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 전광판이 코스피 지수의 급등락을 보여주는 가운데, 거래소 직원이 전화 통화를 하는 모습. 연합뉴스 |
전홍진의 예민과 둔감 사이
민주씨는 20대 남성으로 대학교를 휴학하고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보통 학생들과 차이가 있다면 고급 외제 차를 몰고 출퇴근한다는 것입니다. 민주씨는 자신이 차에서 내릴 때 사람들이 바라보는 ‘하차감’을 즐기곤 했습니다. 자신이 비록 아르바이트생이지만 남들과는 다른 부자라고 상상할 때 쾌감을 느꼈습니다. 사실은 부자가 아니고 외제 차도 할부로 사 빚에 허덕이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민주씨는 옷도 명품을 고집했습니다. 특히 어깨나 팔에 명품 마크가 보이는 옷을 좋아했습니다. 이런 옷을 입고 나가면 자신을 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민주씨는 이제 명품 옷을 입고 외제 차에서 내려도 왠지 평범해 보인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모습이 주위에 너무 흔하므로 사람들이 자신을 특별하게 보는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백화점에 갔는데 주차장에서 자신보다 더 좋은 차를 타고 내리는 사람을 보고는 내가 하고 다니는 것이 별것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주씨는 자신이 다니는 학교도 마음에 들지 않았고 평범한 학생들과 섞여 있는 것이 싫었습니다. 수업을 들으면 지루하고 이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 지루하게 느껴졌습니다. 매사에 우울하고 재미가 없었습니다.
민주씨는 친구와 증권사를 찾아갔다가 우연히 해외 주식 투자 방법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친구는 해외 주식 투자로 꽤 많은 돈을 벌었다고 자랑했습니다. 민주씨는 호기심에 아르바이트 월급으로 친구가 추천하는 해외 주식 종목을 사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주가가 급등해 갑절로 뛰었습니다. 민주씨는 짜릿한 느낌을 받았고, 점점 해외 주식에 과몰입하게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하는 둥 마는 둥, 종일 스마트폰으로 시세를 확인하고 밤에도 잠을 안 자고 모니터링을 하는 일이 잦아졌습니다.
민주씨는 부모님께 급하게 숙소를 구하느라 돈이 필요하다며 빌리고, 친구와 지인에게까지 돈을 빌렸습니다. 이도 부족해서 신용대출을 받았습니다. 자신이 가진 거의 모든 돈을 ‘몰빵’하다시피 했습니다. 들어간 돈이 커지자, 시세가 오를 때 짜릿한 느낌도 더 커졌고, 심장이 두근거리고 온몸에 전율이 오는 것 같았습니다. 밤에 잠을 안 자고 아침이 와도 자신이 산 주식 시세가 오르면 조금도 피곤하지 않았습니다. 이제는 외제 차나 명품 옷에도 흥미가 없어졌습니다. 모두 중고 시장에 팔아서 모은 돈으로 다시 주식을 샀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보는 시선에도 점차 관심이 없어졌습니다. 마치 뭐에 홀린 사람처럼 멍하게 지냈습니다.
지난달 24일 기획재정부가 해외 주식을 팔고 국내 주식에 장기투자할 경우 해외 주식 양도소득세를 한시적으로 비과세하는 방안을 발표한 가운데, 서울 시내에 한 증권사 전광판에 미국 주식 광고가 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
어느 날 아침 스마트폰을 확인하는데 뉴스에 익숙한 회사 이름이 나왔습니다. 미국의 한 기업이 파산 신청을 했고 한국 피해자가 다수 발생하고 있다는 기사였습니다. 민주씨는 그 기업이 자신의 전 재산을 ‘몰빵’한 회사임을 알고 온몸에 소름이 돋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민주씨는 자신의 계좌에 있는 모든 해외 주식을 현금화하려고 했지만 손이 떨려서 제대로 조작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몇분 늦게 팔았는데 거의 10분의 1로 원금이 쪼그라들어 있었습니다. 민주씨는 자신이 원망스러워 그 자리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민주씨는 그 후로 우울한 기분이 너무 심해져 극단적인 생각까지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계좌에 남아 있는 금액을 볼 때마다 우울감은 더 커졌습니다. 이제 아르바이트도 하러 나가지 못하고 하루 종일 집에 박혀 밤에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시세를 계속 확인했습니다. 아들이 연락이 잘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여긴 부모님은 아들을 데리고 인근 정신건강의학과를 방문했습니다.
검사 결과 민주씨는 심한 우울증인 주요 우울 장애로 ‘정신병적인 증상’이 동반된 상태였습니다. 정신병적 증상은 누군가 자신을 보고 있고 자신의 계좌를 조작하고 있다는 망상적인 생각으로 나타났습니다. 민주씨는 잠을 거의 이루지 못했고 판단력이 떨어진 상태였습니다. 자신의 모든 것이 망가졌다는 절망감에 빠져 있었는데, 부모님 말씀에 의하면 손실을 본 금액이 민주씨 생각처럼 감당 못 할 정도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를 ‘빈곤망상’이라고 합니다. 빈곤망상은 객관적인 경제 상황과 관계없이, 자신이나 가족이 곧 파산하여 굶어 죽거나 길거리에 나앉게 될 것이라고 강하게 믿는 것을 말합니다. ‘내가 돈을 잘못 써서 가족이 망했다’는 죄책감이 나타나면 잘못한 자신에게 벌을 주는 양상으로 진행하기도 합니다.
민주씨는 도파민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도파민 시스템은 뇌에서 동기부여, 보상, 학습, 운동 및 주의력 조절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 시스템입니다. 보상에 대한 기대감과 학습 반복을 유도하는 ‘보상 회로'를 통해 작동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는 행동은 도파민 분비를 촉진해 즐거움을 주며, 이는 과시 행동을 강화합니다. 민주씨는 다른 사람에게 외제 차나 명품 옷을 과시하는 것으로도 점점 도파민 시스템이 만족되지 않자, 해외 주식에 과몰입하는 양상으로 변화했습니다. 결국 실패하면서 정신병적 증상을 동반한 우울증이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민주씨는 자신의 해외 주식이 오르면 도파민의 보상 회로가 과활성화되어 학교생활이나 아르바이트 등 다른 일상 활동에는 흥미가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도파민을 차단하는 약물치료를 통해 정신병적 증상을 회복시키고 망상이 없어지면서 현실감을 찾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민주씨는 치료를 받으면서 자신의 도파민 보상 회로를 다른 쪽에서 활성화해보기로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달리기를 해서 자신의 운동량을 달성하는 것으로 보상을 해보고 탁구도 배우기로 했습니다. 경기에서 이기고 지는 것을 반복해서 경험하면 도파민 시스템도 이에 따라 반응하게 됩니다. 이길 때 도파민이 분비되고 지면 도파민이 떨어지는 것을 반복하며 자신의 도파민 시스템을 안정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 뒤 민주씨는 돈을 쓰는 것보다는 몸을 쓰는 것이 도파민을 더 천천히 안정적으로 증가시키고 결국은 우울증을 예방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개인별로 자세한 것은 반드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진료, 상담을 하면서 파악해야 합니다. 기사만 읽고 자기 자신을 진단하거나 의학적 판단을 하지 않도록 부탁드립니다. 기사에 나오는 사례는 특정인을 지칭하지 않으며 이해를 돕기 위해 여러 경우를 통합해서 만들었습니다. 모두 가명을 쓴 것임을 밝힙니다.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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