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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현희의 눈] 불안의 정체는 비교 아닌 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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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사람들을 힘들게 만드는 건 비교라기보다 속도다. 남과 나를 견줘서 생기는 열등감은 예전에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조금 다르다. 남보다 못 살아서 불행해지는 게 아니라 남들 인생이 너무 빨리 지나가는 것처럼 보여서 숨이 막힌다. 뒤처졌다는 감정이 아니라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이미 끝난 것 같은 기분. 이게 요즘 불행의 정체다.

SNS를 켜면 누군가는 이미 성공해 있고, 누군가는 벌써 은퇴를 준비한다. 서른 전에 집을 샀고, 마흔 전에 회사를 팔았고, 쉰 살엔 “이제 돈 걱정은 없다”고 말한다. 그 속도를 하루에도 수십 번씩 목격한다. 문제는 그게 평균도, 기준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머리로는 알고 있는데 감정은 계속 밀린다.

예전엔 비교의 단위가 사람이었다. 옆집 누구, 회사 동기, 친척 중 잘된 사람 하나 정도. 그래서 비교는 느렸고, 불행도 서서히 왔다. 지금은 속도의 단위가 콘텐츠다. 30초짜리 영상 하나로 남의 인생 10년을 훔쳐본다. 요약된 성공, 편집된 행복, 잘린 고통만 연속 재생된다. 내 인생은 하루 단위로 가는데 남의 인생은 배속으로 지나간다. 이건 애초에 공정한 비교가 아니다.

그래서 요즘 불안은 방향이 조금 다르다. “나는 왜 못났을까”가 아니라 “나는 왜 이렇게 느릴까”다. 아직 포기한 것도 없고, 실패를 확정 지은 것도 아닌데 마음이 먼저 지쳐버린다. 다들 전력 질주하는 것 같고, 혼자만 제자리걸음 하는 기분이 든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도 걷고 있다. 다만 그 장면은 잘 찍히지 않을 뿐이다.

속도가 불안을 만들면 판단도 흐려진다. 투자도 그렇고, 인생 선택도 그렇다. 빨리 결정해야 할 것 같고, 지금 안 하면 끝날 것 같다. 그래서 원래라면 고민했어야 할 선택을 ‘늦을까 봐’ 해버린다. 속도에 쫓기면 기준이 사라진다. 나에게 맞는 속도가 아니라 뒤처지지 않을 최소 속도만 남는다.

이쯤 되면 느리게 가는 사람이 문제라기보다 너무 빠른 장면만 보여주는 세상이 문제다. 누구나 자기 속도로 살 수 있다고 말하면서 동시에 초고속 성공담만 노출되는 구조. 이중 메시지 속에서 사람은 계속 자책하게 된다. 괜히 쉬는 게 죄 같고, 멈추면 도태되는 것 같아서.


사실 인생에서 중요한 결정들의 대부분은 빠를수록 좋은 게 아니다.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오히려 적기인 경우도 많다. 다만 그 사실은 조회 수가 안 나온다. 조용하고, 길고, 설명이 필요하니까. 그래서 사람들은 더 빠른 이야기에 끌리고, 더 빠른 사람에게 흔들린다.

요즘 필요한 건 비교를 끊는 결심보다 속도를 재정의하는 일인지도 모른다. 남보다 느린 게 아니라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속도로 가고 있는지 묻는 것. 인생은 레이스가 아니라 각자 다른 시간표를 가진 여정이라는 말이 여전히 유효하다면, 지금 느끼는 불안은 실패의 신호가 아니라 과속 경보일 수도 있다.

남들 인생이 너무 빨라 보일 때 그건 내가 느린 게 아니라 화면이 빠른 것일 수 있다. 가끔은 그 화면을 끄고 자기 속도를 확인하는 게 이 시대를 버텨내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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