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이 7일 중국 상하이의 호텔에서 열린 청와대출입기자 오찬간담회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공자님 말씀만 나온 게 아니었다. 이재명 대통령 방중 기자간담회 때 주요 발언 말이다. “역사의 올바른 편에 서라”는 시진핑 주석 요구와 “공자님 말씀으로 들었다”는 이 대통령 대응은 역사에 남을 어록이 맞다.
거기 주목하느라 주목받지 못한 뉴스가 있었다. 대통령 연임제 개헌과 관련해 이 대통령이 의미심장한 발언을 한 것이다. 쉽게 말해, 이 대통령 자신부터 연임할 수 있게 개헌하는 ‘정치적 상상력’을 내비쳤다.
“대한민국 헌법이 그런 데 뭔 상상을 합니까? 그냥 가는 거지.” 여기까진 많이 보도된 내용이다. 하지만 여기서 끝난 게 아니었다. 더불어 웃다 놓친 발언이 있었다. 이 대통령이 정색을 하고 이어서 말했던 거다. “그러나 저는 그런 걸 믿죠. 국민의 바다, 민중의 바다, 민중의 강물 위에 떠 있는 배 같은 존재가 정치이고 권력이니까…국민의 집단지성이….”
● 집단지성 원하면 현 대통령부터 연임?
조원철 법제처장이 지난해 10월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의 법제처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뉴스1 |
‘대장동 변호인’ 출신 법제처장 조원철이 “결국 국민이 결단할 문제”라고 말한 걸 기억하시는지? 작년 국감 때 ‘정부가 4년 연임제 개헌안을 내더라도 이 대통령은 연임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야당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다. “헌법에 의하면 그렇다”면서도 법제처장은 이 대통령과 비슷한 발언을 했다. “결국 국민이 결단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싶다”고.
에이, 당신이 잘못 짚었겠지, 하고 악풀 달고 싶으신가. 그런 독자를 위해 좀더 자세히 소개한다. ‘취재편의점’이라는 유튜브 채널 기자 장윤선의 답변 이끌어내기 똘똘한 질문과 기다렸다는 듯한 이 대통령의 답변은 이랬다.
“우리는 5년마다 대통령이 바뀌기 때문에 지난 30년 한중 관계는 발전기-조정기-갈등기를 거쳤다. 미래에도 흔들리지 않는 협력관계가 가능할지, 대통령이 생각하는 정치적 상상력을 말해 달라.”
“대한민국의 5년 단임제에 대해 중국도 관심을 보인다. (외교정책의) 지속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얘기다. 사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 주변국도 일당집권인데 우리만 5년 단임?
이재명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5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MOU 서명식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시 주석은 2013년 중국 제7대 주석에 오른 뒤 지금까지 14년간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이어지는 이 대통령의 답변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① 일본도 사실 일당이 계속 집권한다. 우리 주변국가들 거의 대부분 그렇다.
②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까지는 단임제로 인한 외교정책 진폭이 크지 않았다.
③ 최근 대외관계에서 상상이상의 급변이 있었다. 주변국에서 ‘나중에 어찌 될지 어떻게 믿느냐’는 우려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④ 어떡하겠느냐. 운명이다.
⑤ 그러나 한반도 평화에 관한 문제라면 지금이 기회다. 쉽게 뒤집지 못하게 제도화하면 된다. 입법이든, 조약을 맺든, 문서상이든.
⑥ 미국 대통령은 한반도 핵문제를 현실적, 실용적으로 해결할 생각을 갖고 있고 나도 그렇다. 중국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 점에선 지금이 좋은 기회다.
⑦ 음…5년 단임제요. 대한민국 헌법이 그런데 뭔 상상을 합니까? 그냥 가는 거지.
● 어떤 체제든 국민이 원하는 세상이라면?
지난해 6월 4일 이재명 대통령이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21대 대통령 취임선서식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
다음 발언이 핵심이다. 5년 단임제의 한계와 자신이 대통령으로 있는 지금 남북문제를 제도화하는 방법을 말하던 끝에 (지금같은 좋은 기회가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자신부터 연임할 수 있는 개헌 구상을 발설한 것이다. 현행 헌법은 개헌 당시 대통령의 연임이나 중임을 금지한다. 하지만 국민의 집단지성, 개딸들의 열화같은 요구만 있다면 가능하다는 천기누설이다(그래서 이 정부 별칭이 ‘국민주권정부’ 아닌가).
⑧ 그러나 저는 그런 걸 믿는다. 국민의 바다, 민중의 바다, 민중의 강물 위에 있는 배 같은 존재가 정치고 권력이니까 그 큰 흐름, 대한민국 국민의 집단지성이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판단은 크게 바뀌지 않을 거다.
⑨ 더군다나 이번 내란 사태를 겪으면서 그냥 맡겨 놓으면 안 되겠구나, 라는 생각도 했을 것이기 때문에,
⑩ 어떤 체제가 되든 우리 국민들이 기대하고 또 원하는 세상을 향해서 좀 부침, 흔들림은 있겠지만 계속 나아갈 거라고 믿습니다.
※ ⑨와 ⑩은 한 문장이지만 갈라놓은 이유가 있다. 논리적으로 이어지지 않아서다. 국민이 이번 사태를 겪으며 그냥 맡겨두면 안 되겠구나 생각했다고? 누구에게 무엇을? 더구나 ‘어떤 체제가 되든’이라니? 자유민주주의 체제 말고 다른 체제를 어느 국민이 원한단 말인가? 심지어 흔들림이 있어도 계속 나아갈 것이라고? 대체 어떤 세상으로요?
● 악법 강행 보면 연임제 개헌도 무섭다
지난해 10월 29일 이재명 대통령이 국립경주박물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선물할 신라 금관 모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백악관 제공 |
정치적 상상력 관련 ①~⑩ 발언을 되짚으면서 이 대통령의 인식을 헤아려 봤다. 중국 러시아 다양한 ‘스탄’등 주변국이 일당 집권국인 건 맞다. 그렇다고 본받을 건 아니다. 일본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를 보고 이 대통령이 정치적 상상력을 발휘해 국민의힘 출신 이혜훈을 장관 후보자로 발탁했을 순 있다.
친북정책이 추진된 건 “반미(反美)면 어떠냐”던 노무현 대통령과 운동권 86그룹 집권때부터였다. 이번 방중으로 한중관계가 좋아졌다지만 또 무슨 상상이상의, 국민도 모르는 대외정책 급변이 있었단 말인가? 5년 단임제에 대한 주변국 우려는 걱정스럽고 일당 독재에 대한 국민 우려는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한반도 평화와 북핵문제 관련 트럼프와 이 대통령의 ‘실용적 해결’이 그래서 겁난다. 뒤집지 못하게 무조건 제도화한다는 데는, 특히나 중국과 함께 하는 해법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노랑봉투법이든, 검찰 해체든, ‘입틀막법’이든 원하는 대로 강행하는 집권세력이다. 민주당 당헌당규도 이 대통령이 바꿔 첫번째로 혜택을 누렸다. 대통령 연임제 개헌도 그러지 말한 법 없다. 일단 개헌 작업에 들어가면 “5년도 짧다”는 일부 국민의 조직적 성화에 ‘이재명 대통령 예외’ 조항이 들어갈까 겁나는 것이다.
● “나부터 연임”은 친위 쿠데타적 개헌일 것
박정희 유신독재 시절 긴급조치 1호 선포 소식을 전한 동아일보 1974년 1월 9일자 신문. |
무엇보다 ‘대장동 문제’가 살아있는데 이 대통령이 과연 청와대를 떠날 수 있을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런 사법리스크 때문에 요직마다 변호인 출신을 박아놓고 온갖 악법을 밀어붙이는 것이겠지만, 그래도 이 대통령은 불안할 것이다. 궁극적으론 대통령을 계속 하는 것 말고는 재판을 막을 길이 없다. 그런저런 이유로 과거 대통령 연임제는 3선 개헌으로 이어졌었다.
박정희 유신독재 때 긴급조치 1호가 유신헌법 반대 금지·헌법 폐지 주장 금지·유언비어 금지다. 현재 입틀막법으로 불리는 ‘허위조작 정보 근절법’이 시행되고, 의견과 논평도 문제 삼을 수 있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이 대통령부터 연임을 위한 개헌’ 따위 칼럼은 딱 걸릴지 모른다. 유신독재로 돌아간 회귀물 세상이 될 판이다.
우리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제왕적 대통령이고, 연임제 개헌은 이 문제를 고칠 수 없다. 현 대통령부터 적용되는 연임제 개헌이라면 ‘친위 쿠데타적 개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터다. 설마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믿고 싶다.
다만, 주목하는 이는 거의 없었으나 2026년 1월 7일 이 대통령이 대통령 연임제 개헌을 말하면서 ‘국민의 집단지성’을 각별히 언급했음을 기록하기 위해 이 글을 썼다. 법제처장이 질타를 받았던 ‘국민이 결단할 문제’와 같은 의미로 읽혔다는 점도 기록해 둔다.
김순덕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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