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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빛나는 별은 없어, 서로를 비추는 순간이 있을 뿐…‘라디오 스타’[오마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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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스타> ㅣ넷플릭스·왓챠·웨이브

영화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영화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오마주’는 주말에 볼 만한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콘텐츠를 추천하는 코너입니다. 매주 토요일 오전 찾아옵니다.

분명히 본 영화인데, 너무 유명해서 안 봐도 본 것 같은 작품인데, 다시 보면 새롭게 느껴지는 영화가 있습니다. ‘이 영화가 이렇게 좋았나?’ 볼 때마다 새삼스럽게 감탄하게 되는 영화, 우린 그런 영화를 ‘명작’이라고 부릅니다. 이번 주에는 오랜만에 꺼내 보면 좋을 명작 한 편을 소개합니다. 고 안성기 주연의 <라디오스타>(2006)입니다.

<라디오스타>는 한때 전설이었지만 시대에 밀려난 록 가수 최곤(박중훈)과, 데뷔 시절부터 그를 곁에서 지켜온 매니저 박민수(안성기)의 이야기를 그립니다. 1988년 ‘가수왕’ 타이틀을 거머쥐며 대중을 열광하게 했던 스타 최곤은 세월이 흘러 한물간 가수가 되고, 지금은 허세와 고집만 남은 인물입니다. 여전히 자신을 ‘스타’라고 믿지만, 현실은 싸구려 무대와 취객과의 시비, 유치장을 전전하는 초라한 나날들이죠. 그가 사고를 칠 때마다 고개 숙여 사과하고, 합의금을 마련하고, 재기의 기회를 찾아 뛰어다니는 사람은 언제나 그의 매니저 민수입니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그러던 어느 날, 또 한 번의 사고로 벼랑 끝에 선 민수에게 한 가닥 기회가 찾아옵니다. 강원도 영월의 작은 지방 방송국 라디오 프로그램 DJ 자리를 맡으면, 방송사에서 최곤의 사고를 해결해주겠다는 제안을 받게 된 것이죠. 민수는 “마지막 기회”라며 최곤을 설득해 함께 영월로 향합니다. 화려한 서울과는 거리가 먼, 산과 강으로 둘러싸인 조용한 도시에서 두 사람의 새로운 시간이 시작됩니다.

영월 지국에서 맡게 된 프로그램은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 그러나 DJ를 맡은 최곤은 잘해볼 생각이 없습니다. 오프닝 대본을 무시하고 선곡은 제멋대로, 짜증 섞인 태도로 일관해 지켜보는 PD와 민수를 진땀 흘리게 하죠. 그럼에도 민수는 한 번만 더, 한 회만 더 하자며 최곤을 달래 부스 안으로 밀어 넣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반복은 둘의 20년을 압축한 풍경이기도 합니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조마조마한 방송이 이어지던 어느 날, 작은 사건이 일어납니다. 라디오 부스에 커피 배달을 온 마을다방 김양을 최곤이 즉석 게스트로 세우고, 그녀의 사연이 전파를 타며 청취자들의 마음을 울립니다. 다방 김양의 방송 이후, 너도나도 ‘오후의 희망곡’에 전화를 걸어 시시콜콜한 고민들을 털어놓기 시작합니다. 허세와 자존심 뒤에 숨어 있던 최곤의 진짜 마음도 조금씩 얼굴을 내밀며 프로그램은 비로소 숨을 얻기 시작합니다. 거칠지만 솔직한 말로 고민을 해결하고, 거기서 나오는 웃음과 위로가 전파를 타고 퍼져나가며 영월의 오후는 점점 이들의 목소리를 기다리는 시간이 됩니다. 최곤은 그렇게 영월의 ‘라디오 스타’가 되고,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은 인기에 힘입어 전국구 방송으로 뻗어 나갑니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하지만 <라디오스타>는 단순한 재기 성공담이 아닙니다. 다시 주목받게 된 최곤 앞에 더 큰 무대와 더 많은 돈, ‘이제 진짜 스타로 돌아갈’ 기회가 찾아오면서 이야기는 다른 국면을 맞습니다. 서울의 대형 기획사와 방송사는 하나같이 “성공하려면 주변을 정리해야 한다”고 말하고, 그 ‘정리’의 대상 1호는 박민수라고 못을 박습니다.


민수 역시 흔들립니다. 자신이 과연 최곤에게 도움이 되는지, 아니면 발목을 잡는 건지 갈피를 잡지 못하죠. 그는 처음으로, 자신이 이 관계에서 어떤 존재였는지 되묻게 됩니다. 그리고 마침내 둘 사이에 쌓여 있던 서운함과 오해가 한꺼번에 터져 나오며, 두 사람은 큰 다툼 끝에 갈라서게 됩니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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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수는 크게 화를 내거나, 상황을 휘어잡는 카리스마로 밀어붙이는 인물이 아닙니다. 대신 잘 웃고, 잘 참고, 잘 미안해하는 사람입니다. 안성기는 이 ‘평범한 남자’를 아주 미세한 표정과 몸짓으로 그려냅니다. 최곤의 말을 가만히 듣다가도 문득 눈을 피하는 순간, 아무 일 아니라는 듯 웃으면서도 입꼬리 한쪽이 살짝 내려간 모습, 혼자 남았을 때 비로소 드러나는 묵직한 한숨이 박민수라는 인물을 설명합니다. “혼자 빛나는 별은 없다”며 그래도 누군가를 끝까지 믿어보기로 한 어떤 마음이, 말보다 먼저 표정으로 전해집니다.

최곤이 라디오 생방송 도중 마이크 앞에서 민수에게 진심을 전하는 장면은, 여러 번 돌려봐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명장면입니다. 많은 관객이 이 장면에서 울컥하는 이유는 그것이 단지 최곤과 민수의 이야기일 뿐 아니라 우리 각자의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순간이기 때문이죠.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라디오스타>는 화려한 볼거리가 있는 영화는 아닙니다. 통쾌하고 짜릿한 성공담 대신 지치고 구겨진 누군가의 뒷모습을 있는 그대로 껴안으며 온기를 전하는 영화입니다. 올해로 개봉 20년이 됐지만, 삶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담고 있는 이 영화의 감성은 지금 봐도 낡지 않았습니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라디오스타>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안성기는 생전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연기한 캐릭터 중 박민수를 자신과 가장 닮은 인물로 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말이 남아서일까요. 다시 보는 <라디오스타>는 이제까지와는 또 다른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화면 속에서 웃고, 걱정하고, 끝내 믿어주는 익숙한 얼굴을 따라가다 보면 문득 그가 우리 곁에 없다는 사실을 잊게 됩니다. 이번 주말, 영화 속 그를 다시 만나보는 건 어떨까요. <라디오스타>를 다시 보는 일은 배우 안성기를 추억하는 가장 행복한 방법일지 모릅니다.


노정연 기자 dana_f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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