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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최악 유혈사태’에 숨겨진 키워드 셋···은행 파산·가뭄·인터넷[뉴스 깊이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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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일 이란 테헤란 거리에 반정부 시위대가 모여 있다. 게티이미지

지난 8일 이란 테헤란 거리에 반정부 시위대가 모여 있다. 게티이미지


지난달 28일(현지시간) 이란 테헤란의 그랜드 바자르(전통시장) 상인들이 가게 문을 닫고 거리에 나설 때만 해도 이 시위가 1979년 이란 이슬람 공화국 수립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될 시위로 번질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이란 리알화 폭락과 물가 급등으로 촉발된 시위는 이란 전역과 전 계층으로 빠르게 확산해 이슬람공화국 체제 자체를 거부하는 반정부 시위로 번졌다.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는 구호가 거리에 울려 퍼졌다.

지난해 6월 이스라엘과 미국의 공습으로 치명적 타격을 입은 이란 정부는 처음엔 시위대를 관망했다. 1인당 7달러(약 1만원)를 제공하겠다는 유화책을 내놓으며 시위대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힘썼다. 하지만 경제적 고통에 시달리며 정부의 무능에 분노한 이란 국민을 달랠 수는 없었다. 중산층·빈곤층·학생 등이 광범위하게 거리로 나서며 시위가 거세게 확산하자 이란 정권은 체제 수호를 위해 강경 대응에 나섰다.

지난 8일부터 시위대를 향해 실탄과 기관총 등을 발포하며 3000명에 달하는 사망자가 나왔다. 2022년 히잡 착용에 반대하는 시위에서 수개월간 50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에 견줄 때, 단기간에 6배가 넘는 사망자가 나왔다. 이번 반정부 시위는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최악의 유혈사태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이란 정부의 강경 대응은 역설적으로 이란 정권이 최악의 위기에 처해 있음을 방증한다. 이란 정권은 지난해 6월 이스라엘·미국의 공격에 무력한 모습을 보이며 자국 국민을 보호하지 못했고, 이후 이란 화폐가치는 급락하고 식료품 가격은 70% 넘게 상승했다. 이라크에서 오던 달러 유입도 미국의 제재로 차단됐고, 석유 판매로 인한 수입도 크게 줄었다. 해외에 있는 외환보유고 역시 제재로 인해 접근이 차단됐다.

설상가상으로 지난해 말 발생했던 부실 은행 파산이 경제난에 기름을 부었다. 또 역사상 최악의 가뭄 사태와 이에 대한 정권의 무능한 대응은 이란 국민들의 분노를 부추겼다.

이란 반정부 시위를 둘러싼 숨겨진 이야기를 살펴본다.


이란 화폐인 리알화. 게티이미지

이란 화폐인 리알화. 게티이미지


#은행 파산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란 아얀데 은행의 파산이 이란 경제 붕괴를 가속화해 반정부 시위를 촉발했다고 진단했다.

정권 측근들이 운영하며 50억달러(약 7조3565억원)에 가까운 부실 대출 손실을 떠안은 아얀데 은행이 지난해 말 파산하면서 이란 정부는 이 은행을 국영은행으로 통합하고 화폐를 대량으로 발행해 적자를 덮으려 했다.

WSJ는 아엔데 은행의 파산이 이번 시위를 촉박한 이란의 경제 붕괴를 가속화했다고 지적했다. 수년간의 제재, 부실 대출, 인플레이션을 유발하는 화폐 발행에 의존해 온 이란 금융 시스템이 지급 불능과 유동성 부족 상태에 빠졌음을 여실히 드러냈다는 것이다. 이란의 다른 은행들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아얀데 은행은 이란에서 가장 부유한 가문 출신인 사업가 알리 안사리가 2013년 설립했다. 아얀데 은행은 이란 은행 중 가장 높은 금리를 제시하며 수백만명으로부터 예금을 유치했고, 이란 중앙은행으로부터 막대한 자금을 차입했다. 중앙은행은 은행 파산을 막기 위해 통화를 발행해 인플레이션을 부추겼다. 아얀데 은행은 막대한 부실채권을 안고 있었고, 결국 은행 파산으로 이어졌다.

아얀데 은행의 최대 투자처는 2018년 문을 연 이란몰(Iran Mall)이었는데, 이란의 어려운 경제적 상황과 대비되는 호화롭고 과시적인 프로젝트였다. 영화관과 수영장, 스포츠단지, 자동차 전시장, 16세기 페르시아 제국 궁전을 본뜬 거울의 전당까지 갖추고 있었다.

국제통화기금(IMF)의 중동·중앙아시아 부국장을 역임한 아드난 마자레이는 “아얀데 은행은 막강한 인맥을 가진 부패한 은행이었으며, 이는 은행 자체가 권력층의 부를 축적하는 통로라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이 은행 파산이 “이스라엘 공격 이후 정권의 정당성 상실이 극에 달한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고 말했다.


영국은 안사리에 대해 “이란 혁명수비대의 자금 조달을 도운 부패한 이란 은행가이자 사업가”라고 규정하며 제재했다.

지난해 말 이란 정부는 아얀데 은행의 부채를 떠안고 최대 국영은행인 멜리 은행과의 합병을 강제했다. 이란 정부는 아옌데 은행에 자금을 투입하면서 한편으로는 국민에 대한 지원을 줄였다. 지난달 말 정부는 수입품에 대한 우대 환율 폐지, 빵 보조금 일부 철폐, 수입 휘발유의 시장 가격 판매 등을 실시했다.

경제 싱크탱크 보르스앤드바자르재단의 최고경영자 에스판디야르 바트만겔리는 “이는 부패나 불공정 행위의 또 다른 사례”라며 “이란 국민에게 시스템이 자신들에게 불리하게, 소수의 엘리트에게 유리하게 조작됐다는 인상을 준다”고 말했다.

이란이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에 직면한 가운데 지난해 11월9일(현지시간) 한 자동차가 테헤란 서쪽의 말라버린 칸강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란이 60년 만에 최악의 가뭄에 직면한 가운데 지난해 11월9일(현지시간) 한 자동차가 테헤란 서쪽의 말라버린 칸강을 지나가고 있다. AFP연합뉴스


#사상 최악의 가뭄


‘6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가뭄’으로 불리는 물 부족 사태도 이란 시위를 촉발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가디언은 “물 부족으로 인한 근본적인 불안감은 이슬람공화국 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는 격변의 중요한 배경이었지만 제대로 보도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1월까지 이란 강수량은 평년 대비 81% 감소했으며, 테헤란에 물을 공급하는 5개 주요 댐의 평균 저수량은 10%로 떨어졌다. 지난해 5월부터 이란에서는 “물, 전기, 생명”을 외치는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다. 테헤란에 단수가 시작되자 마수드 페제시키안 이란 대통령은 “비가 오지 않으면 테헤란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며 수도 이전 가능성까지 거론했다.

가뭄의 원인으로 기후변화가 지목되지만, 이를 방치하고 해결책을 찾지 못한 정권의 잘못도 크다. 이슬람혁명 이전 샤 왕조 통치 시절부터 농업 생산량 증대를 위해 댐을 무작위로 건설했다. 댐을 감당할 수 없는 작은 강에도 대형 댐을 건설했고, 장기적인 물 손실이라는 대가를 치르게 됐다. 1979년 이슬람공화국이 들어선 후, 당국은 주로 지하수 펌프 사용량을 늘리는 방식으로 물을 확보했으며, 지속가능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이란에 100만대 이상의 지하수 펌프가 설치됐으며, 지하수 자원은 거의 고갈됐다.

인플레이션으로 생필품값이 치솟으면서 생수를 살 수 있는 경제력이 있는 사람만이 물을 사용할 수 있어 물 자체가 ‘특권’이 됐다고 가디언은 지적했다.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단말기. 게티이미지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단말기. 게티이미지


#시위 실상 알린 ‘오합지졸’ 네트워크


이란 정권은 반정부 시위가 격화하자 지난 8일 유혈 진압에 나서며 이란 전역의 인터넷을 전면 차단했다. 이 때문에 이란 정부의 폭력 진압과 사망자 수가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다. 하지만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의 위성 인터넷 서비스 스타링크를 통해 시위대의 모습과 이란 당국의 잔혹한 학살 모습이 소셜미디어에 퍼졌다. 이는 이란 정권의 살상을 외부에 알리고 국제 여론을 환기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활동가·개발자·엔지니어로 이뤄진 ‘오합지졸 네트워크’가 이란의 인터넷 차단을 뚫었다고 평가했다. 이들은 몰래 반입한 스타링크 위성 인터넷 시스템을 이용해 온라인에 접속, 거리에서 시위대를 향해 발포하는 군인들의 모습과 시신을 찾는 가족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을 퍼뜨렸다.

이란 정권은 2022년 히잡 반대 시위를 폭력적으로 진압하면서 인터넷을 차단한 바 있다. 이후 활동가와 시민단체들은 스타링크 단말기를 이란에 몰래 반입하는 작업을 벌였다. 현재 이란에는 약 5만대의 스타링크 단말기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 디지털권리단체 ASL19의 페레이둔 바샤르 사무총장은 “여러 단체가 수년간 계획하고 협력한 결과 이같은 인프라가 구축됐다”고 말했다.

NYT는 스타링크가 지상 검열 인프라를 우회해 이란에서 시위대가 조직되고 외부와 소통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머스크의 지정학적 영향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위성 시스템의 이란 밀반입에 관여한 망명 활동가 아마드 아마디안은 “스타링크는 생명줄과 같다”고 말했다.


☞ [뉴스 깊이보기] 보수층까지 등돌린 신정체제 최대 위기···이란 당국, 실탄 사용 폭력 진압에 116명 사망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111655001



☞ [국제칼럼]말라가는 중동, 기후난민 시대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161958015



☞ 기관총 난사에 ‘확인 사살’까지···“대지진보다 더 심한 참상이었다”
https://www.khan.co.kr/article/202601151720001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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