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파병한 유럽 8개국에 2월 1일부터 10%의 관세를 부과하고 6월 1일부터는 이를 25%로 올리겠다고 예고했다. 지난해 유럽연합(EU)과 무역 합의를 체결했음에도 별도의 관세안을 들고 나온 것이다. EU 8개국은 미국의 관세 위협에도 굽히지 않고 그린란드와 연대하겠다며 맞불을 놨다. 1949년 출범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가 약 80년 만에 최대 위기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약속을 뒤집고 새 관세가 부과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 한국도 안심할 상황이 아니라는 지적이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7일(현지 시간) 트루스소셜을 통해 “덴마크·노르웨이·스웨덴·프랑스·독일·영국·네덜란드·핀란드 등 8개국이 알 수 없는 목적으로 그린란드를 방문했다”며 불쾌감을 드러낸 뒤 이 같은 관세 계획을 알렸다. 그는 “관세는 그린란드의 완전한 매입에 관한 합의가 이뤄질 때까지 부과된다”고 덧붙였다.
앞서 14일 백악관에서 미국과 덴마크·그린란드 외무장관이 고위급 회의를 가졌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그러자 덴마크와 유럽 주요국은 그린란드에 적게는 한 명에서 많게는 10여 명의 병력을 파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언급은 그린란드 매입 내지는 그린란드에 대해 지금보다 훨씬 강화된 통제권을 확보하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트럼프 대통령이 새로운 관세 카드를 꺼내 들자 유럽은 강력 반발하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관세 부과를 위협받은 유럽 8개국은 18일 공동으로 “우리는 덴마크, 그린란드와 완전한 연대를 표한다”면서 “미국의 관세 위협은 대서양 관계를 훼손하고 위험한 악순환을 초래할 수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로이터통신은 소식통을 인용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반강제조치(ACI) 등 미국 관세 위협에 대한 EU의 공동 대응을 조율하고 있다고 전했다. 반강제조치는 미국에 대한 관세 부과를 포함해 상품 수입 제한, 서비스 진입 금지 등 규제 강도가 높아 ‘무역 바주카포’로 불린다. 당초 EU는 트럼프 행정부와 관세 협상 과정에서 해당 조치를 최후의 수단으로 남겨뒀지만, 미국과 무역 협정이 타결되며 시행이 보류된 바 있다. 전날 유럽의회 내 최대 정당인 유럽국민당(EPP)의 만프레트 베버 대표는 “현 단계에서 미국과의 무역협정에 대한 의회 비준은 불가능하다”고 못을 박았다. 블룸버그통신은 “지난여름 미국과 EU가 체결한 무역 합의는 일부 시행 중이지만 여전히 EU 의회에서의 비준이 필요하다”며 “EPP가 좌파 성향 정당과 힘을 합칠 경우 의회 승인이 지연되거나 무산될 수 있다”고 짚었다. 나토 사무총장과 덴마크 총리를 지낸 아네르스 포그 라스무센은 FT와의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그린란드에 대해 사용하는 언사가 러시아·중국과 같은 깡패(gangster)와 유사하다”고 직격했다.
나토 동맹도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1950년대와 1970년대 영국과 아이슬란드의 해상 충돌 등 나토 동맹국 간 갈등은 낯선 일이 아니다”라면서도 “나토의 정치적·군사적 버팀목인 미국이 그린란드에 위협을 가한다는 점에서 지금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고 짚었다. 외교가에서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미국이 유럽에 대한 관세를 올리기는 힘들 것이며 그린란드 매입을 위한 압박성 발언이라는 관측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존 볼턴도 앞서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군사개입 가능성을 낮게 보며 상대에게 충격적인 카드를 내밀어 패닉에 빠지게 한 후 본인이 원하는 것을 취하는 트럼프식 협상법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경제포럼(WEF·다보스포럼)을 위해 21~22일 스위스를 찾는데 이때 유럽 정상들과 그린란드 문제를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번 조치를 두고 미국이 이미 무역 합의를 체결한 나라들에 별도로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는 불안감과 함께 한국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관측이 나온다. 블룸버그는 “유럽 8개국에 대한 관세 예고는 미국과의 어떤 무역 합의도 최종적인 게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법에 근거해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지만 시장에서는 국제비상경제권한법(IEEPA)에 근거했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 대법원은 이르면 20일 이에 대한 위법 여부 판결을 내릴 것으로 예상되는데 만약 대법원이 위법하다고 판결할 경우 이번 관세 엄포는 없던 일이 될 가능성도 있다.
워싱턴=이태규 특파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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