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에서 진행된 이란 이슬람 정권 반대 시위 참가자가 긴급 지원을 요청하는 'SOS'를 얼굴에 적었다./AFP·연합 |
아시아투데이 하만주 워싱턴 특파원 = 이란 전역을 뒤흔들었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당국의 무자비한 유혈 진압으로 소강상태에 접어든 가운데, 미국과 이란의 정상 간 설전은 최고조로 치닫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17일(현지시간) 이란의 '정권 교체'를 공식적으로 거론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고,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이번 시위로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이 미국의 책임이라고 주장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3일(현지시간) 미시간주 디어본의 포드자동차 생산 공장을 방문하고 있다./로이터·연합 |
◇ 트럼프 "하메네이, 병들고, 이란 완전 파괴...새로운 지도자 필요"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국 인터넷 매체 폴리티코 인터뷰에서 이란 이슬람 체제의 정통성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37년째 장기 집권 중인 하메네이 체제를 실패로 규정하면서 사실상 정권 퇴진을 요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제 이란에서 새로운 지도자를 찾아야 할 때"라고 강조한 뒤 하메네이를 겨냥, "그 남자는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고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멈춰야 할 병든 사람(sick man)"이라며 "한 국가의 지도자로서 그가 저지른 죄는 국가를 완전히 파괴한 것"이라고 규탄했다.
그의 발언은 시위 동력이 약화되는 시점에서 미국의 개입 의지를 재확인하려는 의도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당초 시사했던 군사적 타격을 보류한 배경과 관련, 이란 당국이 예정되었던 대규모 공개 처형을 취소했다는 정보를 언급하면서 "이틀 전 800명 이상을 교수형에 처하지 않은 것은 그(하메네이)가 내린 최고의 결정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미국이 군사 행동의 명분으로 삼았던 '인도적 참사'가 일시적으로 해소되었다는 판단하에, 직접적인 무력 충돌보다는 체제 흔들기에 집중하겠다는 전략적 유연성을 내비친 것으로 해석된다.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17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에서 진행된 모임에서 연설하고 있다./이란 최고지도자실 제공·로이터·연합 |
◇ 하메네이 "트럼프, 범죄자...시위, 미국의 이란 삼키기 음모"
이에 앞서 하메네이는 이날 이번 시위 사태가 자생적인 민심의 폭발이 아닌 외부 세력의 공작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메네이는 "우리는 미국 대통령을 이란 국민에게 사상과 피해, 비방을 가한 범죄자라고 간주한다"며 "미국의 목표는 이란을 삼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면서 "이번 반(反)이란 선동은 미국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개입했다는 점에서 과거와 다르다"고 덧붙였다.
이는 내부 결속을 다지고 강경 진압의 명분을 확보하려는 '외부 적 만들기' 전략으로 풀이된다.
하메네이는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밝히면서도, 국내외의 '적'들에 대한 무관용 원칙을 재확인했다. 그는 "우리는 나라를 전쟁으로 끌고 가지 않을 것이지만, 국내·외 범죄자들은 처벌하지 않고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 테헤란 엔겔라브 광장의 광고판에 페르시아어로 '이란은 우리의 조국이다'라고 쓰여 모습으로 16일(현지시간) 찍은 사진./EPA·연합 |
15일(현지시간)찍은 이란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 모습./로이터·연합 |
◇ 하메네이 '수천 명 사망' 공식 인정...이란, 인터넷 접속 영구 차단 추진
이번 사태의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인명 피해의 규모다. 영국 BBC방송·로이터통신은 하메네이가 연설 중 '수천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음을 처음으로 공식 인정했다고 평가했다. 이는 이란 당국이 그동안 사망자 수를 축소하거나 은폐해 왔던 기조와는 다른 행보다.
다만 하메네이는 "이스라엘 및 미국과 연계된 자들이 막대한 피해를 주고 수천 명을 죽였다"고 주장했다. 미국 기반 인권운동가통신(HRANA)에 따르면 이날까지 시위로 인한 사망자는 시위대 2885명 등 최소 3090명이고, 2만2123명 이상이 체포됐다.
진실을 가리기 위한 이란 당국의 정보 통제도 계속되고 있다. 인터넷 감시단체 넷블록스(NetBlocks)는 이란의 인터넷 연결성이 평소의 2% 수준에 불과하다고 보고했다. 이는 정보의 유출을 막고 시위대의 조직화를 방해하기 위한 '디지털 고립' 전략이 장기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더 나아가 이란 정부는 인터넷 접속 권한을 앞으로 정부가 사전에 승인한 소수에게만 허가하고, 일반 국민의 접속 권한을 영구적으로 차단하는 방안을 은밀히 계획 중이라고 영국 일간 가디언이 16일 이란의 인터넷 검열 감시단체 '필터워치'의 보고서를 인용해 보도했다.
15일(현지시간)찍은 이란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 모습./로이터·연합 |
15일(현지시간)찍은 이란 테헤란의 전자 상가 모습./로이터·연합 |
◇ 이란, 실탄이 휩쓸고 간 '죽음의 정적'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CNN·NBC 등이 전한 이란 현지의 상황은 참혹하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란 보안군은 시위 해산을 위해 비살상 무기가 아닌 실탄을 조준 사격했다.
카라지 지역의 한 목격자는 CNN에 "정권의 보안군이 사람들에게 실탄을 발사하는 것을 봤다"며 "총알은 주로 복부와 그 아래 성기를 겨냥해 발사됐고, 거리에서 피를 봤다"고 말했다.
무자비한 진압과 공포 분위기 조성으로 인해 대규모 시위는 현재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NBC와 NYT는 이란 거리에 군경이 배치돼 사실상 계엄령과 같은 적막이 흐르고 있다고 전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이러한 상황이 이번 사태의 끝이 아니라고 경고한다. 시위의 근본 원인인 경제 파탄·물 부족·사회적 억압이 해결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나 아조디 미국 조지워싱턴대 중동연구 프로그램 소장은 NBC에 "그들은 국민과의 전투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결국 전쟁에서는 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13일(현지시간) 소셜미디어(SNS)에 게시된 영상에서 14일 캡처한 사진으로 테헤란주 카흐리자크의 법의학 진단 및 실험 시설 내부에 수십 구의 시신이 놓여 있다./AFP·연합 |
◇ 이란 시위대의 절망 "트럼프, 우릴 총알받이로 썼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이란 시위대가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배신감과 복잡한 심경을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13일 소셜미디어(SNS) 플랫폼 트루스소셜을 통해 이란 시위대를 '애국자'로 지칭하며 현 정권의 전복을 의미하는 '정부 기관 점령(Take Over Your Institutions)'을 주문하면서 "도움이 가고 있다"고 말했다가 군사 행동을 유보하자, 목숨을 걸고 거리에 나섰던 시민들은 허탈감에 빠졌다는 것이다.
한 테헤란 시민은 "모두가 '이 나쁜 놈이 우리를 총알받이로 썼다'고 계속 말하면서 분노하고 있다"며 "이란인들은 자신들이 놀아났고, 트럼프가 우리를 속였다고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시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오락가락한 행보에 대해 "그가 일을 망쳤다. 우리 발밑의 양탄자를 잡아당겼다"며 "트럼프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가 왜 하겠는가. 그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서는 여전히 이것이 트럼프 대통령의 고도화된 심리전일 수 있다는 기대를 놓지 않고 있다.
테헤란의 한 엔지니어는 "그가 정권을 속이고 있는 것"이라며 "그는 결국 공격할 것이고, 아주 강력하게 공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미 매체 "하메네이 있는 한 개혁 불가능"
미국 온라인 매체 복스(Vox)는 현재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통치 방식이 한계에 봉착했다고 진단했다. 경제 붕괴와 무력 통치에 의존하는 현재의 궤도는 지속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복스는 "이슬람 공화국의 현재 궤도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며 "방향을 수정하지 않으면 경제의 점진적 내부 붕괴와 무력에 대한 의존이 결국 정권을 파멸로 이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매체는 하메네이가 생존하는 한 체제 생존을 위한 개혁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분석했다.
복스는 "그들 앞을 가로막고 있는 단 하나의 장애물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라며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무엇이든 하겠지만, 그는 타협을 이슬람 공화국을 더욱 약화시키는 길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이란의 변화는 86세 고령인 하메네이가 사망하고 난 뒤에야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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