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강록 |
[서울=뉴시스] 최지윤 기자 = 상금 3억원을 눈앞에 두고, 상대와 경쟁하기 보다 자기점검을 했다. 결승전 나를 위한 요리마저도, 힘든 음식을 택했다. 깨두부를 만들기 위해 몇 십 분간 팔로 젓기만 했고, 노동주인 빨간뚜껑 소주와 함께 심사위원 앞에 내놨다. 깨두부는 주방에 갓 들어온 막내들의 근성을 테스트하기 위한 음식이다. 스타 셰프로 10년 넘게 살았지만 기술을 뽐내기 보다, 요리사 초심을 보여줬다.
넷플릭스 '흑백요리사 : 요리 계급 전쟁2' 우승자 최강록(47)이다. 13년 전 올리브 '마스터 셰프 코리아2'(2013)에서 우승했고, 흑백요리사1(2024)에 이어 재도전했다. 흑수저 요리괴물(이하성)을 꺾고 상금 3억원을 거머쥐었다. 심사위원 안성재가 그릇째 들고 먹게 만들었고, 백종원까지 만장일치 선택을 받았다. '조림 인간' '연쇄 조림마' '조림핑' 등의 별명을 얻었지만, "조림을 잘 못하지만 잘하는 척 했다. 척하며 살아온 인생이 좀 있었다"고 해 울림을 줬다.
"각각의 음식에는 요리사가 만드는 의미가 있다. 나한테 깨두부는 '게을러 지지 말자'는 의미다. 나이 들면 잘 안 하게 된다. 팔이 아프고 힘드니까. 가끔씩 자기점검 차원에서 '예전에 참 잘 만들었는데' 하는 음식이 있는데, 깨두부는 그런 의미다. 깨두부가 나한테 준 의미를 생각하며 음식하는 사람으로서 심사를 받고 싶었다. 보통 스텝밀이라고 한다. 직원들이 해 먹는 음식인데, 요리로 낼 수는 없다. '결승에 어울리는 음식일까' 많이 고민했지만, 미션이 그렇게 정해져서 나왔다."
마셰프에선 깨두부 디저트를, 흑백요리사2에선 깨두부를 곁들인 국물요리를 선보였다. "마셰프 때는 젤라틴을 넣어서 굳히는, 힘이 덜 드는 디저트 의미였다"며 "이번에 깨두부는 중년에 접어든 사람이 체력이 약해지고, 창의력도 많이 없어지고 머리도 빨리 안 돌아가는 것 같은데, '조금만 더 힘내라'는 의미의 깨두부였다"고 짚었다.
"이제 또 앞으로의 나이를 먹는다. 한 10년 정도 살아가야 될 이유가 된 것 같다.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다. 마스터 셰프를 빼놓고 얘기하기 어려웠다. 그 프로그램을 통해 '조림하는 요리사'라는 가면을 알게 모르게 쓴 것 같다. 십수년이 지났는데, 흑백요리사2 마지막 미션이 나를 위한 요리가 아니었으면 자기 고백을 못했을 수도 있다. 마침 나를 위한 요리를 통해 내가 그런 척을 한 얘기를 한 번 해보고 싶었다."
흑백요리사는 맛 하나는 최고라고 평가 받는 흑수저 셰프가 최고의 스타 셰프 백수저에게 도전장을 내미는 100명의 계급 전쟁이다. 시즌1에 이어 시즌2도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TV쇼 비영어 부문 1위를 찍었다. 최강록은 시즌1 직후 식당 '네오'를 폐업, '물 들어올 때 노를 젓지 않는다'는 불평이 쏟아졌다. 시즌2 인기에 힘입어 식당을 열 법도 한 데, 여전히 오픈 계획이 없다. "상금은 노년에 국숫집을 할 때 보태 쓸 생각"이라며 "흰쌀밥에 오이짠지 먹는 걸 좋아한다. 쌀의 당분과 짠지의 염분이 묘하게 맛있다"고 귀띔했다.
"식당을 문 닫은 이유는 기간이 다 돼서 그렇다. 별다른 이유는 없다. 마침 흑백요리사1이 잘 되면서 또 다른 기대감을 갖고 오는 손님들이 늘어난 건 사실이다. 다행히 엑시트가 있어서 거기에 맞춰 자연스럽게 문을 닫았다"면서 "흑백요리사3는 가게가 없어서 못 나갈 것 같다. 노년에 조그마한 식당을 열 계획이 있다. (깨두부 요리를 먹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은데) 좋은 기억을 해치고 싶지 않다. 맛이 없어서 엎을 수도 있으니까. 좋은 기억은 고이 간직해주면 감사하다"고 했다.
최강록은 시즌1 김도윤과 함께 히든 백수저로 등장했다. "도파민을 충전하기 위해 나왔다"며 시즌1과 달리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런 연출인 줄 알았으면 아마···. 히든 백수저로 올라가서 느낀 게 있다. 내려가고 싶었지만, 너무 높은데 올려놔서 점프는 할 수 없었다"며 "내 주변에도 (흑백요리사에) 나가고 싶어하는 분들이 정말 많다. 한 번 나온 사람이 또 나왔다는 데 책임감이 있었다. 어디까지 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많이 간 다음에 집에 갔으면 했다"고 돌아봤다.
"첫 번째 떨어지면 안 된다. 팀전은 이기고 가자"는 각오였다. "나름의 결승점은 팀전이었다"면서 "통과되면 '이후는 그때 생각나자' 싶었다. 팀전을 세 번, 서로 게임을 안 뛰더라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순간이 짜릿하지만 굉장히 힘들었다. 집에 가서 빨리 잤다"며 웃었다.
"달리 설명할 길이 없어서 도파민 충전이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충전은 된다. 우리가 살면서 '큰 무대는 잘 없다'고 생각한다. 또 거기 나가기 위한 가면을 쓰고 나가기 위한 무대가 있고, 기회가 있다면 잡는 게 좋지 않은가. 후배들한테도 '나를 자꾸 욕하지 말고 꼭 나가 봐'라고 한다. 항상 나한테도 '대본 있죠?' '짜고 하는 거죠?' 등의 얘기를 하는데, 나가보면 알 거다. 실제로 나갔다가 와서 내 손을 잡고 '힘들었겠어요'라고 한 분도 있다."
방송 시작 전부터 '어차피 우승은 최강록'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지난해 9월 말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우리 누나 넷플릭스 일하는데 흑백요리사2 최강록 우승이래'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한 네티즌은 "누나가 자기 친구들이랑 오빠들한테 흑백요리사2 최강록 우승이라고 카톡방에 뿌리면서 소문내듯 알려주더라"고 했다. "업계 사람 말로는 최강록이 우승"이라며 "준우승자는 시즌1에 안 나온 미국에서 활동하던 셰프"라는 스포가 퍼져 김이 샐 수밖에 없었다.
최강록은 스포 위험 탓 가족들에게도 우승을 알리지 않았다. "딸아이가 (결승전을) 같이 보면서 툭 치더라"면서 "아내에겐 중간에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자꾸 외박을 하게 돼 가정에 금이 갈 것 같아서 얘기했다. 초반에 숨기는 게 조금 어려웠다"고 토로했다. 김학민 PD는 "초반 우승자 최강록 셰프 스포일러는 실수라고 말하기 어려운 의도를 가졌다"며 "넷플릭스에서 별도로 어떤 식으로 유출됐는지 조사를 거칠 예정이다. 추후 밝혀지는대로 얘기가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제작진 실수도 이어졌다. 9회에서 요리괴물이 제작진과 인터뷰할 때 명찰에 실명 이하성이 노출됐다. 네티즌들은 시즌1 우승자인 흑수저 나폴리 맛피아가 결승 진출을 결정지었을 때 본명 권성준을 공개한 만큼, 요리괴물이 백수저 손종원을 꺾고 톱7에 올랐다고 예상했다. 손종원은 스포대로 요리괴물에 져 톱7에 들지 못했다.
김 PD는 "제작진도 회차가 나오고 발견한 부분이다. 몰랐던 상황에서 벌어진 실수지만 큰 사고다. 나와 김은지 PD에게 책임이 있다. 시청자들께도 너무 죄송하다"면서 "최강록, 이하성 셰프도 피해자가 됐다. 그 실수로 인해 재미를 잃을 수밖에 없었던 시청자들께 죄송하다는 말씀 꼭 드리고 싶다. 한 회차를 수십번 보고 후반에 또 보는 팀도 있는데, 어느 순간 누구도 모르는 지점에 사고가 터지더라. 한 컷을 놓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우리 부족함"이라며 자책했다.
최강록은 전역 후 만화책 '미스터 초밥왕'을 보고 뒤늦게 요리사 걸을 걸었다. "요리를 장사 수단으로 선택했다. '이걸로 장사해야 되겠다' 해서 음식을 접하다가 그 과정 속 거꾸로 가게 됐다"며 "'더 배우지 않으면 안되겠다'는 필요성을 느끼고, 서른이 다 된 나이에 유학을 가는 게 쉽지 않았다. 콤플렉스를 계속 갖고 가면 안 될 것 같았다. 일본요리를 기왕 시작했으니 '일본에서 배워봤다'는 나름의 기록을 남겨야 '계속 일을 해나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거꾸로 가서 지금까지 하고 있는데, 매 순간 순간 좋았다. 맛있게 드시고 '진짜 잘 먹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요리하길 잘했다' 싶었다"고 털어놨다.
요즘은 화려한 요리에 열광하고, 빨리 빨리 먹는 시대이다. 시간이 많이 걸리는 조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요리가 뭐냐'는 질문을 받으면, 항상 있어 보이는 척 하려고 '시간과 귀찮음이 만들어낸 예술'이라고 한다. 거기에 걸 맞는 조리법이 조림이다. 물론 첫 번째는 아닐 수 있지만, 가장 부합하지 않나 싶다"면서 "중식을 다이나믹하게 하는 뒷모습을 부러워 한다. 일본 요리는 아무래도 정적인 부분이 많다. 일본은 물의 요리, 중식은 불의 요리라고 한다. 불의 요리를 하고 싶은 속마음은 있다"고 했다.
지난해 쓴 책 '요리를 한다는 것'에서 자신의 조림 점수는 51점이라고 했다. "인생의 52%가 요리의 비중이라고 말씀드린 부분인데, 여기서 그래도 우승했으니까 53%가 된 것 같다"며 "안성재 셰프님이 마지막에 '저에게 최강록 셰프님은 언제나 조림핑이십니다'라고 한 게 기억에 남는다. 앞에 (연쇄조림마가 아니라) 연쇄살인마라고 해놓고···. (마셰프 심사위원) 강례오 셰프님에겐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난 그냥 요리는 'TT 관리'라고 얘기한다. 시간과 온도 관리다. 결국 숫자로 보여지고 결과물이 나와서 특별하게, 엄격하게 지키지 않고 숫자에 따르는 것 뿐이다. 대부분 요리하는 분들이 다 이렇게 하는 거라서 나에게 특별함이 있는 것 같진 않다. 시즌1 때 여경래 셰프님을 보고 '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싶었다. 지는 것에 굉장한 부담감이 있었는데, 대선배들을 보면서 '저분들도 임하는데 나 따위가···' 싶더라. 조금 더 힘을 낼 수 있는 존재였다. 시즌2에선 후덕죽 셰프님이 그랬다. 10~20년이 지나고 현업에 있을 때 (심사위원) 제안이 오면, 그런 존재로 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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