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은 한때 낡은 소규모 공장과 오래된 주택가, 방치된 공간이 혼재해 있던 지역이었다. 한마디로 낙후된 강북 지역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성수동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갖게 됐다. 개성 넘치는 가게들이 골목마다 들어섰고, 엔터테인먼트·게임 기업들이 속속 자리를 잡았다. 어두침침했던 유휴 부지들은 휴식과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숙원사업이던 샘표 공장 부지 이전이 확정되며 첨단 기업과 스타트업을 위한 기반도 마련됐다. 하드웨어적 변화뿐 아니라, 일상의 불편이 눈에 띄게 개선되는 도시로 바뀌었다.
이 같은 변화의 중심에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이 있다. 그는 지난 12년간 성동구청장으로 재임하며 상전벽해에 가까운 변화를 이끌었다. 최근에는 더불어민주당의 서울시장 후보군으로도 거론된다. 그는 최근 ‘성수동’(메디치미디어)과 ‘매우 만족, 정원오입니다’(시공사) 두 권의 책을 잇따라 펴내며 성동구에서의 행정 경험과 도시 철학을 풀어냈다.
성수동엔 왜 붉은 벽돌 건물이 많을까
서울숲 카페 거리가 뉴욕 브루클린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를 갖게 된 배경에는 붉은 벽돌이 있다. 1960년대 모나미가 마포에서 성수로 이전한 뒤 구두·자동차 정비·인쇄 공장들이 들어서면서, 당시 유행하던 붉은 벽돌로 건물이 지어졌다. 시간이 흐르며 재건축과 리모델링이 이어졌고, 이 과정에서 붉은 벽돌 건물들은 하나둘 사라지기 시작했다.
정 구청장이 붉은 벽돌 지원 사업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디자이너 지춘희의 한마디였다.
“붉은 벽돌은 튀지 않지만 정직하고 따뜻하죠. 성수동 분위기와 딱 맞는 재료예요.
이를 중심으로 도시의 결을 잡아보는 건 어떨까요.”
이 제안을 계기로 성동구는 2017년 관련 조례를 제정했다. 붉은 벽돌로 리모델링하거나 신축할 경우 공사비의 절반, 최대 2000만원을 지원하고 용적률 인센티브도 제공했다. 그 결과 지난 10년간 130곳의 붉은 벽돌 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붉은 벽돌은 이제 서울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성수동만의 감성이자 정체성이 됐고, 성수동은 ‘한국의 브루클린’이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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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vs 재생, 이분법적 접근 대신 전략적 선택”
그는 “심각하게 낙후되거나 슬럼화돼 사회·문화적으로 회복 가능성이 거의 없는 지역은 재개발을 추진할 수밖에 없다”며 “반대로 잠재력이 풍부하고 입지와 문화적 매력이 축적된 지역은 도시 재생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철거냐 존치냐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 특성에 대한 분석과 진단을 바탕으로 한 전략적 선택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 구청장은 주민 공청회를 거쳐 성수동 일대를 전면 철거해 고층 주거·상업시설로 조성하려던 뚝섬 특별계획 3·4·5구역을 해제했다. 대신 IT·디자인·유통·콘텐츠 산업 등이 뿌리내릴 수 있도록 성수 IT산업·유통개발진흥지구를 4배 확대하고, 용적률을 최대 560%, 건축물 높이를 120m까지 완화했다. 스타트업과 중소기업, 글로벌 기업이 함께 들어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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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은 조연, 혁신가와 주민이 주연
그의 행정은 혁신가와 주민이 제안하고 앞장설 수 있도록 논의의 장을 여는 데서 출발했다. 공무원은 이를 정리해 가이드라인으로 만들고, 조율하는 역할에 머물렀다.
다만 성수동 역시 ‘뜨는 동네의 역설’에서 자유롭지는 않다. 가로수길과 경리단길에서 나타났던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이곳에서도 고개를 들고 있다. 정 구청장은 상생협약과 주민협의체 등을 통해 이를 완화하려 했고, 일정 부분 성과도 있었다. 그러나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이어지며 폐업과 이전, 창작자의 이탈, 공간의 상업화, 커뮤니티 약화라는 새로운 과제에 직면해 있다고 인정한다.
그는 해법을 두고 “억지로 규제하거나 주도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정치는 주도가 아니라 조율이고, 끌고 가는 게 아니라 길을 터주는 일”이라는 것이다. 개인과 기업이 자유롭고 창의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설계하고 운영하는 것, 성수동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그는 확신했다.
이혜진 선임기자 has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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