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한상엽 |
제 친구가 버스 정류장에서 한 여자를 보고 첫눈에 반했습니다. 친구는 어마어마한 용기를 냈습니다. “저기 혹시, 괜찮으시면 식사하실래요?” 친구는 그 말을 하면서도 어이가 없었습니다. 방금 막 밥을 먹고 나오는 길이었거든요. “커피 한 잔 하실래요?”는 왠지 싫어서 그 말을 했다네요. 그런데 여자가 친구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더랍니다. 체감상 5초 이상? 그리고 여자가 하는 말이….
“뭐 먹을 건데요?” “아! 예 혹시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시면….” 친구는 그 말이 긍정 신호인 줄 알고 흥분했습니다. 그런데 여자는 웃음기가 없었답니다. “밥 먹으러 가면 뭘 먹는 건데요? 그걸 말해주세요.” “아 네! 원하시는 거 무엇이든.” “아뇨. 정해주세요.” 친구는 여기서 최악의 대답은 “아무거나”라는 걸 눈치 챘고, 재빠르게 말했습니다. “쌀국수 어떠세요.” 급한 대로 자기가 방금 막 먹고 온 맛집을 말한 거죠. 그러자 그녀가 한 말이 당황스럽습니다.
“한 달 뒤 점심에 드시죠.” “예?” “기억하세요. 정확히 한 달 뒤에요.” 그 말을 남기고 여자는 그대로 버스를 타고 떠나버렸습니다. 친구는 당황했죠. 거절인가? 요즘은 이런 식으로 거절하는 건가? 내가 모르는 유행이 있나? 결론적으로 친구는 거절이라 판단했지만, 여운이 강하게 남았습니다. 여기서 친구는 대단한 행동을 했습니다. 스마트폰 달력에 메모한 겁니다. 정확히 한 달 뒤 날짜를요. 자, 여기까지만 봐도 꽤 기묘한 이야기죠? 이 이야기를 듣고 제가 추론한 건 이것이었습니다. “그 여자 혹시 신내림 받은 사람 아니야? 한 달 뒤에 네가 꼭 쌀국수를 먹어야만 불행을 피할 수 있다거나.”
친구는 그런 건 아닐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일종의 테스트 아니려나? 내가 길거리에서 아무한테나 그렇게 들이대는 남자인지, 아니면 딱 그녀라서 그날 그렇게 말을 건 사람인지 확인하려고.” 이윽고 한 달 뒤, 친구는 진짜로 그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기다리다가 포기한 친구는 혼자 쌀국수를 먹으러 갔습니다. 근처 쌀국숫집 2인용 테이블에 앉아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길 기다리던 친구는 곧 깜짝 놀랐습니다. 불쑥 나타난 그녀가 합석한 겁니다. “앉아도 되죠?”
마주 앉으며 인사를 나눈 뒤, 친구는 바로 물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여길…?” 친구는 흥분한 상태였습니다. 쌀국숫집이 한두 개가 아닐 텐데, 여기서 만났다는 건 운명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뜻밖에도 그녀가 한 말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저 여기서 일해요.” “예? 여기서요?” 그녀는 이 쌀국수 식당 직원이었습니다. 심지어 한 달 전 그날, 친구가 이곳에서 식사할 때도 그녀는 가게 안에 있었습니다. “그날 드신 쌀국수도 제가 만들었는데요.”
참 희한하죠. 그때는 못 봤다가, 그녀가 퇴근하고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릴 때 첫눈에 반한 거니까요. 친구는 버스 정류장에서 그녀를 처음 본 것이지만, 그녀는 친구를 두 번째 본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제가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따라온 줄 알았어요.” “아, 그건 아닙니다.” “그렇죠. 방금 밥 먹고 나온 사람이 밥 먹으러 가자는 걸 보고 그건 아닌 것 같았어요. 근데 방금 밥 먹어놓고 왜 저한테 밥 먹자고 했어요?” 그녀는 친구가 웃겼답니다. 그럴 만도 하죠.
“그러면 한 달 뒤에 쌀국수 먹으라는 것도 제가 이미 밥 먹고 배부른 걸 알고서 배려해 주신 건가요?” “누가 배려를 그렇게 해요. 배려할 거면 커피 마시러 가자고 하겠죠.” 사실 한 달 전 그날, 그녀는 가게를 그만둔다고 통보했다고 합니다. 당시 안 좋은 일도 겹치고 번아웃도 온 터라 당장 때려치울 생각이었는데, 사장님이 제발 한 달만 더 일해줄 수 없겠느냐고 사정을 했답니다. 확답을 하지 않은 그녀가 버스 정류장에서 고민할 때, 친구가 말을 건 겁니다. 식사하자고요.
“방금 밥 먹어서 배부른 사람이 또 뭘 먹자고 할지 궁금해서 물었더니, 또 쌀국수라잖아요.” “아….” “여기 쌀국수를 그렇게 좋아해요?” 그녀는 친구가 쌀국수를 또 먹겠다고 한 순간, 이상하게도 결정이 내려지더랍니다. 딱 한 달만 더 일하기로. 그러니까 말하자면, 그녀가 그날 친구에게 ‘그 제안’을 하기 전에 그 마음의 ‘결정’이 먼저였던 겁니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와 버렸답니다. 정확히 한 달 뒤 점심때 쌀국수를 먹으라고요. 이후는 버스가 와서 급하게 떠났고요.
지겨운 일이었지만 생각보다 버틸 만했답니다. 한 달 뒤 진짜 그 남자가 올까 궁금해서요. 그건 꼭 확인하고 싶어서 한 달은 버틸 수 있었다네요. “그리고 이렇게 진짜 온 거죠. 정확히 한 달이네요?” “달력에 적어뒀습니다.” 그녀는 친구가 많이 웃겼고, 친구도 그녀가 좋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할 듯도 합니다. 한 달 동안 서로를 계속 떠올렸을 것 아닙니까? 그 이상한 멘트가 신의 한 수가 된 거죠. 그러니까, 이 이야기의 엔딩은 해피엔딩입니다. 그날부터 둘은 꿀 떨어지게 잘 만나고 있습니다. 쌀국수도 자주 먹는다네요. 물론 다른 가게에서요.
※픽션입니다.
[김동식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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