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일현 시인·교육평론가 |
오늘의 세계는 규범과 윤리가 힘의 논리에 굴절되어 버린 냉혹한 생존의 장이다. 국가 간 패권 경쟁과 분쟁은 인류가 쌓아온 가치들이 '이익'이라는 명분 아래 얼마나 쉽게 휘발되는지를 증명한다. 경제 질서 또한 예외가 아니다. 시장은 흔히 중립의 공간으로 묘사되지만, 그 이면에는 힘의 비대칭이 작동하는 가혹한 구조가 숨어 있다. 고물가와 불안정한 고용은 개인의 성실함만으로는 돌파할 수 없는 거대한 압박이 되어 삶을 짓누른다. 이 침체한 공기 속에서 사람들은 희망보다 체념을, 분노보다 더 깊은 독인 냉소를 먼저 배운다. 내일을 신뢰할 수 없는 사회에서 냉소는 가장 견고하면서도 슬픈 자기방어 기제가 된다.
이 시대의 일그러진 얼굴을 가장 정직하게 응시한 고전이 있다.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다. 1930년대 대공황과 대기근(Dust Bowl)을 배경으로 한 이 소설은 삶터에서 쫓겨난 소작농들의 수난사를 그린다. 스타인벡은 기계화된 자본의 폭력을 '트랙터'라는 상징으로 서늘하게 형상화했다. "트랙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것은 은행이었다. 땅을 사랑하는 대신 땅을 파먹는 존재였다." 인간의 온기가 사라진 들판에는 삶의 흔적 대신 절망의 궤적만이 남았다.
오클라호마의 농부 조드 일가는 평생 일군 땅을 빼앗긴 채 '캘리포니아에 가면 일자리가 있다'라는 빛바랜 전단을 복음처럼 들고 길을 떠난다. 그들이 낡은 트럭에 전 재산을 싣고 달리는 루트 66번 도로는 희망의 통로가 아니라 거대한 유배지였다. 여정의 바람은 사납고, 길 위의 먼지는 눈물과 섞여 고향의 흙처럼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것은 떠나온 땅의 기억이자, 인간이 돌아가고자 하는 근원의 자리, 즉 존엄이 깃든 삶의 본래 자리에 대한 갈망이었다. 길 위에서 가족은 흩어지고 죽음은 일상이 된다. 어렵게 도착한 캘리포니아 역시 약속의 땅은 아니었다. 그곳엔 굶주린 이주민을 '오키(Okie)'라 멸시하며 임금을 착취하는 지주들과 차가운 총구가 기다리고 있었다. 소설은 묻는다. 누가 이 굶주림을 기획했는가.
굶주린 이들의 눈 속에는 분노가 서려 있다. 사람들의 영혼 안에는 분노의 포도가 자라고, 그 열매가 무거워질 때 수확의 시간은 다가온다. 스타인벡에게 가난은 개인의 무능이 아니라 구조의 결핍이 낳은 필연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분노가 어떻게 연대의 씨앗이 되는지를 끝내 추적한다. 감옥에서 막 나온 톰 조드는 처음엔 가족의 생존만을 생각했으나, 이타적인 죽음을 맞은 케이시 전도사의 희생을 통해 각성한다. 그는 이제 혼자가 아닌 '우리'의 영혼을 깨닫는다. 그 깨달음은 절망의 대지 위에 피어난 아주 작고 단단한 희망의 포도송이였다.
소설의 대미를 장식하는 것은 정치적 구호도, 거창한 혁명도 아니다. 모든 것을 잃고 아이마저 사산한 로즈 오브 섀런이 굶어 죽어가는 낯선 노인에게 자신의 젖을 물리는 장면이다. 이 충격적이고도 숭고한 행위는 제도도 시장도 구하지 못한 생명을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려내는 원초적 연대를 상징한다. 우리가 이 혹독한 겨울을 건너갈 힘 역시 바로 이 '인간의 얼굴'을 회복하는 일에서 시작될 것이다.
당신의 삶도 조드 일가처럼 거센 모래폭풍을 맞이할지 모른다. 잘못한 것이 없음에도 무너져야 하는 날들, 성실함이 배신당하고 세상의 냉정한 논리 앞에서 작아지는 밤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자. 겨울은 결코 혼자 건너는 것이 아니다. 스타인벡이 보여준 것처럼 구조는 잔인하고 현실은 차갑지만, 우리가 서로의 고통을 고립된 실패로 내버려두지 않을 때 봄의 맥박은 조용히 다시 자란다. 고립을 뚫고 타인에게 손을 내밀 때 비로소 기적은 시작된다. 오늘 당신이 건네는 작은 다정함, 타인의 슬픔에 기꺼이 곁을 내주는 마음은 전혀 사소하지 않다. 그것은 비인격적 시스템에 맞서 인간의 존엄을 지켜내는 가장 강력한 저항이자, 무너진 자리를 일으켜 세우는 보이지 않는 주춧돌이다.
"어디든 사람들이 싸우고 있는 곳, 배고픈 사람들이 외치는 곳이면 거기 제가 있을 거예요." 톰 조드가 어머니에게 남긴 이 말은 영웅의 외침이 아니라, 겨울을 통과하는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야 할 약속이다. 우리가 지치고 외로운 자리에 있어도 아픔을 이해하고 함께 싸워줄 온기는 분명히 존재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견디는 이들이 있기에, 역사는 비극의 원을 끊고 다시 앞으로 나아간다.
날마다 마주하는 타인의 얼굴에서 우리는 희망의 증거를 본다. 겨울이 깊을수록 봄은 멀지 않았음을, 우리가 서로를 포기하지 않는 한 그 봄은 이미 우리 사이에서 숨 쉬고 있음을 믿는다. 부디 당신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고, 그 누구도 혼자 남겨지지 않는 따스한 연대의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다가오는 시간 속에서도 당신의 겨울이 외롭지 않기를, 당신의 걸음마다 작지만 단단한 희망의 포도가 맺히기를 소망한다.
윤일현(시인·교육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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