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피가 사상 처음으로 4,800대에서 장을 마친 16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 현황판에 코스피지수와 원·달러 환율 등이 표시돼 있다.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9원 오른 1,473.6원으로 집계됐다./연합뉴스 |
미국 재무장관의 이례적인 구두 개입에 잠시 멈추는가 했던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다시 시작됐다.“원화 약세는 한국의 펀더멘털(기초체력)과 맞지 않는다”는 베선트 재무장관의 발언에 환율이 1460원대 초반까지 내려가는듯 했지만 3시간도 지속되지 못했다. 환율이 하락하자 기다렸다는 듯 달러를 사들이는 ‘서학개미’ 등의 매수세로 곧바로 반등한 것이다. 내수 침체의 아우성에도 한은 금통위가 금리인하 카드를 못 꺼내는 것도 1500원 선을 위협하는 환율 공포 때문이었다. 한은은 향후 금리 전망 발표문에서 ‘인하’라는 문구를 아예 삭제해 버렸다.
주요국 통화 중에서 유독 원화 가치 하락이 두드러지는 것은 자본 유출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속에서 국내 기업들은 미국으로 떠나고 있으며, 국내 증시에 투자할 기업이 제한된 상황에서 투자자들은 밤마다 미국 증시로 자산을 옮기고 있다. 원화 약세는 성장 비전이 안 보이는 한국 경제에서 돈이 빠져나가 빅테크들이 활약하는 미국 경제로 이동하는 것에 따른 구조적 현상이다. 돈은 성장하는 곳으로 흐른다는 경제 원리가 환율에 투영되고 있는 것이다.
환율이 다시 1470원대로 올라선 16일, 반도체·자동차 두 업종을 제외한 나머지 주력 수출 산업이 모두 쇠락 국면에 진입했다는 한은 보고서가 나왔다. 지난 20년간 한국의 10대 기업 명단은 단 2개만 바뀌었고, 10대 수출 품목은 20년째 그대로다. 같은 기간 미국은 10대 기업 중 하나 남고 모두 혁신 기업으로 교체됐는데 한국의 산업 생태계는 고스란히 늙어가고 있다.
역동성을 잃은 나라에 미래를 걸 자본은 없다. 서학 개미들이 밤잠 설쳐가며 미국 기업 투자에 열을 올리는 것은 각 개인의 합리적 선택이다. 최근 코스피가 호황이라지만 극히 일부 종목의 급등 때문이고 80% 종목이 횡보하거나 하락했다고 한다. 사상 첫 7000억달러를 돌파한 지난해 수출에서도 수출 증가분의 88%가 반도체·자동차 두 업종이었다.
정치권은 지금도 성장과 혁신을 위한 구조개혁은 뒷전인 채 빚 내서 표를 사려는 포퓰리즘에 여념이 없다. 기득권 세력의 표를 보고 혁신은 싹부터 자르고 있다. 노동 정책은 노조 일변도다. 원화 추락을 멈출 뾰족한 수가 없다는 사실은 분명해지고 있다. 지금부터라도 우리 경제에 혁신 기업들이 무럭무럭 자라날 수 있도록 과감한 구조 개혁에 나서야 한다. 멀게 보여도 정도를 가야 답을 찾을 수 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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