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명동 상점의 쇼윈도에 겨울 의류가 전시되어 있다. 연합뉴스 |
“요즘 날씨 정말 봄 같아요. 겨울 패딩을 살까 고민했는데, 올겨울은 너무 따뜻해서 안 사고 버틸 것 같아요.”
한겨울에도 포근한 날씨가 이어지면서 올겨울 패션업계의 불확실성이 다시 한 번 커지고 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 이상기후까지 겹치며 의류 소비의 계절 공식이 흔들리고, 수익성과 재고 관리 부담이 동시에 확대되는 국면이다.
17일 서울에 거주하는 30대 직장인 A씨는 “패딩을 살지 고민했지만, 결국 사지 않았다”며 “최근 날씨가 너무 따뜻해 두꺼운 아우터를 입으면 오히려 거추장스럽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출퇴근할 때도 기존 코트나 얇은 점퍼로 충분해 올겨울에는 패딩이나 두꺼운 아우터를 아예 구매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실제 기상청이 발표한 2026년 기후 전망에 따르면 올겨울(1~2월) 기온은 평년보다 높을 확률이 약 50%로 제시됐다. 실제 기온 지표에서도 변화는 뚜렷하다. 서울의 2026년 1월 평균 최고기온은 약 6.2~6.5℃, 평균 최저기온은 -3.1~-0.1℃ 수준으로 나타났다.
일부 날짜에는 낮 최고기온이 10℃를 웃도는 포근한 날씨도 관측되며, 전형적인 한겨울 기온 분포와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업계에서는 추위가 몰아서 오지 않는 겨울이 반복되면서 겨울 아우터 판매의 피크 자체가 약화됐다고 보고 있다.
기온 상승은 정가 판매 기간 단축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겨울 상품 수요가 분산되면서 할인 시점이 예년보다 앞당겨졌고, 이에 따라 판매량 증가 이전에 수익성이 먼저 훼손되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 패션업계 한 관계자는 “날씨 변수는 이제 매출보다 수익성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환경에서 재고 부담은 패션업계의 구조적 리스크로 부상하고 있다. 계절 수요 예측이 어려워질수록 재고는 다음 시즌의 비용으로 전가되고, 이는 기업의 재무 부담으로 이어진다. 이에 따라 최근 패션 기업들의 전략은 외형 성장보다 리스크 관리와 구조 안정에 무게가 실리는 모습이다. 해외 사업 확대, 홀세일 비중 강화, 생산 물량 조절은 공격적 확장이라기보다 변동성에 대비한 방어 전략으로 해석된다.
소비 카테고리 변화도 뚜렷하다. 러닝과 걷기를 중심으로 한 액티브 라이프스타일 확산은 패션 소비 지형에도 변화를 만들고 있다. 유통·스포츠 업계 추산에 따르면 국내 러닝 및 걷기 참여 인구는 약 1000만명 규모로, 국민 5명 중 1명이 러닝에 참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러닝화 시장만 약 1조원 규모로 성장했고, 전체 운동화 시장은 약 4조원 수준까지 확대된 것으로 분석된다.
러닝을 중심으로 소비는 단순한 취미 활동을 넘어 하나의 경제 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스포츠·패션뿐 아니라 여행, IT, 커뮤니티 기반 서비스 등으로까지 영향력이 확장되는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이 같은 흐름이 계절 의존도가 높은 의류 소비를 일부 대체하며, 날씨 변수에 덜 흔들리는 새로운 수요 기반을 형성하고 있다고 보고 있다.
이상기후와 내수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주요 패션 기업들의 해외 전략도 보다 현실적인 방식으로 조정되고 있다. LF는 던스트(Dunst)를 앞세워 미국 홀세일(B2B) 시장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지난해 상반기 던스트의 미국 B2B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10% 증가했다.
삼성물산 패션부문 역시 직진출보다 홀세일·파트너십 중심 전략으로 리스크를 낮추고 있으며, 한섬은 시스템과 타임을 중심으로 프랑스 등 유럽 시장에서 유통망을 확대하며 현지 반응을 검증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글로벌 확장이 성장 서사라기보다 계절·재고 리스크를 분산하는 전략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플랫폼 대응도 빠르다. 무신사는 의류 중심 구조에서 벗어나 뷰티를 핵심 성장축으로 삼고 있다. 지난 2024년 무신사의 뷰티 거래액은 전년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고, 지난해 상반기에는 뷰티 페스타 등 이벤트 흥행으로 뷰티 카테고리 거래액이 5.8배 이상 늘어났다. 이 외에도 무신사는 신발 전문 매장인 무신사 킥스를 확대하고 아이웨어 카테고리도 키울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상기후가 일시적 변수가 아니라 사업 환경의 상수로 자리 잡았다고 보고 있다. 이에 따라 패션 산업의 과제 역시 단기 실적 방어를 넘어, 기후 변동성을 전제로 한 구조 전환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문제는 겨울옷이 안 팔리는 해가 아니라, 겨울 수요를 예측하기 어려워졌다는 점”이라며 “계절성을 전제로 짜인 상품 기획과 유통 구조를 얼마나 빠르게 조정하느냐가 향후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