이민자들을 사랑하고 이전까지는 아무 문제 없이 잘 지내고 있었다”며 “내가 아는 한 그들은 친절하고 법을 준수하며 (일부는) 정부 서비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으면서도 세금을 낸다”고 했다.
미 정가에서는 트럼프가 정권의 명운(命運)이 걸려 있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불법 이민 단속 실적을 자신의 주요 성과로 홍보하기 위해 당분간 반이민 정책 실행에 고삐를 더 당길 것이란 전망이 많다. 지난해 7월 초대형 예산·세제 패키지인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이 의회를 통과해 단속을 위한 예산도 확보한 상태다. 지난 7일 굿이 ICE 요원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포틀랜드 애비뉴 인근 추모 공간에서 만난 주민 데미언씨는 “미국인과 미국인이 서로를 향해 겨누는 것이 트럼프 시대의 뉴 노멀이 됐다. 남은 임기 3년 동안 앞으로 또 어떤 기상천외한 일들이 벌어질지 진심으로 우려된다”고 했다.
지난 7일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의 총격으로 사망한 백인 여성 르네 굿이 숨진 포틀랜드 애비뉴 인근에 마련된 추모 공간.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김은중 특파원 |
[미니애폴리스(미네소타주)=김은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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