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4월, 강원 춘천시 동면 품걸리에서 한 ‘밭갈애비’(농부)가 겨리연장을 이용해 ‘보냄갈이’(새해 첫 밭갈이)를 하고 있다. 김세건 교수 제공 |
인류학자가 농기구 하나로 4300쪽이 넘는 벽돌책을 썼다. 200자 원고지로 치면 무려 2만4000장 분량이다. 연구 대상은 쟁기, 그것도 한반도 중북부 지역에 한정돼 쓰였다가 도시화·산업화·기계화에 밀려 사라져가는 ‘겨리연장’이다. 말 그대로 묵직한 책들을 받아 본 순간 경탄과 궁금함이 동시에 일었다. 쟁기 하나로 어떻게 이만한 책을 쓸 수 있지? 왜 굳이 쟁기일까?
김세건 강원대 인류학과 교수가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인터뷰 중 저서 ‘겨리연장, 강원도를 담고 세우다’(전 4권, 지식산업사)를 펼쳐 보이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김세건 강원대 인류학과 교수가 최근 펴낸 ‘겨리연장, 강원도를 담고 세우다’(전 4권, 지식산업사)는 그런 점에서 낯설고도 도발적인 책이다. 인류학과 쟁기의 만남, 그것도 지역 농기구 연구가 어떻게 한편의 인류사적 사유로 확장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처음 가상 목차를 잡고 집필을 시작하던 때로부터 15년 만에 나온 걸출한 수확이다.
겨리연장은 소 두마리가 끄는 쟁기를 가리키는 강원도 말이다. ‘겨리’는 둘을 가리키는 ‘겹’의 변형이다. 소 한마리가 끄는 건 ‘호리쟁기’다. ‘호리’가 “짝을 이루지 않거나 겹으로 되지 않은 것”이란 뜻의 ‘홑’, ‘홀로’의 변형이라는 건 어렵지 않게 유추할 수 있다. 그런데 강원도에선 ‘쟁기’와 ‘연장’이 우리가 표준어로 알고 있는 것과는 거꾸로 쓰인다. ‘쟁기’는 쇠스랑·괭이·낫·호미같이 쇠로 만들어진 농기구를 아우른 총칭이다. 소를 이용한 논·밭갈이에 사용하는 농기구를 연장이라 부른다.
김 교수는 강원도 산촌들을 시작으로 휴전선 이북 함경도와 평안도까지, 고조선부터 현대까지 시공간을 가로지르며 쟁기의 변천을 훑었다. 그리고 지역의 토착 농기구를 씨앗 삼아, 한반도의 농경 생활뿐 아니라 자연, 인간, 그리고 근대화의 역사를 새로 써냈다. 지난 7일 서울 마포구 한겨레신문사에서 김 교수와 인터뷰를 했다.
“인류학은 인간에 대한 모든 것을 연구합니다. 사람들의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겉으로 드러나 보이는 사물이나 행위뿐 아니라, 그것들에 담긴 보이지 않는 의미 체계와 관계망까지 탐구하는 거죠.” 김 교수의 이번 연구는 “섬에서 나고 자란 사람과 산골 사람들의 심성이 다르듯, 같은 농기구라도 논과 밭에서 쓰는 게 다르고 그 사회문화적 맥락이 다르다”는 데서 출발한다. 그런데 왜 농기구, 그것도 강원도 쟁기였을까?
전남 완도군 청산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김 교수는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대 인류학과에 진학했는데, “인류학 분야에서도 생산 활동에 관심이 많았다”고 했다. 박사 과정을 국립 멕시코자치대학에서 유학하고 ‘멕시코 농촌 근대화에 따른 생태 체계의 변화’라는 논문으로 학위를 받았다.
“과거에도 그랬지만 미래에도 인류 생존의 핵심은 땅이라고 생각해요. 땅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가 인류 문명의 미래를 결정하게 될 겁니다. 먹거리도 기본적으로 땅에서 나오는데, 농업의 역사에서 쟁기를 빼놓고는 이야기할 수가 없어요. 쟁기는 세계 어디에나 다 있거든요.”
쟁기는 인류 최초의 생산 활동인 농경에서 혁명적 도구였다. 땅을 갈아엎어 흙을 부드럽게 하고, 유기물이 땅속으로 들어가게 해 토양이 비옥해진다. “그 덕분에 생산량이 크게 늘고 잉여 식량이 생겼는데, 이는 인구 증가와 도시화, 문명의 발달로 이어졌습니다.” 반면 인위적인 침식의 가속화라는 부작용도 생겨났다. 김 교수는 쟁기를 이용한 농경이 인류세의 시작일 수 있다고 했다.
그가 보기에 쟁기는 자연(땅)과 인간, 동물(가축·부림소)과 사람, 사람과 사람(소겨리)을 묶는 관계의 매개체이고, 그 관계망의 결을 따라 존재 양식이 드러나는 하나의 ‘독특한 사회기술체계’다. “이 기술체계에는 토양, 나무, 보습, 목수, 도끼, 망치, 작물, 밭갈애비(농부) 등 여러 이종적인 요소들이 참여해 (…) 자연과 인간과 비인간을 길들이며 한반도 농경 세계를 구성”했다. 쟁기를 중심에 놓고 그 관계망을 보면 물건으로만 바라보던 쟁기에서는 보이지 않던 인류사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는 쟁기에서 발견되는 관계망을 “하늘과 땅과 인간이 관계 맺고 소통하며 조화를 이루는” 우리 전통의 ‘천지인(天地人) 세계관’으로 해석했다.
김세건 교수가 지난 7일 한겨레와 인터뷰에서 자신의 쟁기 연구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
김 교수의 강원도 쟁기 연구의 씨앗은 한국이 아니라 멕시코에서 파종됐다. 멕시코시티 인근의 ‘테포스틀란’이라는, 인류학자들에게는 잘 알려진 마을에서 1940년대 이후 근대화가 전통 농업 공동체와 생태 환경을 어떻게 바꿨는지를 연구했다. “그곳에서 두마리 소가 끄는 쟁기를 처음 봤습니다. 그런데 으레 그러려니 당연한 것으로 여겨 ‘왜 두마리냐’는 질문을 하지 못했지요.” 그때는 ‘변화’에 집중하느라 ‘전통’ 농법에는 의문을 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귀국 이후 강원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연구 씨앗’의 싹이 텄다. 강원도 논밭에서 소 두마리가 겨리쟁기를 끄는 모습을 보며 비로소 “왜?”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 것이다. 현장 조사와 인터뷰, 연구와 집필을 하면서는 자신이 “서구식 근대 교육을 받고, 지식의 식민성에 깊게 물든 인류학자”였다는 사실을 통렬하게 자각했다. 일제강점기 식민지 국민으로 태어나 해방, 분단, 한국전쟁의 격랑을 거치며 강원도의 땅을 지켜온 고령의 농부들을 찾아가 토속어와 낯선 농경 용어를 듣고 배우면서도, 처음에는 그들의 세계를 자신이 배운 이론과 개념 안에 끼워 넣으려 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나는 쟁기 문화를 내가 이미 알고 있던 지식으로 이해하고 정리하려 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소화하기보다, 내 중심이 항상 바깥에 있었다”고 털어놨다. 그가 책의 첫머리를 ‘토착지식 다시 보기: 천지인 문화’로 시작한 이유다.
선사와 역사를 아우른 인류사 시대 구분을 흔히 석기-청동기-철기로 나눈다. 김 교수는 “왜 목기시대는 없느냐”고 되묻는다. 인류가 가장 오래, 가장 많이 쓴 재료는 나무였고, 쟁기 역시 전 세계 어디서나 근대 이전까지 거의 예외 없이 나무로 만들어졌다. 금속 쟁기는 산업화 이후에야 나타났다. 특히 “철은 오랫동안 권력의 자원이었던 까닭에 농민이 쉽게 구하고 가공할 수 있는 재료가 아니었”다. 최근 국내에는 영국 식물학자 롤랜드 에노스가 인류 문명사를 ‘목재 중심’으로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하는 ‘나무의 시대’(2025, 더숲)가 번역 출간됐다. 김 교수 역시 나무 쟁기야말로 인류 문명 건설의 숨은 주역이라고 본다.
지표면과 맞닿아 흙을 고르는 바닥이 짧고 보습 위에 볏이 달려 흙을 왼쪽으로 넘겨주는 형태인 굽쟁기의 모습(광복 이후). 국립민속박물관 소장 |
쟁기는 각 지역의 토질과 사회경제적 조건, 심지어는 한 마을에서도 사용자의 쓸모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진화해왔다. 돌이 많고 토질이 거친 강원도와 함경도에서는 선쟁기가 발달했다. 지표면과 평평하게 닿아 흙을 고르는 ‘바닥’이 아예 없다. 흙이 부드러운 논과 서해안 평야에서는 바닥이 길게 누운 눕쟁기(장상려)가 쓰였다. 바닥이 있지만 눕쟁기보다 짧아 살짝 굽어 보이는 것을 굽쟁기라고 한다. 김 교수는 “쟁기 바닥의 유무와 길고 짧음은 토질에 따른 것이므로 ‘눕쟁기=논농사, 선쟁기=밭농사’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며 “한반도의 쟁기는 대부분 선쟁기인데, 특히 강원도와 함경도 등 한반도 중북부 지역에선 논농사에도 바닥이 없는 선쟁기를 쓴다”고 했다.
흥미로운 것은 오늘날 우리 논밭에서 쓰이거나 박물관에 전시된 ‘전통 쟁기’가 실은 일제강점기 일본에서 들어온 ‘왜쟁기’라는 사실이다. 왜쟁기는 1920년대 논농사 확대와 함께 전국으로 퍼졌다. 그러나 강원도와 오늘날 북한의 산촌까지는 이 외래 도구가 완전히 침투하지 못했다. 김 교수는 또 쟁기를 일컫는 ‘연장’뿐 아니라 각 부분의 명칭인 탑손(손잡이), 한마루(모로리), 술(번데기·가대기), 성애(성애대·성애채) 등이 강원도·함경도·평안도에 걸쳐 공통으로 쓰이는 점에도 주목해, 이를 ‘백두대간 문화’라고 명명했다.
급속한 근대화·산업화·도시화 속에서 논 중심의 ‘들판 문화’가 기준이 되면서 산촌의 밭농사 문화는 주변으로 밀려났다. 강원도와 함경도의 겨리쟁기 문화도 함께 주변화되고, 그 속에 담긴 전통적 천지인 세계관도 사위어갔다. 김 교수의 책은 바로 이 주변부의 지식을 다시 불러내고, 오지·척박함으로 치부되던 산촌을 다른 눈으로 보려는 시도다.
쟁기 연구의 백미는 소 두마리와 사람이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겨리 농사의 장면들이다. 쟁기질을 하는 ‘밭갈애비’는 단순히 소를 부리는 기술자가 아니라, 소와 땅의 상태를 온몸으로 읽어내는 조율자다. 밭에선 크고 작은 돌에 쟁기가 걸리기 쉬운데, 이때 중요한 것은 소와 사람이 동시에 ‘멈춤’의 순간을 알아차리는 감각이다. 평탄한 논에서는 쟁기를 눌러주기만 하면 소가 알아서 끌고 간다. 그러나 돌이 많은 밭에선 그대로 밀고 가려다가는 자칫 쟁기가 부러지거나 앞으로 튕겨 나가 소의 뒷발굽이 부러지기 십상이다. 김 교수는 “쟁기가 돌에 채면 노련한 소는 그 순간 딱 멈춘다. 밭갈애비는 그 미세한 멈춤을 느끼고 쟁기를 들어준다”고 했다. “누르면서 들어준다”는 표현은 바로 이 섬세한 균형을 가리킨다.
강원도 춘천시 북산면 내평리의 농부 윤문종씨가 겨리연장을 이용한 밭갈이를 하는 모습. 김세건 교수 제공 |
겨리쟁기가 만들어내는 관계망은 소와 사람을 넘어선다. 소를 한마리 가진 집끼리 짝을 지어 두마리를 하나로 결합하는 것을 ‘소짝’, 그 전체 묶음을 ‘소겨리’라고 한다. 소가 없는 집까지 포함한 사람들의 네트워크를 통틀어 소겨리라고 하기도 한다. 설날 전에 소겨리 짝을 맞추지 못하면 한해 농사 준비가 안 된 것으로 여겼고, 한번 맺은 짝이 세대를 이어가는 경우도 많았다. 북한에서는 이런 관계를 ‘겨리사촌’이라고 부른다.
논농사 지역의 두레가 주로 모내기 한 철에 20~60명이 모여 농악과 연희를 곁들인 대규모 공동노동 조직이라면, 인구가 적고 집이 드문드문한 강원 산간 마을의 소겨리는 몇 집이 모인 소규모 상설 공동노동 체계였다. 이곳에는 농악 대신 겨리 농사에 맞춘 ‘소 모는 소리’가 있었다. 두마리 소를 몰며 부르는 소리는 자연스레 사설이 길어지고, 여기에 메나리토리 가락과 아리랑이 섞여 들판을 울렸다. 술 한잔 걸치면 농부들은 소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털어놓기도 했다. 김 교수는 “소겨리는 일상이 되었고, 소짝이 되려면 서로 예의를 다해야 했다. 그 핵심 중 하나가 음식을 나눠 준비하는 것”이라고 했다. 강원도 소겨리가 단순한 품앗이가 아니라 일상의 생활 공동체였음을 보여준다.
김 교수는 강원도의 속살이 품은 ‘강원도의 힘’을 보기 전까지 자신도 강원도를 오랫동안 ‘오지’로만 생각했다며, 그런 자신을 깨우친 일화를 소개했다. 정선 토박이 민속학자 김진순 선생이 어느 겨울 전북 농촌을 처음 방문했을 때, 차창 밖으로 파릇파릇한 채소밭을 보고 “여긴 겨울에도 먹을 게 많겠구나”가 아니라 “여기 어머님들은 겨울에도 쉬지 못하니 참 힘들겠다”고 생각했다는 거다.
김 교수는 이 말을 듣고 “강원도의 겨울을 쉼과 생동의 계절로 본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논 중심의 시각으로는 밭농사 지대, 산촌, 북부 지역을 늘 척박하고 부족한 곳으로만 상상하기 쉽다. 그러나 겨리연장으로 연결된 ‘사회기술체계’의 눈으로 보면 “강원도는 백두대간의 중심이자, 남북의 산촌문화와 들판문화가 통섭하는 장으로, 겨리연장은 분단의 시대를 넘어 지금까지 이어온 백두대간의 맥이었다.”
강원도 대관령의 고랭지 감자 단지. 한국학중앙연구원 제공 |
이런 성찰은 김 교수가 ‘지식의 식민성’을 벗어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서구 근대의 이론과 도시 중심의 시각으로 자신과 자신의 문화를 재단하던 태도를 내려놓고, 강원도 농민의 말과 몸짓, 쟁기질의 호흡에서 역사와 철학을 다시 읽어내는 것이다. 그는 연구와 집필 과정에서 “철학의 빈곤이 아니라 역사의 빈곤을 절감했다”고 했다. 방대한 쟁기 연구가 결국 향하는 곳은 과거의 농기구가 아니라, 우리가 어떤 지식의 언어로 자신을 이해해왔는가라는 질문이다.
김 교수의 사유는 쟁기를 축으로 자연, 인간, 근대화, 사회관계망, 포스트 식민주의, 천지인 세계관, 인류세까지 바큇살처럼 뻗어나간 뒤, 마치 바퀴가 땅에 닿는 것처럼 다시 ‘지금, 여기’의 문제로 수렴했다. 이는 그가 멕시코에 유학한 첫 해이자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이 발효한 1994년 첫날 출범한 ‘사파티스타(Zapatista, 멕시코 원주민 농민 권리운동)’에 대한 인상적 관찰과도 맥이 닿는다. 김 교수는 방대한 책의 맨 마지막 단락을 이런 자문으로 끝맺었다.
“멕시코 사파티스타들이 500년 동안 지속된 세계근대식민체제에 대하여 “이제 그만해(Ya Basta)!” 라고 당당하게 외치며 자신들의 천지만물 세계에서 새로운 길을 찬고 만들어 가는 탈식민성의 시대에, ‘식민지 조선’에서 살아 왔던 우리는 언제 “이제 그만해!”라고 목청껏 외쳐본 적이 있었던가?”
조일준 선임기자 il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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