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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회사 가지 마까” 귀엽고 웃긴 ‘할배’들이 나타났다

조선일보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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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아빠∙할아버지 같은 친근함
‘할배 인플루언서’ 전성시대
#1. “생일에 아들한테 ‘갤럭시워치’를 받는 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전화 잘못 걸었다’. 말 그대로 대뜸 전화를 걸어서 잘못 걸었다고 하는 겁니다….” 감색 반팔 셔츠를 입은 김종구(67)씨가 화이트보드에 마커펜으로 키워드를 적어가며 이 같은 강의를 한다. ‘은근하게 섭섭함과 아쉬움을 드러내 원하는 스마트워치를 받아낸다’는 게 요지다. 그는 ‘조기축구 형님에게 예쁨 받는 법’ ‘와이프 몰래 낚싯대 샀다가 걸렸을 때 대처법’ 등의 ‘삶의 지혜’를 강의 형태의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내고 있다.

#2. ‘이구 할아버지’는 1929년생, 올해 97세의 어르신이다. 1997년생 손녀가 할아버지가 오징어뭇국, 스팸 김치짜글이, 고등어무조림 같은 집밥 요리하는 영상을 찍어 올린다. 할아버지와 손녀의 잔잔하고 다정한 대화가 반찬처럼 곁들여지며 인기를 끌고 있다.

바야흐로 ‘할배 전성시대’다. 요즘 유튜브·인스타그램 등 플랫폼에서는 남성 시니어의 활약이 도드라진다. 영상 촬영·편집 등 제작 방법을 직접 배워 나서는가 하면, 자녀·손주의 협업으로 인플루언서 반열에 오른 경우도 많다. 우리네 아버지 같은 소탈하고 평범한 일상, 소소한 삶의 교훈과 깨달음을 알려주는 모습에 젊은 층이 열광하고 있다.

요즘 SNS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할배 인플루언서’들이다. 왼쪽부터 원모씨, 이구 할아버지, 김종구씨, 갱상도남. /유튜브, 그래픽=송윤혜

요즘 SNS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표적인 ‘할배 인플루언서’들이다. 왼쪽부터 원모씨, 이구 할아버지, 김종구씨, 갱상도남. /유튜브, 그래픽=송윤혜


◇‘울아빠’ 같은 그 할배

소파 지정석에 앉아 TV 채널을 돌리고 있을, ‘울아빠’가 생각났다. ‘한창 때’는 라면 한 그릇도 직접 끓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꽈리고추닭조림·감자탕·보쌈까지 간이 딱 맞는 요리를 뚝딱 해낸다. 테토남(남성적인 남자)의 전형이었던 아빠는 어느샌가 아내와 출가한 자녀까지 돌보는 에겐남(감성적이고 여성적인 남자)이 돼 있었다.

최근 기자의 알고리즘을 장악한 ‘할배 인플루언서’들을 보며 떠올린 생각이다. 우리 아빠 같아서 클릭하고, 키득대고 눈물지으며 보다 보니 어느새 인스타그램·유튜브를 열 때마다 할배들의 얼굴이 뜨기 시작했다. 할배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 데에는 딸·손녀들의 역할이 컸다. 아빠·할아버지의 일상과 통찰을 사랑스럽고도 애틋하게 바라본 이들의 시선이 영상 곳곳에 듬뿍 담겨 있다.

최연장자로 꼽히는 이구할아버지는 다소 가늘고 갈라진 목소리로 “오늘은 뭐 먹을래?” “다 됐다”라는 몇 마디 말과 함께 뚝딱뚝딱 음식을 만들어낸다. 요란한 재료나 기술이 필요치 않은 말 그대로 ‘집밥’. 1929년생 할아버지가 만든 음식을 1997년생 손녀(손녀의 모습은 공개된 바 없다)와 함께 맛있게 비우는 모습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 할아버지·할머니와의 추억은 아무리 많아도 모자랄 것이다. 손녀에게 아낌없이 음식을 만들어주는 이구할아버지의 마음이 그 결핍을 채워주는 것 같다.


3만3000여 팔로어를 가진 ‘갱상도남’ 채널도 비슷하다. 중장비 기사로 일하는 김정희(62)씨는 서울살이가 30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경상도 사투리를 쓴다. 직장인인 딸 가연(28)씨가 친구들끼리만 보는 비공개 계정에 아빠의 영상을 올렸는데, 이를 본 친구들이 재밌다고 한 게 데뷔의 계기가 됐다. 가연씨는 “같이 웃으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일상 속 아빠의 재밌는 장면을 포착해 올렸는데 차곡차곡 팔로어가 늘어 종종 광고 의뢰도 들어온다”고 했다. 김정희씨는 최근 처음으로 조용필 콘서트에 갔는데, 관객 중에 그를 알아보는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외동딸과 시간을 보내는 게 좋아서 꾸밈없는 평상시 내 모습을 올리는 걸 허락했는데,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덕담을 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울산에 사는 ‘원모씨’도 신새벽 이부자리에 누워 ‘아 회사 가지 마까(말까)’ 고뇌하다 꾸역꾸역 무거운 몸을 일으켜 출근 준비하는 모습을 담은 영상이 1470만 조회 수를 찍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AM 5:00 69세 아빠의 출근 브이로그’라는 제목이 달린 이 영상에는 ‘존경합니다 아부지’, ‘치카 빼먹으셨어요’, ‘넘 매력적이세요’ 같은 댓글이 3000개 넘게 달렸다.

그런가 하면 작년 말 처음 등장한 김종구씨는 제작부터 스스로 하는 크리에이터로 주목받고 있다. ‘아들에게 갤럭시 워치 받는 법’이라는 제목으로 게시된 그의 첫 영상은 한 유명 유튜버가 ‘아버지에게 갤럭시워치 안 사주는 법’이라는 영상으로 패러디해 더 유명세를 탔다. 김씨는 이후 두 번째로 올린 영상(조기축구형님에게 예쁨 받는 법)에서 한쪽 팔에 갤럭시워치 3개를 착용한 채 등장했고, 다섯 번째 영상에서 삼성전자의 광고 협찬을 받아 ‘와이프와 싸웠을 때 갤럭시워치8로 화를 풀어주는 법’이란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초보자 수준의 시니어 유튜버가 이례적인 속도로 ‘인플루언서’ 레벨에 오른 셈이다. 그가 10만 팔로어를 확보하는 데에는 20일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씨는 SNS에 올린 손편지에서 “나이 먹어서 취업도 안 되고 해서 고민하던 중 우스갯소리로 지인들과 친구들이 유튜브 한번 해봐라 하고 막내아들도 권유해 시작했다”며 “아직 실감이 나질 않고 꿈을 꾸는 것 같다. 여러분 덕분에 나이 먹어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썼다.


◇할매들이 먼저였다

사실 할배들보다 할머니들의 활약이 먼저였다. 구독자 113만명에 달하는 유튜버 박막례(79) 할머니, 패션 유튜버 밀라논나(74) 등이다. 치매에 걸릴까 두려워했던 박씨는 2017년 손녀 김유라(36)씨와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는 등 그동안 해보고 싶었던 일을 하는 영상을 찍어 올렸다. 구수한 사투리와 찰진 욕설에 친근감을 느끼는 ‘랜선 손주’들이 급증했고, 자서전을 내고 장관 표창(2018년)을 받는 등 노년의 황금기를 보내고 있다. ‘한국인 최초 밀라노 유학생’이었던 밀라논나는 전공을 살려 2019년부터 패션과 라이프스타일을 다루는 채널을 운영하는데 역시 100만 구독자의 사랑을 받고 있다.

이들 ‘할매 유튜버’는 상대적으로 ‘테토녀’ ‘걸크러시’에 가까운 성향이다. 이런저런 고민을 털어놓는 MZ들에게 나름의 ‘인생 철학’을 쏟아낸다. “귀신이고 나발이고 난 무서운 게 아무것도 없어. 내 인생이 젤로 무섭지”, “다이어트 음식? 놀고 있어. 살 빼려면 처먹지를 말어” “왜 남한테 장단을 맞추려고 하나. 북 치고 장구 치고 니 하고 싶은 대로 치다 보면 그 장단에 맞추고 싶은 사람들이 와서 춤을 추는 거여”(이상 박막례) “나는 나대로 살 테니까 댁은 댁대로 사세요”, “몫을 나누지 않을 사람들이 하는 말은 신경 쓰지 마세요”(밀라논나) 같은 말이 쏟아진다.


박막례 할머니 팬 사인회에 다녀왔던 이수정(43)씨는 “노후에 누구보다 멋지게 자기 철학을 갖고 사시는 모습을 보면 존경심이 든다”며 “유명한 연예인이나 명사들이 보여주는 호화로운 생활은 신물 나지만 우리 할머니 같은 보통 사람의 모습에서 배우는 점이 많다”고 했다.

‘할배 크리에이터’에 대한 평가도 비슷하다. 젊은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소통하고, 불필요하게 가르치려 하지 않고, 새로운 것을 배우고 경험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전혀 꼰대 같지 않기 때문에 MZ에게 소구력이 있다.

◇이어지는 은빛 도전

이쯤 되면 많은 시니어가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라는 마음이 들 수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4 소셜미디어 이용자 조사’에 따르면 50대의 86.1%, 60대의 71.3%, 70세 이상의 58.9%가 유튜브를 이용하고 있다고 답했다. 메신저 카카오톡에 이어 여러 SNS 중 이용률이 둘째로 높았다. 유튜브로 수입을 올리고 있는 60세 이상 유튜버도 2021년 333명에서 2022년 403명, 2023년 493명으로 2년 새 크게 늘었다(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실).

이런 흐름 속에 시니어 유튜버 양성 과정을 여는 지자체와 교육 기관이 늘고 있다. 충북 증평군은 지난해 7월 시니어 유튜버 양성 교육 기본 과정을 수료한 어르신 30명으로 시니어 유튜버 발대식을 가졌다. 서울 강남구·서초구·중랑구 등에서 시니어 유튜버 교육 과정을 열었고, 사설 학원도 인기다. 대학 유튜버학과는 시니어 대상 입학 마케팅을 벌이기도 한다.

‘노인 한 사람의 죽음은 도서관 하나가 불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SNS로 무장한 시니어의 등장으로 불멸의 도서관이 늘어가는 셈이다.

[김경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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