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1일 이재명 대통령이 세종시 정부세종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기획재정부, 국가데이터처 업무보고에서 발언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강명관의 고금유사
1733년(영조 9) 5월11일 선정전에서 저녁의 경연, 곧 석강이 열렸다. 경연에는 경전과 역사서 등 다양한 텍스트가 채택되는데, 이날의 텍스트는 `예기’였다. 정해진 부분을 다 읽자 자유로운 토론이 이어졌다. 화제가 주나라의 토지제도였던 정전제에 이르자, 신하들은 영조에게 정전제 아래에서 백성들은 부지런히 토지를 경작하면서 만족스러운 삶을 살았노라고 말했다. 이어 사소한 견해 차이는 있었지만, 정전제의 해체로 토지 공유 원칙이 무너지고 토지의 사유가 시작되었으며, 이로 인해 농민의 궁핍이 본격화되었다는 데도 대체로 의견을 같이했다.
농민의 가난에 대해 이런저런 대화가 잠시 이어지다가 특진관 이보혁이 이런 말을 꺼냈다. “인심이 안정되지 않고, 백성에게 안정된 생업이 없는 지금의 상황은 흔들리는 물결과 꼭 같습니다. 나라에서 백성에게 생업을 제정해주지 못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입니다.” 요컨대 백성들의 마음이 흔들리고 그들에게 안정된 생업이 없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라는 말이다.
이보혁의 말을 지경연사(知經筵事) 송인명이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어찌 백성의 생업과 관련된 제도를 만들어준 적이 없었겠습니까? 예전의 명신 이원익은 안주목사로 있을 때 백성들에게 산기슭에 뽕나무를 심게 하여 백성들이 큰 혜택을 입었고, 그 혜택은 먼 후세인 지금까지 미치고 있습니다. 그 산을 ‘이공산’이라고 한다지요. 하지만 지금의 감사와 수령은 모두 이와 같지 않기에 폐해가 이 지경에 이른 것입니다. 어찌 애당초부터 생업을 마련해주는 일이 없었겠습니까?” 요지는 인조 때의 명신 이원익의 경우에서 보듯, 백성의 생업을 적극적으로 마련해준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송인명의 말이 끝나자 이보혁이 예를 하나 더 들었다. 현종 때 구일이 횡성현감으로 재직하고 있을 때 쌓은 보가 있는데, 100여섬을 수확할 수 있는 논에 물을 댈 수가 있어, 그 지방 백성들은 흉년이란 것이 무언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이보혁은 이 보 역시 구일의 이름을 따서 ‘구일보’라 이른다고 덧붙였다.
이원익과 구일이 했던 일은 원래 유가 정치의 본령에 해당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공산과 구일보는 예외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조선의 지배계급은 왜 정치의 본령을 저버렸던가. 송인명은 지나친 권력투쟁(당쟁)과 민중의 삶과는 아무 관계도 없는 인재의 선발 방법, 곧 과거제도를 꼽았다. 특히 과거는 현실 문제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문학적 역량을 테스트하는 시험이었다. 영조는 동의했다. 아니, 당시 송인명의 말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이날의 대화는 이것으로 끝났고 이들이 정전제의 정신을 살려 토지제도를 실제 개혁한 일은 없었다. 과거제 또한 고치지 않았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사람은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면서 자기 삶을 넉넉히 살아나갈 방도가 있는데도 (…)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학정에 시달린 나머지 살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질타했다. 게티이미지뱅크 |
영조와 이보혁·송인명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이익은 `성호사설’의 ‘유민을 다시 불러 모으는 방법’(流民還集)에서 이렇게 말한다.
“사람은 각자 슬기로움과 힘이 있다. 밭을 갈아 밥을 먹고, 우물을 파서 물을 마시면서 자기 삶을 넉넉히 살아 나갈 방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비록 2, 3년 홍수가 나고 가뭄이 든다 하더라도 본디 먼 앞날을 생각하고 먹을 것을 쌓아 놓았기 때문에 그것에 의지해 살아갈 방도가 있는 것이다. 어떻게 살던 곳을 떠나 골짜기에 뒹구는 시신이 되기까지야 하겠는가? 내가 시골에서 의식이 넉넉한 사람을 보았더니, 때를 잃지 않고 농사를 지었고, 이득을 보기 위한 계획이 아주 치밀하여 흉년도 그를 해칠 수 없었다. 이른바 ‘백성의 목숨은 부지런함에 매였고, 부지런하면 의식이 부족하지 않다’는 경우였다. 이치가 이런데도 죽음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모두 학정에 시달린 나머지 살 수가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익이 목도한 백성들은 자기가 살던 향리를 떠나 유민이 되어 팔도를 떠돌다가 구덩이를 메우는 시신이 되고 있었다. 이유는 다양했지만 농민이 자신의 토지를 가지고 있는 자작농이라면, 홍수와 가뭄을 예상하고 대비할 수 있다. 만약 국가와 지배계급의 과도한 수탈이 없다면 굶주리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남은 것을 축적하여 토지를 조금이라도 늘릴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익의 말을 들어보면 국가의 지배계급은 백성들에게 생업을 마련해주기는커녕 도리어 수탈을 강화하여 생업 자체를 박탈하고 있었던 것이다(이익은 이 문제의 해결을 위해 백성들에게 최소한의 삶을 보장할 수 있는 토지를 국가에서 지급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게 영조와 이보혁, 송인명이 태연하게 백성의 생업 운운하고 있었을 때 조선 사회의 상황이었다.
지난해 6월 초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시작 이래 공개된 국무회의와 부처별 업무보고의 생중계를 보았다. 그래, 무언가 달라지기는 했다. 당연히 행정은 투명해지고 일은 매끄럽게 집행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종국적으로 국민 각자에게 안정적 생업을 마련해주는 결과로 나타나지 않으면 무슨 소용인가.
해가 바뀌었다. 정치하는 분들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부디 정치의 본령으로 돌아가시라! 말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결과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범민의 삶의 현장에서 수많은 ‘이공산’과 ‘구일보’를 날마다 보고 싶다.
강명관 인문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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