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케이스포(KSPO)돔에서 은퇴 선언 후 첫 공연을 가진 가수 임재범. 이날 그는 지난 6일 “마지막 신곡”이라며 발매한 노래 ‘Life is a drama’의 라이브 무대를 선보였다./블루씨드엔터테인먼트 |
“전 이전에도 임재범, 지금도 여전히 임재범이고, 앞으로 여러분 기억 속에 남을 저 또한 임재범입니다. 이번 40주년 투어를 끝으로 무대에서 물러납니다.”
17일 오후 서울 송파구 KSPO돔(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꺼낸 임재범(64)의 말에 9000여 명 관객의 박수가 쏟아졌다. 그가 이날 공연명 ‘나는 임재범이다’의 의미와 함께 은퇴 소감을 담담히 전한 순간이었다.
임재범은 지난 6일 방송과 소셜미디어를 통해 처음 은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지난해 9월 신곡 ‘인사’를 시작으로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8집에 실릴 노래를 순차 공개한다 했고, 11월 대구를 시작으로 데뷔 40주년 전국투어에 돌입했다. 투어 도중 은퇴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17일 서울 공연은 은퇴 발표 이후 처음 선 무대였다. 임재범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아름다운 날들 속에서 스스로 걸어나오는 것이 저에게 남은 마지막 자존심이고 감사의 방식”이라고 적은 3분짜리 편지 영상으로 공연의 문을 열었다. 이어 무대에 나타나 첫 곡 ‘내가 견뎌온 날들’, ‘이 또한 지나가리라’를 내리 부른 뒤 직접 인사를 건넸다. “은퇴에 얽힌 자초지종을 구구절절하게 설명하면 저도 속상하고, 여러분도 속상하다”며 은퇴 배경을 자세히 밝히는 건 피했지만, “오랜 고민 끝에 한 결정”이라 했다. “슬프고 섭섭한 감정은 잠시 내려놓고 오늘은 제 가수 생활의 40번째 생일을 축하해 주시면 좋겠다”는 그의 말에 박수가 이어졌다.
이날 2시간 20분 간 선보인 총 20곡은 그가 “지난 40년을 돌아보고, 직접 순서를 짰다”고 했다. 공연 초반부에는 특히 1986년 록 밴드 시나위 데뷔 음반 수록곡 ‘그대 앞에 난 촛불이어라’를, 공연 문을 닫는 마지막곡도 같은 앨범의 ‘크게 라디오를 켜고’를 골랐다. 임재범의 여전히 건재한 ‘그로울링’(으르렁거리는 창법)이 걸출한 록 밴드 시나위 보컬이었던 그의 출발점을 상기시켰다. “여러분께 위로를 드리고 싶었다”며 부른 ‘위로’(2022), 자신의 아버지와의 추억을 담아 부른 ‘아버지의 사진’(2022) 등에는 파란만장한 임재범의 과거가 담겨 있었다. 임재범은 이 노래 발표 직전 7년 공백기를 가졌다. 그 사이 2017년 아내와 사별했고, 2020년 1세대 아나운서였던 아버지 고(故) 임택근씨의 빈소를 지켰다.
이날 임재범의 목 상태는 다소 좋지 않아 보였다. “은퇴가 가까워서 그런지 목 컨디션이 참. 약국에 존재하는 목 관련 약이란 약을 모두 때려넣었는데도 목이 안 풀린다”는 그의 말처럼 공연 초반부에는 자주 음이 흔들렸다. 대표곡 ‘너를 위해’ 후렴의 고음을 부를 땐 심하게 갈라지는 소리가 나자 객석 떼창에게 마이크를 넘기기도 했다.
그러나 공연 후반부로 갈수록 목 상태가 안정되면서 진가를 드러냈다. 압권은 임재범이 무대 배경에 띄운 성모마리아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고해’를 불렀을 때. 박달나무처럼 단단하면서도 포물선처럼 유려한 임재범 특유의 흉성(가슴 부위를 울리는 풍성한 소리)이 자유롭게 저음과 고음을 오가자 관객들 표정이 홀린 듯 몽롱하게 변해갔다. 노래 직후에는 마치 마법에서 깬 듯 열렬한 박수가 객석에서 터져 나왔다. 한때 국내 수많은 남성들의 노래방 도전곡이었고, 그때마다 ‘임재범 외 도전 금지곡’ 판정을 받았던 대표곡이다.
임재범이 솔로 데뷔곡 ‘이 밤이 지나면’(1991), 그를 록 발라드 가수로 날아오르게 만들었던 ‘비상’(1997), 지난 6일 “마지막 신곡”이라며 발표한 ‘Life is a drama’ 등을 완벽히 가창했을 땐 객석에서 “아니 여전히 창창한데…” 같은 안타까운 탄식이 쏟아졌다. 이날 공연 막바지 임재범은 “팬들에게 가장 들려주고 싶었다”는 노래 ‘인사’를 부르며 이런 말을 남겼다. “첫 (시나위) 공연 당시 술에 취한 미군 3명 앞에서 노래하며 가수 생활을 시작했는데, 여기까지 올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전부 여러분 덕분입니다.”
임재범은 이후 부산(24일)·수원(31일)·고양(2월 21일) 등을 거쳐 5월까지 은퇴 투어를 이어갈 계획이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최휘영 문체부 장관이 17일 임재범의 공연 현장을 찾아 직접 공로패를 수여했다”고 밝혔다.
[윤수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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