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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달려야 계속 달릴 수 있는, ‘그냥’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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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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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기를 하는 이유가 있으세요? 스트레스를 풀려고? 아니면 건강을 위해서요?”



내가 달리는 이유는 스트레스 해소를 위한 것도 아니고 건강을 위한 것도 아니다. 부수적으로 그런 효과가 따라오긴 하지만 말이다.



“왜 마라톤을 하나요?”, “무엇 때문에 달리나요?” 사람들이 많이 하는 질문이다. 그러면 무엇 때문에 달리지 않는가? 달리지 않는 데 딱히 이유가 없는 것처럼 달리는 데도 별다른 목표가 없을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유 없이 그냥 달릴 때 달리기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다.



뚜렷한 목표가 있으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노력을 구체화하고 꾸준히 이어나갈 힘이 생긴다. 그런데 목표를 달성하고 나면 또 다른 목표를 세워야 하고, 그 다음의 목표가 또 필요하다. 그래서 제일 좋은 건 그냥 달리는 거다.







습관적인 “죽고 싶다”…“재미없다”의 다른 말







동현씨는 하루에도 몇 번씩 죽고 싶다고 혼잣말하는 버릇을 고치고 싶어서 병원을 찾았다. 죽어야지, 자살해야지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지만 가만히 있다가 ‘죽고 싶다’를 되뇐다고 했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 샤워할 때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을 반복했다.



치료하면서 증상이 많이 호전되었지만, 문득 죽고 싶다는 문장이 떠오르거나 말로 되뇌는 습관이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다. 그러다가 휴가로 떠난 여행지에서 단 한 번도 죽고 싶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현씨는 기대하며 꿈꿔왔던 여행이었기에 즐겁고 행복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스스로 많이 좋아졌다고 느끼며 여행에서 돌아왔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온 뒤 샤워하다가 다시 죽고 싶다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간 일상생활을 하면서 죽고 싶다는 말을 했던 것도 매우 우울하거나 무기력하고 힘들어서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여행하는 동안의 행복감에 비하면 상대적으로 밋밋하고 무난한 하루하루였다. 평범하고 재미없는 일상에 비해서 자유롭게 새로운 곳을 여행하는 게 즐거웠다.



“어떻게 생각되세요? 그동안 습관처럼 죽고 싶다고 말하게 되었던 느낌이 사실은 재미없다, 사는 게 뭐 이래와 같은 느낌이 아니었을까요?”







괜찮아, 원래 재미 없어, 그냥 사는 거야







“전에 선생님 말씀처럼 행복하다는 감정이 상대적인 게 맞는 거 같아요. 그리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것도 지루하다, 즐겁지 않다, 행복하지 않다는 뜻으로 내뱉었던 거 같아요.”



“그냥 사는 거예요. 삶은 앞으로도 재미없고 지루하고 또 힘들 거예요. 그러다가 또 어떤 때는 즐겁고 행복할 거예요. 그저 그런 평범하고 무료한 날들이 있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수월하고 만족스러운 날도 있고 즐겁고 행복한 순간도 있을 거예요. 다시 죽고 싶다는 말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면 소리 내어 말해 보세요. 괜찮아! 그냥 사는 거야. 원래 재미없는 거야. 그래도 나는 그냥 살 거야.”







목표 있어야 열심히 사는 것 같지만







그냥 사는 건 어떤 것일까? 또 그냥 사는 것이 아닌 건 무엇일까?



미디어를 통해 좋은 집에서 여가 생활을 누리면서 멋지게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현재 내 모습에 비해 좋아 보이고 부러울 뿐이다. 누가 봐도 그럴듯하게 살아야 성공한 삶이고 제대로 사는 것처럼 생각된다. 이처럼 우리는 남이 정해주는 가치에 따라 살려고 한다.



스스로 만족하는 삶을 살려면 타인의 기준이 아니라 내가 정한 가치에 따라 살면 된다. 쉽다. 그런데 어떤 것 때문에 그렇게 살지 못할까?



“인생의 목표가 뭐예요?”라는 질문에 “그냥 살아요”라고 대답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는가? 생각도 없고 목표도 없는 사람으로 비치면서 별 볼 일 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 같다. 성실하지도 않고, 삶의 계획이나 규칙도 없고, 의지도 없이 즉흥적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낭비하는 나태한 사람으로 평가될 것 같다. 그래서 뚜렷한 목표 없이 나에게 맞게 그냥 사는 게 어렵다.



누가 나에게 게으르다 혹은 불성실하다고 평가하는 것도 아닌데 스스로 못 견뎌서 목표를 정하고 삶의 규칙을 만든다. 그래야 열심히 사는 것 같고 불안이 사라지는 느낌이 든다.







걱정·불안 가리려 목표를 정하는 것







“선생님, 저는 자책하며 동기부여를 해요. 왜 나는 이것밖에 안 되지? 이렇게 게으르게 지내다가는 살만 더 찌고, 그럼 또 짜증나고 무기력해질 거야. 운동이라도 해야 해! 이렇게 스스로를 다그쳐요. 자책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잘 살고 싶어요.”



마음 안에 자리 잡은 불안, 두려움, 걱정, 염려, 우울을 가리기 위해 우리는 목표를 정한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사는 사람이야’라고 내세울 수 있는 명분이나 근거가 필요하다. ‘하루 10분 영어 스피킹 연습지’, ‘주 3회 공복 유산소 운동으로 5kg 체중 감량’, 목표에 따르는 스스로의 규칙을 지키면 뭐라도 한 것 같아서 불안이 조금은 잦아든다. 우리는 불안에 시달리지 않기 위해 목표에 매여 관리받는 존재가 되었다.



이미 충분히 잘살고 있음에도 스스로를 게으르며 무기력하다고 평가하는 것을 진료하면서 자주 접한다. 외국어 공부와 자격증 취득, 이직 준비, 재테크, 혹은 운동을 다른 사람만큼 하지 못한다면서 스스로를 닦달한다. 현실에서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며 부지런하게 살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만족하지 못한다. 필요한 휴식도 취하지 못한 채 가만히 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에 시달린다. 퇴근 후나 주말에도 운동, 공부, 여행, 취미 생활 등 나름의 목표를 정하고 달성하려고 애쓴다.







기록을 목표 삼지 않을 때, 오래 달릴 수 있다







나는 달리기를 하면서 기록을 목표로 달리지 않았다. 몇 시간 몇 분의 기록을 정하지 않았다고 해서 안주하거나 게을러지지는 않았다. 달리면서 현재 내 몸에서 자연스럽게 나오는 달리기 페이스가 어떻게든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구체적인 기록을 목표로 정하거나 훈련하지 않아도 결국 더 나은 기록이 나오는 걸 경험한다. 몸과 마음은 항상 현재 상태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갔고, 그러다 보면 향상된 기록도 따라왔다. 무엇을 시작하려고 할 때 앞에 붙는 수많은 수식어를 내려놔 보자. 때로는 그냥 하는 것이 어쩌면 오랫동안 지속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의 방법이 되기도 한다. ‘그냥 한다’는 것은 힘들고 어렵다고 해서 피하지 않고 마주하며 지속해 낸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글의 상담 사례로 등장하는 이름은 모두 가명이며, 실제 상담 경험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임을 알려드립니다.







# 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은?



김세희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는 세계 6대 메이저 베를린·보스턴·도쿄·시카고·런던·뉴욕 마라톤을 포함해 50여 차례 국내외 풀코스 마라톤을 완주했다. 최고 기록은 2024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세운 3시간7분30초다. 현재 삼성서초사옥 마음건강클리닉에서 사내 임직원을 진료하고 있으며 대한 육상연맹 이사를 맡고 있다.



마음이 속상하고 힘들 때,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스스로 마음을 보듬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답은 마음에서 일어나는 느낌을 알아차리고 이해하는 데 있다.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인 필자는 마라톤을 하면서 마음에 일어나는 생각과 느낌을 성찰하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고, 스스로 내면을 풍요롭게 유지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새벽마다 달리며 지친 이들의 마음 건강을 돌볼 수 있는 원동력을 얻고 있다. 20년간 달리기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통해 깨달은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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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하는 정신과 의사 김세희의 ‘마인드 업’ 연재 바로 가기



https://www.hani.co.kr/arti/SERIES/3322





김세희 | 강북삼성병원 기업정신건강연구소 임상교수·‘마음의 힘이 필요할 때 나는 달린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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