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4일 경기 수원시의 한 교회 앞에서 강윤규씨(57)가 화강 버너 구이 작업을 하고 있다. 우혜림 기자 |
화강암 계단 표면 화염으로 깎아내 마찰력 복원 ‘넘어짐 예방’
“사람들 안전했으면” 아들과 전국 누벼…해외 학교 봉사까지
지난 14일 경기 수원시의 한 교회 돌계단 앞에 선 강윤규씨(57)가 용접마스크를 고쳐 썼다. 오른손에는 ‘불대’라 불리는 화염 토치가 들렸다. 계단을 향해 화염을 쏘자 하얀 돌가루가 사방으로 튀었다. 뭇사람의 발길이 거쳐 검게 마모된 돌계단이 강씨 손을 거쳐 새하얗게 변해갔다.
겨울철 빙판 계단에서 사람들이 미끄러지지 않도록 ‘돌을 굽는’ 일을 해온 강씨는 “사람들을 자빠뜨리는 돌을 불로 혼내며” 지난 10여년간 시민들의 안전을 조용히 지켰다.
지하철역·공공기관 등 일상에서 익히 볼 수 있는 돌계단들은 대부분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 많은 시민의 발길이 닿은 돌의 표면이 닳으면 여름철 비가 오거나 겨울철 눈이 내릴 때 미끄러지는 사고가 일어날 위험이 커진다. 강씨의 작업은 마모된 돌계단 등을 화염으로 정교하게 깎아 표면의 마찰력을 재생시킨다. 이런 ‘화강 버너구이 작업’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은 희소한 기술이다.
강씨의 첫 직업은 용접공이었다. 1988년 한 공장에 들어간 강씨는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으로 용접을 배웠다. 2010년 서울 광화문의 이순신 동상이 수리될 때 그는 “이순신 배안에 들어가” 작업을 하기도 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일이 힘에 부치기 시작할 즈음 우연히 다른 기술공이 돌을 굽는 모습을 봤다. “나라면 더 좋은 기술로 작업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강씨는 또 다른 ‘최고’가 되기 위해 버너구이 업계에 뛰어들었다.
이날 만난 강씨는 파란 화물트럭에 커다란 산소통 2개와 액화석유가스(LPG)를 싣고 와 작업을 시작했다. 화염을 쏠 때 압력이 일정하도록 연구해 만든 조합이다.
강씨는 불길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눈을 잠시도 떼지 않았다. “돌들은 저마다 특성이 다 달라요. 그 돌에 맞는 압력과 속도로 불을 쏴야 하기 때문에 집중해야 하죠.” 작업하는 동안 하얀 돌가루가 강씨의 팔과 어깨, 머리끝까지 튀었다. 주변으론 뜨거운 불기운이 달아올랐다. “여름엔 작업화 밑창에 덧댄 철판이 달궈져서 물집이 터진 자리에 또 물집이 잡혀요. 겨울이 차라리 나은 편이에요.” 강씨가 웃으며 말했다.
강씨의 작업은 최근 강씨 아들 전의씨(30)가 올린 SNS 게시물을 통해 알려졌다. 사람들이 퇴근한 새벽 지하철역 계단에서 작업하는 강씨의 모습을 본 시민들은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노고하신 덕에 안전하게 산다” “이런 걸 일일이 해주는지 몰랐는데 신기하다”는 등 반응을 보냈다.
강씨가 조용히 이 업을 이어온 이유도 이런 반응 덕분이다. 강씨가 다녀간 뒤 미끄러짐 사고가 줄었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그는 “내 가족, 내 친구가 다니는 곳”이라는 마음으로 불대를 잡게 된다고 말했다. ‘최고가 되겠다’는 강씨의 갈망은 ‘사람들이 안전했으면 좋겠다’는 소망이 됐다.
3년 전부터는 아들과 함께 전국을 누비며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엔 필리핀의 한 학교에 방문해 학생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자원봉사를 하고 왔다.
강씨의 새로운 목표는 아들에게 기술을 전수해 업을 이어가는 것이다. 기술이 널리 알려져 사람들의 넘어짐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강씨는 말했다. “우리나라는 꼭 다치고 나면 조치를 하더라고요. 다치기 전에 예방할 수 있거든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또 필요한 일이니까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어요.” ‘돌 굽는 남자’ 강씨가 지나간 자리에선 섬세히 깎인 돌들이 도드라졌다.
글 ·사진 우혜림 기자 sa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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