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영국 국교회는 이혼자의 재혼을 허락하지 않았고, 국교회 수장인 국왕이 두 번 이혼한 여성과 결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에드워드는 12월 11일 라디오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사랑하는 여인의 도움과 지지 없이는 왕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없습니다.”
이 ‘세기의 로맨스’는 대서양을 건너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1957년, 이미 그 전해에 차트 1위를 휩쓴 자메이카계 신성 해리 벨라폰테가 이 이야기를 칼립소 스타일의 팝으로 풀어냈다. “오직 사랑만이, 사랑만이/ 에드워드 왕을 왕좌에서 물러나게 했네/ 그는 고귀했고, 위대했지만/ 사랑이 그를 퇴위하게 만들었네/ 그의 돈, 그의 가게는 가져가도 돼/ 하지만 볼티모어의 그 여인만은 남겨둬요(It was love, love alone/ Caused King Edward to leave his throne/ King Edward was noble, King Edward was great/ It was love that caused him to abdicate/ You can take his money, you can take his store/ But give him that lady from Baltimore).” 가수를 넘어 인권운동가로서도 고귀한 삶을 살게 되는 벨라폰테는 에드워드의 선택을 낭만적으로 그렸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1937년 10월, 윈저 공작 부부가 된 에드워드와 심슨은 나치 독일을 방문해 히틀러와 차를 마시고 SS 친위대를 사열했다. 1957년 미국 대중은 에드워드를 로맨틱한 영웅으로 소비했지만 사랑을 위해 왕관을 버린 남자는 사실 반유대주의자이자 인종차별의 끝판왕이었고 게다가 나치 협력자였다. 그는 197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월리스와 35년을 함께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은 영광도, 행복도 아닌 그저 추방자의 것에 불과했다.
[강헌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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