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나라와 나라의 관계이자 통합을 지향하는 관계\"라는 의미를 담아 만든 엠블럼이다. 한겨레통일문화재단은 한국과 조선팀이 참가하는 호주 아시안컵 여자 축구대회에서 이 응원기를 사용해 응원할 예정이다. 출처:한겨레통일문화재단 |
조선(북한)이 9차 노동당대회에서 어떤 노선을 선택할 것인지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2021년 1월에 열린 8차 당대회는 조선의 근본적이고 거대한 변화의 이정표였다. 실제로 많은 변화가 있었다. 조선이 ‘가난하고 고립된 핵개발국’에서 ‘가난과 고립을 탈피하는 핵보유국’이 되고 있는 것이 가장 큰 변화이다. 외부의 인정 여부와 관계없이 조선의 핵무력이 비약적으로 강해진 것은 모두가 아는 바이다. 또 조중 관계는 냉기를 털어내고 개선의 방향으로, 조러 관계는 ‘전략 동맹’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폭 강화되고 있다. 민생과 경제 측면에서도 경제성장 및 알곡생산 목표 초과 달성이 확실시되고 지방발전계획도 순항하고 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조선’이 왔다는 뜻이다.
조미관계의 변화도 극적이다. 1990년 이래 조선의 최대 목표는 미국과의 새로운 관계 구축이었다. 김정은 위원장은 세 차례의 만남과 20여 차례의 친서 교환으로 상징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의 관계가 이를 가능케 하는 “신비로움 힘”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했었다. 하지만 2019년을 지나면서 이러한 기대를 깨끗이 접고 “새로운 길”을 향해 내달렸다. 8차 당대회의 핵심 기조로 “대미 장기전”을 선포한 배경이다. 그런데 김정은에게 기대와 낙담을 차례로 선사한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돌아왔다. 돌아온 트럼프는 김정은에게 기회가 있을 때마다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9차 당대회에서 조선의 대미 기조가 어떻게 나올 것인가에 초미의 관심이 모아지는 까닭이다.
남북관계의 변화는 절망적이다.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으로 대표되는 뜨겁고도 큰 기대를 모았던 남북관계는 2019년부터는 차갑고도 절망어린 관계로 추락했다. 급기야 김정은은 2023년 연말부터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국이 추구해온 것은 흡수통일이라며, 민족과 통일을 들어내고 ‘적대적 두 국가론’으로 그 자리를 채우고 있다. 이 사이에 조선을 자극해 무력도발을 유도하려고 했던 윤석열 정권이 탄핵·파면되고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다. 이재명 정부는 여러 노력과 시도로 돌아선 조선의 마음을 되돌리려 하지만, 아직까진 역부족이다.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한국의 대북 적대성은 본질적으로 달라질 수 없다는 조선의 판단이 확고하기 때문이다. 9차 당대회에서 조선의 대남 기조가 ‘적대적 두 국가’를 명시하는 쪽으로 나오지 않을까 우려의 시선이 모아지는 까닭이다.
조중·조러 관계의 변화는 충격적이다. 냉랭했던 조중관계는 2018년 3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6차례의 정상회담이 열렸을 정도로 전면적 복원을 향해 치닫는 듯했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자초되면서 숨고르기에 들어갔단 조중관계는 조선이 핵무력을 “국체”로 삼고는 핵무력법을 제정하고 이를 헌법에 명시하면서 냉각기에 접어들었다. 핵보유국으로 인정해달라는 조선의 요구와 이에 난색을 표한 중국의 입장이 충돌한 것이다. 그러자 조선은 시선을 러시아로 돌렸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가 고전을 면치 못했던 러시아에 무기와 병력을 대거 지원하면서 핵보유국 인정을 받아냈다. 그리고 조선은 이를 지렛대로 삼아 중국의 묵인도 받아냈다. 러시아가 조선의 대변인인 냥 ‘비핵화 불가’를 외치고 중국이 비핵화를 ‘무음’ 처리한 것에서도 이를 알 수 있다. 9차 당대회에선 이러한 성과를 바탕으로 조중·조러 관계 강화가 핵심적인 대외 정책 노선이 될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9차 당대회에 담길 대남·대미 기조로 모아진다. 전망은 밝지 않다. 그런데 대미 기조에선 희미한 변화의 가능성이 발견된다. 김정은은 작년 9월 21일 최고인민회의 연설에서 “만약 미국이 허황한 비핵화집념을 털어버리고 현실을 인정한데 기초하여 우리와의 진정한 평화공존을 바란다면 우리도 미국과 마주서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대통령 트럼프에 대한 좋은 추억을 가지고 있다”고도 했다. 이러한 발언을 뒷받침하듯 조선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즈음에 미국과의 접촉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은 미국에 비핵화 요구를 내려놓을 것으로 요구했지만 미국이 이를 거부하면서 정상간의 회동이 불발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볼 때, 9차 당대회에선 ‘대결에도 대화에도 준비가 되어 있다’며 조미정상회담의 여지를 담겨둘 것으로 보인다.
과거에 조미관계의 최대 걸림돌이었던 제재 문제의 향방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외에선 여전히 조선이 제재 완화·해제를 요구할 것이라는 진단이 유행하지만, 이는 ‘과거의 북한’을 상대로 한 분석이다. 2018〜2019년에는 김정은이 제재 해결을 갈망할수록 트럼프는 오히려 제재를 강화했었다. 이를 “나라의 존엄” 문제로 간주한 김정은은 8차 당대회에서 제재를 자력갱생과 자급자족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작년 9월 연설에선 “제제를 풀자고 하겠냐”고 자문하면서 “천만에 말씀”이라고 자답했다. 오히려 “제재는 우리에게 보다 강해질 수 있는 학습효과를 주었으며 그 어떤 압박에도 눌리지 않는 내성과 저항성을 키워주었다”며, “제재풀기에 집착하여 적수국들과 그 무엇을 맞바꾸는 것과 같은 협상 따위는 없을 것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못 박았다.
이에 반해 트럼프는 작년 10월 27일 일본과 한국 순방길에 나서면서 “우리에게는 제재가 있다. 이는 (논의를) 시작하기에 꽤 큰 사안이다. 아마 이보다 더 큰 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제재의 의제화를 지렛대로 삼아 김정은과의 번개팅 성사 가능성을 높여보려는 취지였다. 제재를 둘러싼 두 정상의 엇갈림은 조미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이 문제를 트럼프가 먼저 꺼내들거나 비중 있게 논의되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여전히 제재 문제에 방점을 찍는 국내외의 시선 교정이 필요한 까닭이다.
이러한 맥락을 종합해볼 때, 9차 당대회의 핵심적인 대미 기조는 ‘핵보유국 사이의 평화공존’이 될 것이다. 미국은 적대국인 소련과 중국의 핵무장에 강경책을 취했다가 평화공존을 선택한 전례가 있다. 또 근래 들어 미국 조야에선 “북한의 비핵화”가 ‘미션 임파서블’이라는 현실을 인정하면서 군비통제와 평화공존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아져왔다. 하지만 아무리 트럼프라도 조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고 비핵화를 계속 고수하면 조미정상회담은 물 건너가게 된다. 이 두 가지 사이에서 ‘선의의 무시’가 선택될 수 있다. 조선의 핵보유국 지위 인정 요구를 무시하면서도 ‘선 비핵화’ 요구를 내려놓고선 핵동결을 전제로 ‘다른 의제’에 집중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다른 의제는 ‘한국전쟁의 종식’이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는 작년 10월 한미정상회담에서 “한반도가 공식적으로 전쟁 상태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김정은과 이를 바로잡기 위해 매우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2018년 6월 최초의 조미정상회담을 앞두고도 “한국전쟁은 70년 가까이 이어져온 가장 긴 전쟁”이라며 전쟁 종식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2기 대통령 취임 이후에 세계 도처에서 벌어진 8개의 전쟁을 끝냈다고 자화자찬해온 트럼프로서는 한국전쟁의 종식에 큰 관심을 가질 법하다는 것이다. 이는 김정은이 말한 평화공존과도 교집합이 있다. 한국전쟁을 끝내고 평화공존을 도모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방법은 평화협정 체결에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선의 9차 당대회를 비롯한 조미관계의 가변성은 존재한다. 그럼 남북관계의 향방은 어떨까? 이재명 정부 들어 양측의 전단(오물) 풍선과 확성기 방송의 ‘쌍중단’으로 접경 지역을 중심으로 적대성이 크게 완화된 것은 큰 성과이다. 또 이재명 정부는 평화공존을 구현하기 위해 체제 존중, 흡수통일 불추구, 적대행위 불추진을 대북정책 3원칙으로 내세워왔다. 하지만 조선은 본질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달라지지 않았고 달라질 수도 없다는 인식을 바꾸지 않고 있다. 과거에 가장 적대적인 국가였다는 미국을 향해서는 평화공존의 필요성을 말하면서도 한국을 향해서는 그 여지조차 거의 두지 않는다. 왜 그럴까?
현명한 대응책을 세우려면 그들의 논리 구조부터 이해할 필요가 있다. 조선이 이재명 정부 들어 집중적으로 문제삼고 있는 부분은 한국 헌법의 영토조항이다. 김정은은 9월 연설에서 한국이 1948년 7월 제정 헌법에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문구를 넣어 “우리 국가에 가장 적대적인 태생적 본성을 성문화”했고,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정권이 10여차나 바뀌고 헌법은 9차나 개정되었지만” 헌법의 영토조항과 이에 근거한 국가보안법은 바꾸지 않았다고 힐난했다. 또 종속적인 한미동맹뿐만 아니라 이재명 정부의 대규모 국방비 증액 계획을 비난하면서 “반공화국 대결광신으로 악명 떨친 윤석열 정권을 훨씬 능가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한국이 국경을 사이에 둔 이질적이며 결코 하나가 될 수 없는 두개 국가임을 국법으로 고착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기조가 이어지면 9차 당대회 결정과 개정 헌법에 ‘적대적 두 국가’가 명시되고 만다.
이 대목에선 이재명 정부와의 엇박자가 확연해진다. 정부 안팎에선 문재인 정부 때 좋았던 남북관계를 윤석열 정부가 망쳐놨다는 시각이 여전히 강하지만, 조선은 한국 정권의 변화와 관계없이 대북 적대성의 본질은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고 있다고 여긴다. 이 간극이 좁혀지지 않으면, 이재명 정부 임기 동안에도 한 차례의 남북대화도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마저 배제할 수 없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나는 이재명 정부가 주창해온 ‘평화공존의 남북관계’를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조치를 하나둘씩 취해야 한다고 본다. 그 핵심에는 “북한에 대한 연고권” 주장을 내려놓는 데에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헌 논의에 영토조항도 포함하는 것을 차분히 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게 국민적 합의와 초당적 협력을 요하는 중장기적 과제라면,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찾는 게 중요하다. 1991년부터 존속해온 “북한급변사태”에 대비한 흡수통일 계획인 ‘충무계획’을 폐지하는 것이 이에 해당한다.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과 군사훈련에서 전시 대북 점령 및 통일 작전을 제외하는 것도 이에 해당한다. 이재명 정부의 흡수통일 배제 원칙과 상륙작전을 핵심 임무로 하는 해병대를 ‘준4군 체계’로 확대·강화하는 것이 어울리는 짝인지도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흡수통일을 하지 않겠다면서 한국의 일부라는 뉘앙스가 강한 ‘북한’이라는 표현을 고수하는 것도 교정할 필요가 있다.
나는 이러한 방향이 조선의 ‘적대적 두 국가론’에 가장 효과적으로 대응하고 한국의 평화공존론에도 가장 부합한다고 생각한다. 기실 한국의 충무계획과 한미동맹의 유사시 무력통일론은 1990년대 미국 단극체제의 도래와 남북체제경쟁에서 한국의 압승에 따른 자신감의 발현이었다. 그런데 세상은 ‘상전벽해’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달라지고 있다. 그런데도 우린 언제까지 ‘북한의 대한 연고권’이라는 낡은 사고를 붙잡고 있어야 할까? 이 집착을 내려놓으면 남북관계에 앞서 대한민국의 재도약의 길이 열릴 수 있기에 던지는 질문이다.
정욱식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겸 평화네트워크 대표. wooksi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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