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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련 칼럼]사라져 가는 직언, 한국 정치를 뒤튼다

동아일보 김승련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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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 정치인의 공통점, 좋은 직언이 없다”

“검증 자신있나”… 이혜훈 이 충고 들어봤나

“지금 정치 맞나”… 장동혁 이 질문 답해봤나

“내게 반론 펴라”는 唐 태종 리더십이 귀감
김승련 논설실장

김승련 논설실장

정치인들의 상식 이하 행동이 수면으로 하나둘 떠오르며 깊은 상처를 남기고 있다. 당사자의 소양과 판단력 부족 혹은 욕심이 1차 원인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문제 정치인에게선 소통 오작동이 공통적으로 나타나곤 한다. 정치인은 불편하지만 꼭 필요한 고언(苦言)에는 귀 닫고, 이에 참모들도 굳이 나서지 않는 현상이 도사리고 있다. 대통령실, 국회 의원회관, 당 사무처에서 이런 하소연이 들려온다.

직언은 어려울 수밖에 없는데, 거기엔 구조적 이유가 있다. 비상계엄 일주일 전으로 시간을 돌려보자. 윤석열 당시 대통령이 한덕수 당시 국무총리에게 계엄 구상을 설명했고, 펄쩍 뛴 총리의 반대로 계엄을 백지화했다고 가정해 보자. 덕분에 대통령은 ‘구속, 파면, 사형 구형’이란 치욕을 피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벌어지지 않은 미래’를 알 도리가 없는 대통령은 도움받았다는 마음보다는 1년 넘게 준비한 계엄을 포기한 데 따른 응어리가 남을 수 있다. 어쩌면 대통령-총리 관계가 불편해졌을 수도 있다. 이런 경우라면 ‘성공한 쓴소리’ 제공자는 그 공(功)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것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는 걸 보며 정치인의 참모진은 직언을 삼가거나 머뭇거리게 된다는 이야기다.

윤 전 대통령은 이달 5일 형사법정에서 제대로 된 계엄 만류가 없었던 것처럼 말했다. “(그날 밤) 국무총리하고 국무위원들이 최소한의 정무 감각이라도 갖췄다면 외교나 민생이 어쩌니 할 게 아니었다. ‘계엄을 선포해 봤자 민주당이 해제할 텐데, 대통령님만 창피스러울 수 있고 역공당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어느 장관도) 이렇게 말 안 했다.”

윤 전 대통령이 계엄 결심을 바꿀 뜻이 없었던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 말은 자기기만형 핑계일 뿐이다. 국무총리와 경제부총리가 “군을 동원한 헌정 중단은 역사 앞에 떳떳하지 못하다”고 건의했다면 좋았겠지만, 수십 년 직업 공무원 출신이 대통령 면전에서 그렇게 말하긴 쉽지 않았을 것이다. 정치인인 비서실장이 했어야 할 말이지만, 대통령은 자기 비서실장과는 일언반구 상의도 안 했다. 무능한 충성파 군인 및 군 출신 몇몇과만 일을 꾸미다가 비극을 자초했던 것이다.

이혜훈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는 어떤가. 그는 후보직을 수락하지 않았어야 했다. 일련의 불미스러운 행위로 국무위원직을 수행하기엔 부적격하다는 걸 자신이 가장 잘 알지 않나. 인사청문회의 매서움을 잘 아는 그로선 뼈아픈 오판을 했다. 그와 가족들은 이미 너무 많은 것을 잃었다.

이 후보자는 입각 제안을 받고 누구와 상의했을까. “검증이 혹독할 텐데, 자신 있냐”는 조언을 듣지 못했을 것이다. 제3자가 그의 불법 탈법 갑질의 종합선물세트 같은 행적을 알기 어렵고, 혹 일부 짐작했더라도 “검증이야 잘 통과하실 테니까…” 정도로 에둘러 말했을 공산이 크다. 그쯤 말했을 때 이 후보자가 찰떡같이 알아듣고 검증 무서운 줄 알았어야 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직언의 부재로 엉뚱한 방향으로 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조언자 그룹과 한 몸으로 똘똘 뭉쳐 집단사고의 함정에 빠졌다는 해석이 더 그럴듯하다. 그는 ‘윤 어게인’ 인사들을 끌어안고, 한동훈 전 대표를 제명했다. 누가 봐도 경쟁자 제거를 통한 당 장악에 나선 사익 챙기기다. 그 과정에 “우리가 하는 이 정치, 맞는 건가”라는 내부 질문이 있었을까. 문제는 장 대표가 앞으로 비슷한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는 점이다. 단식 중인 그의 머릿속에 “이러다 6월 지방선거 참패하면 이후는 어떻게 대처하나” 하는 질문이 맴돌아야 한다.

불편한 질문은 오감을 자극해 내 생각을 원점에서 되짚어 보게 하는 힘이 있다. 이런 브레이크 장치는 참모들의 남다른 용기에만 기대서 갖출 일은 아니다. 쓴소리의 실질적 수혜자인 정치인이 간언(諫言)의 채널을 정비해야 한다.

이런 이슈를 다룰 때 지금도 인용되는 게 당나라 때 펴낸 ‘정관정요’다. 거기엔 당 태종 이세민이 신하들을 향해 “내 결정에 동의 못 하면 누구든 반론을 펴달라. 그대들은 내 비위만 맞추고 있다”며 답답해하는 대목이 나온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당 태종 사례는 간(諫)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준다. 이 책이 제왕학의 전범이긴 하지만, 1300년도 더 된 이야기가 여전히 소비될 정도로 이런 소통 방식은 귀했다는 뜻이리라.


권력이 함께하는 직언과 쓴소리는 보물 같은 존재다. 당의정과는 정반대로 쓴맛 코팅이 됐을 뿐 알맹이는 바른 정치로 이끄는 달콤함이 있다. 오직 영리하고 인내심 깊은 정치인만이 그 효능을 누릴 뿐이다. 지금 이 시각, 여러 실력자들은 자신에게 직언 정치가 잘 작동되고 있는지 살펴볼 일이다.

김승련 논설실장 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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