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준 기자] 만년 적자 산업에서 국가 수출 주역으로.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조선업계가 걸어온 길이다. 저가 수주로 연명하면서 와신상담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를 거쳤다. 와중에도 FLNG와 친환경 선박 등 미래 고부가가치 기술 투자 만큼은 놓지 않았다. 2022년 이후 호황이 다시 찾아오자 그간의 투쟁이 추진력이 됐다. 고부가가치 선박 물량을 쓸어담는 요즘이다.
저력을 쌓아온 K조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만났다. 시너지는 폭발적이다. 황금함대를 구상하며 해군력 증강을 꾀하는 미국이 핵심 파트너로 한국 조선업계를 낙점했다. 자국 조선산업 재건을 넘어, 함정 건조라는 민감한 사업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와 '실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한화오션과 HD현대, 삼성중공업 등도 기대에 부응해 현지에 적극 진출하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자 한다.
지난 10년간 대한민국 조선업계가 걸어온 길이다. 저가 수주로 연명하면서 와신상담했다.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경영 효율화를 거쳤다. 와중에도 FLNG와 친환경 선박 등 미래 고부가가치 기술 투자 만큼은 놓지 않았다. 2022년 이후 호황이 다시 찾아오자 그간의 투쟁이 추진력이 됐다. 고부가가치 선박 물량을 쓸어담는 요즘이다.
저력을 쌓아온 K조선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와 만났다. 시너지는 폭발적이다. 황금함대를 구상하며 해군력 증강을 꾀하는 미국이 핵심 파트너로 한국 조선업계를 낙점했다. 자국 조선산업 재건을 넘어, 함정 건조라는 민감한 사업까지 믿고 맡길 수 있는 '신뢰'와 '실력'을 모두 갖췄다는 평가다. 한화오션과 HD현대, 삼성중공업 등도 기대에 부응해 현지에 적극 진출하며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고자 한다.
2026년 병오년, 마스가와 함께 순항할 K조선의 현재와 미래를 정리해봤다.
한화필리조선소 현지에서 단체사진을 촬영 중인 이재명 대통령(가운데)와 내빈들. 사진=한화 |
"호재가 연이어 터진다"
지난달 연말 행사에서 만난 한 조선사 임원의 말이다. 현재 조선업계를 둘러싼 훈풍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제로 해운 특수를 타고 상선을 중심으로 이어진 수주 랠리는 불황기 저가 수주 물량까지 완전히 털어내는 성과로 이어졌고 곳간에는 3년 치 수주잔고가 쌓였다.
특히 지난해부터 조선사들의 '특수선(함정) 사업'이 큰 주목을 받고 있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발생한 글로벌 정치 경제 이슈와 밀접히 연관됐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미국과의 조선업 협력 마스가(MASGA) 프로젝트가 본격 궤도에 오르면 조선사 수익에서 특수선이 차지하는 비중 역시 눈에 띄게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황금 함대 핵심 파트너 K조선 뜬다
마스가 프로젝트는 설비 노후화와 숙련공 부족으로 자생력을 잃은 미국 조선업을 부흥시키고 한국은 미래 일감을 선점하는 윈윈 전략이다. 미국이 국적 원양선사를 보유하지 않아 상선 수주는 한정적일 수 있으나 트럼프 행정부의 에너지 정책에 따른 LNG운반선 등 고부가 선박 수주는 기대해볼 만하다.
물론 마스가를 통한 상선 수주의 급증은 어렵다. 미국이 국적 원양선사를 달리 보유하지 않은 만큼 상선 수요가 한정적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트럼프 행정부의 LNG 프로젝트가 다수 추진 중이라 LNG운반선(LNGC)를 비롯한 일부 고부가 에너지선 수주가 기대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주목할 분야는 특수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22일 '황금함대' 구축 계획을 밝히며 2차 세계대전 이후 약 80년 만에 전함 개념의 부활을 선언했다. 차세대 전함 'USS 디파이언트(BBG-1)'는 기존 구축함보다 압도적인 화력을 갖추고 핵미사일 탑재가 가능한 장거리 미사일 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거대 전함의 효용성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하고 미국이 해군력 증강을 강력히 추진하겠다는 신호탄이라는 사실은 명확하다.
물론 이 역시도 지나친 낙관은 어렵다. 사실 전함은 지나치게 큰 크기와 막대한 건조 비용, 수중 공격 방어 어려움 등의 문제로 이미 사장된 개념이다. 이를 이미 구축함과 잠수함이 각국 해군 주전력으로 자리 잡은 현재에 부활시키는 것에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다만 미국이 본격적인 해군력 증강을 결심했음을 알려주는 신호로선 충분한 가치가 있다. 현재 흐름 상 한국 조선업계가 황금 함대 구축 프로젝트의 핵심 파트너가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쇠락의 늪' 美 조선, 한국밖에 잡을 동아줄 없다
왜 미국은 한국과 협력하려고 할까? 미국의 뿌리 깊은 조선업 쇠퇴와 해군력 기반 악화를 돌이켜봐야 한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가 지난해 12월 16일 발간한 '미국 해군 함정 건조의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미 해군은 그간 고질적인 규모·속도·비용 문제에 발목 잡혀 함선 생산이 사실상 멈춰가는 중이다. 당장 남중국해를 둘러싸고 해상 패권 싸움 중인 중국이 매년 해군력을 증강하는 중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현존 함대를 유지보수하는 일조차 어려워진 것이다.
보고서는 "중국은 2010년대 이후 국가가 공공 투자를 통해 군용 선박과 상선을 같은 조선소에서 건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췄다"며 "안정적인 속도로 신조선을 인도한 결과 2024년 추산으로만 370척의 함정을 보유해 미국의 함정 수를 앞질렀다"고 설명했다.
함정 유지보수정비(MRO)도 심각한 지연에 시달리고 있다. 제임스 킬비 전 미 해군참모총장 직무대행은 지난해 4월 연설에서 "미 해군 함정 운용 준비 태세 목표 유지율은 80%지만, 현재 68%에 그친다"고 토로한 바 있다. 정비 인력 부족과 설비 노후화로 해군이 요구하는 시일 내 정비보수가 어렵다는 뜻이다.
더 늦지 않기 위해서라도 조속히 해군력 증강이 시급한 상황이다. 그러나 이를 책임질 민간 조선소의 인력과 인프라도 이미 궤멸 수준이다.
현재 중국에는 300개가 넘는 조선소가 존재하며 매년 전 세계 상선의 절반을 생산하고 있다. 2024년에만 총 1400만톤의 선박을 찍어냈다. 그러나 같은 해 미국은 단 5척의 대형 상선을 생산했을 뿐이다. 극단적으로는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건조한 모든 선박의 톤수를 합치더라도, 중국국영조선공사(CSSC)의 한 해 생산량을 넘지 못한다.
정책적 오판의 후폭풍이다.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1980년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는 조선업체들이 냉전 시기 군함 건조만으로 수익성을 확보할 수 있으리라고 판단하고 정부 보조금 지급을 중단했다. 냉전 종식 후 자생력을 잃은 조선업계는 자연스레 무너졌다. 함정 건조 능력 쇠퇴로 이어졌다. 1970년대까지 세계 1위였던 미국 조선업은 수십 년의 세월 동안 쇠락을 거듭해 현재 1%의 점유율에 머무르는 처지다.
미국이 세계 1위 조선 기술력을 지닌 한국을 구원자로 불러들이고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가 양국 협력의 상징이 된 배경이다.
포트폴리오 확장·시장 다변화 노리는 K조선
관건은 한국 조선업계가 미국 해군 살리기 프로젝트에 참가함으로써 어떤 이득을 얻을 수 있느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당장 눈에 띄는 수익을 기대하긴 어렵다. 이제 막 시작 단계이기 때문이다. 현지 조선소의 경우 전면적 설비 최신화와 인재 재교육부터 이뤄져야 한다.
심지어 특수선 분야는 조선산업이라는 거대한 빙산의 일각이다. 당장 국내 조선 3사 매출 비중의 약 10% 수준으로 나머지 대부분의 수익은 상선 부문에서 창출된다. 그리고 한국 최대 함정 도입 프로젝트인 한국형 차세대 구축함 사업(KDDX)의 총 사업비가 약 7조1000억원 가량이다. HD현대중공업이 2025년 한 해 동안 수주한 선박 총액 181억달러(약 26조원)에도 못미친다.
업계에서도 미국과 함정 동맹은 분명 희소식이지만, 파생되는 경제적 이득을 지나치게 높이 잡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다만 포트폴리오와 시장 확장으로서의 가치는 충분하다. 조선업이 사이클 산업이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금은 글로벌 상선 발주 시기가 겹치면서 상선 부문이 충분한 수익을 내고 있으나, 언젠가는 발주 피크아웃에 도달하고 불황으로 돌아설 수 있다. 이때 미리 미국과의 교감을 통해 특수선 잔고를 많이 쌓아놓으면 불황기를 쉽게 버틸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으리란 평가다.
국내 조선사들은 이미 포트폴리오 확장에 나섰다. HD현대는 지난해 12월 HD현대중공업과 HD현대미포를 합병해 통합 법인을 출범시키며 도크 효율화에 착수했다. 기존 HD현대미포의 도크 절반을 방산 물량 건조에 배정해 총 5개의 방산 전용 도크를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HD현대 관계자는 "조선업은 사이클 산업이다 보니 건조 물량이 쌓여있을 때도 있고 아예 없을 때도 있다"며 "상선 성수기에는 기존 포트폴리오대로 상선 건조에 도크를 할애하고 특수선 수주가 있는 경우에는 특수선용으로 돌리는 등 유연하게 운용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한화오션은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 인수를 통해 미 본토 거점을 마련했다. 한화는 이곳을 미 해군 MRO 사업의 전초기지로 삼고 향후 핵잠수함 건조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 알렉스 웡 한화그룹 글로벌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정부 차원 준비가 갖춰지는 시점이 오면 한화필리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 정부가 핵잠 산업 기반을 확대하고 강화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여기에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승인한 대한민국 핵잠수함 도입 사업은 양국 함정 협력의 정수다.
먼저 한국은 북한과 중국의 재래식 잠수함을 압도하는 해상 전력을 보유하게 된다. 특히 한국 해군이 운용하는 핵잠수함은 이미 인프라가 갖춰진 한국 조선소에서 우선 건조할 계획이다. 이러면 조선사들도 국산 핵잠수함 건조 경험과 포트폴리오를 확보한다.
미국 역시 자국 핵잠수함 생산 능력을 끌어올릴 수 있다. 한화가 필리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하는 것을 최종 목표로 삼았기 때문이다. 필리조선소 설비 투자에 7조4000억원을 들일 계획이다.
알렉스 웡 한화그룹 글로벌 최고전략책임자(CSO)는 "정부 차원 준비가 갖춰지는 시점이 오면, 한화필리조선소에서 핵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는 역할을 수행할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 정부가 핵잠 산업 기반을 확대하고 강화하려는 강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현재 중국은 핵잠수함을 연간 4~5척 건조하는 반면, 미국은 두 개의 핵잠 건조 조선소에서 1년에 한 척도 만들기 어려운 상황이다. 한화의 자본을 들여 필리조선소를 핵잠 건조 조선소로 탈바꿈시키면 미국의 세 번째 핵잠수함 조선소가 탄생함과 동시에 생산 속도도 30% 이상 늘어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는 셈이다.
선박법 개정 언제?…현지와 보폭 맞춰야
K조선과 미국의 아름다운 항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마스터 피스도 눈길을 끈다.
먼저 미국 내 선박법 개정이 필수다. 당장 미국은 연안을 오가는 선박의 경우 미국 내 조선소에서만 건조돼야 한다고 명시한 '존스법'과 외국 조선소의 미 군함 건조를 금지하는 '번스 톨리프슨법'을 유지하고 있다. 이대로라면 군함을 수주하더라도 K조선의 우수한 인프라를 전혀 활용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법이 계속 유지된다면 국내 조선사들은 더 적극적인 현지 진출을 강요받게 된다. 합작법인이 세워지고, 합작 조선소가 건립될 수 있다. 자연스레 국내 산업 기반이 미국으로 일부 이전되는 효과를 낳는다. 인력과 기술 공동화, 기술 유출 가능성 등 다양한 우려도 커진다.
다행히 2026년에는 법 개정에 대한 희망도 생긴다.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도출한 한미 팩트시트를 통해 핵잠수함을 포함한 한국의 함정 건조가 가시권"이라며 "내년 조선 현행법 개정과 트럼프의 행정명령을 통한 해외 건조 가능성 법제화를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 현지 정치 상황을 주의 깊게 살피고 보폭을 맞춰야 하는 이유다. 당장 트럼프 정권의 황금 함대 구상도 시작부터 예산 확보의 벽에 부딪힌 상태다. 포브스에 따르면 미 의회조사국(CSR)은 지난 1월 4일 '해군 유도미사일 전함 프로그램' 보고서를 발간했다. 현지 조선소의 건조 역량 포화 최신 이지스함 5척에 달하는 차세대 전함의 비싼 가격 레일건을 비롯한 전함 탑재용 신무기 기술 개발 실현성 등 트럼프 정권의 황금 함대 계획에 대대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는 설명이다.
업계에서는 "현지 거점 등으로 미국과 긴밀히 협력하되, 주도권은 K조선이 쥐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전례 없는 규모의 산업 협력인 데다 현지 사정까지 불확실성의 연속인 만큼, 한국이 지닌 기술 우위와 시장 지배력을 바탕으로 양국이 '윈윈'할 수 있어야 한다는 시선이다.
▶황금 함대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025년 12월 23일 발표한 미 해군의 대규모 함정 현대화 전략이다.
공개된 구상에 따르면 트럼프급 전함은 과거 아이오와급 전함을 능가하는 3만~4만톤급의 거대한 덩치를 자랑한다. 여기에 16인치 함포 대신 극초음속 미사일과 전자기 레일건, 고출력 레이저 무기 등 아직 실전 배치가 완료되지 않은 미래 무기체계를 대거 탑재할 계획이다. 드론과 미사일이 지배하는 현대 해전에서 '맷집'과 '화력'으로 적을 압도하는 바다 위의 요새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거함거포주의의 귀환이라는 평가다.
초대형 전투함인 트럼프급(USS 디파이언트) 전함을 2척 먼저 건조하고 궁극적으로는 20~25척으로 확대한다. 전체 함대 구성은 약 280~300척으로 예성된다.
한편 황금 함대라는 명칭에는 미국 제조업의 황금기를 재현하겠다는 의지도 담겨 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쇠락한 미국 조선업을 부활시키겠다는 마스가(MASGA) 비전을 함께 제시했다.
눈여겨볼 점은 이 거대한 구상의 실현 파트너로 한국을 지목했다는 사실이다. 당장 트럼프 대통령은 발표 현장에서 "한국의 한화와 협력해 새로운 호위함을 건조할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미국 본토 조선소의 건조 역량이 한계에 다다른 상황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한국 조선사와의 협력이 필수적임을 인정한 셈이다. 실제로 한화오션이 인수한 필라델피아 필리조선소가 황금함대 구축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척당 50억달러(약 7조4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건조 비용과 무인기 시대에 거대 전함이 표적이 될 수 있다는 효용성 논란 때문이다. 현직 대통령의 이름을 딴 함명 제정 역시 해군의 오랜 전통을 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 행정부는 황금함대를 통해 중국의 해양 팽창을 원천 봉쇄하겠다는 전략적 목표를 분명히 했다. 현재 함정 수에서 미국을 앞선 중국 해군을 질적인 격차로 따돌리겠다는 것이다. 1907년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이 '대백색 함대'를 파견해 미국의 힘을 세계에 알렸듯 트럼프 대통령은 황금함대를 통해 자신의 시대를 역사에 각인시키려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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