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로 건너뛰기
뉴스
서울
맑음 / -3.9 °
헤럴드경제 언론사 이미지

버스기사→철권통치자→수감자…美에 운명 달린 마두로 [더 비저너리-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

헤럴드경제 정목희
원문보기
고교 중퇴·버스기사 출신 노조 지도자
차베스 ‘충복’ 후광…의원·부통령 권력가도
차베스 사망후 영적 후계자 ‘13년간 권좌’

‘제1전투원’ 아내 플로레스와 권력 사유화
포퓰리즘·유가폭락·부정선거 거센 반발
트럼프 ‘마약테러리즘’ 혐의 급습해 축출
천문학적인 돈을 주무르는 기업인, 말 한 마디에 주가가 출렁이는 금융인, 미래를 바꾸는 창업가, 국제정세를 쥐락펴락하는 지도자. [더 비저너리]는 세상의 흐름을 주도하는 파워 리더를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무엇이 현재의 그들을 만들었으며, 어떤 철학과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생생한 스토리를 전해 드립니다.
마두로가 부인 플로레스(왼쪽 두 번째)와 5일(현지시간) 미 마약단속국(DEA) 요원에 이끌려 이송되는 모습. [로이터]

마두로가 부인 플로레스(왼쪽 두 번째)와 5일(현지시간) 미 마약단속국(DEA) 요원에 이끌려 이송되는 모습. [로이터]



2013년 3월. 베네수엘라의 절대 권력자 우고 차베스가 숨진 지 이틀 뒤, 당시 부통령이었던 니콜라스 마두로는 기자들 앞에서 뜻밖의 계획을 꺼냈다. 차베스의 시신을 방부 처리해 유리관에 안치하고 영구 보존하겠다는 것이었다. 혁명 지도자를 ‘영원히 살아 있는 상징’으로 만들겠다는 선언이었다. 그러나 미라화(방부 처리)는 사망 직후 특수 처리가 필수다. 며칠이 지난 시점에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했고, 계획은 실행되지 못했다.

대신 마두로는 차베스를 다른 방식으로 신격화했다. 수도 카라카스 서부, 과거 차베스가 쿠데타 지휘소로 사용했던 장소에 유해를 안치한 뒤, 차베스가 사망한 시각(오후 4시25분)에 맞춰 매일 예포를 쏘게 했다. ‘차베스의 시간’을 국가 의례로 고정한 셈이다. 그 의식은 마두로 정권의 권력 구조를 상징했다. 그는 차베스라는 거대한 후광 속에서 출발했고, 그 그림자를 붙잡는 방식으로 13년을 버텼다.

그런 마두로가 지난 3일 새벽, 카라카스의 대통령 관저를 급습한 미국에 생포됐다. 마약 밀매 등 혐의로 기소된 마두로 부부는 당일 미국 뉴욕 브루클린 메트로폴리탄 구치소로 압송됐고, 이틀 만에 법정에 모습을 드러냈다. 30여 년간 베네수엘라 좌파 통치를 이끌어 온 ‘차베스주의 체제’가 미군의 야간 군사작전으로 사실상 마침표를 찍는 순간이었다.

“나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수갑차고 뉴욕 법정에
지난 5일 이뤄진 마두로의 첫 출석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혐의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기소인부 절차를 위해 이뤄졌다. 마두로 부부는 수감복을 입고 수갑을 찬 채 법정에 나타났으며, 통역을 위한 헤드폰을 착용한 상태로 재판에 임했다. 앨빈 K. 헬러스타인 판사가 신원 확인을 요청하자 마두로는 스페인어로 “나는 베네수엘라 대통령”이라고 답했다.


판사가 ‘마약 테러 공모’ 등 혐의를 낭독하고 유죄 여부를 묻자, 그는 “나는 무고하며, 유죄가 아니다. 나는 선한 사람이다”라고 말하며 혐의를 일체 부인했다. 이어 “이곳에서 언급된 어떤 혐의도 무죄다”라는 취지로 주장하며 정면 반박했다. 함께 출석한 아내 실리아 플로레스도 재판 시작 때 “나는 베네수엘라 공화국의 퍼스트레이디”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무죄를 주장했다. 플로레스 측 변호인은 정부가 제시한 증거를 검토해 반박하겠다고 밝혔다.

父영향 노조 지도자 활동…차베스 도와 정계 입문
마두로의 버스기사 시절 모습. [텔레그래프 캡처]

마두로의 버스기사 시절 모습. [텔레그래프 캡처]



마두로는 1962년 11월 23일, 카라카스 외곽의 노동자 계층 지역 엘바예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국영 석유기업 노조 지도자였다. 정치적 감수성과 노동운동의 DNA는 자연스럽게 그의 몸에 배었다.


그는 호세 아발로스 고등학교 학생회장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했지만, 학업 기록상 고등학교를 졸업하지는 못했다. 1980년대 그는 버스 운전사로 일하며 카라카스 지하철공사 노조 창립을 주도했고, 부친의 영향을 받아 노조 지도자로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1986년에는 쿠바로 건너가 고등학교 이후 유일한 정규 교육을 받았다. 귀국 후 다시 카라카스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면서도 정치적 열정을 키웠고, 그 무렵 차베스의 열성적인 추종자가 됐다.

운명을 바꾼 사건은 1992년이었다. 당시 중령이던 우고 차베스는 쿠데타를 일으켰지만 실패했고, 투옥됐다. 30세의 마두로는 차베스를 면회했다. 그 만남은 평생 이어질 정치적 동맹의 출발점이 됐다.

마두로는 차베스를 ‘역사적 지도자’로 숭배했고, 차베스는 마두로의 충성심을 눈여겨봤다. 1999년 차베스가 대통령에 취임한 뒤, 마두로의 인생은 급변했다. 차베스 집권 이후 마두로는 국회에 입성했고, 6년간 의원직을 지냈다. 이후 국회의장, 외교부 장관을 거쳐 6년 뒤에는 부통령에 올랐다. 학벌도, 독자적 정치 기반도 없던 그가 최고 권력 반열에 오른 비결은 차베스에 대한 절대적 충성, 단 하나였다.


차베스는 포퓰리스트이자 강경한 반미 지도자였다. 석유 산업 국유화, 국가 주도 재분배, 빈곤층 지원을 핵심으로 하는 ‘차비스모(Chavismo)’는 한동안 베네수엘라 하층민의 지지를 얻었다. 마두로는 이 체제의 실무형 충복으로 성장했다. 국회의원으로 6년을 보낸 뒤 국회의장을 지냈고, 외교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리고 다시 6년 뒤에는 부통령에 임명됐다.

2012년, 차베스는 암 치료를 위해 쿠바로 떠나기 전 마지막 TV 연설에서 마두로를 공식 후계자로 지명했다. 그리고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하자, 베네수엘라는 곧바로 선거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2013년 차베스가 사망하자 곧바로 대선이 치러졌다. 마두로는 “차베스가 작은 새로 환생해 내게 지저귄다”는 식의 발언으로 선거운동을 벌이며 차베스의 영적 후계자임을 강조했다. 결과는 1.5%포인트 차이의 신승. 그는 그렇게 대통령직을 승계했고, 이후 13년간 권좌를 지켰다.

좌파 포퓰리즘의 한계…산유국이 ‘빈곤율 82%’로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차베스 전 대통령 탄생 71주년 기념행사에서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지난해 7월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차베스 전 대통령 탄생 71주년 기념행사에서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와 함께 지지자들에게 인사하고 있다. [게티이미지]



하지만 집권과 동시에 위기가 닥쳤다. 야권은 카라카스와 주요 도시에서 거리 시위를 벌였고, 현재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를 포함한 야권 인사들이 시위에 힘을 실었다. 보안군은 강경 진압에 나섰으며, 시위는 43명의 사망자와 수십 명의 체포자를 남기고 끝났다. 정치적 정당성 논란이 시작부터 따라붙은 셈이다.

경제는 더 심각했다. 차베스 시절과 달리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무상 복지와 보조금 정책을 계속 밀어붙일 재원이 급격히 줄었다. 마두로 정권은 가장 손쉬운 수단인 무제한 발권력에 의존했다. 화폐를 찍어내 재정을 메우는 방식은 곧바로 물가 폭등으로 이어졌다.

집권 이후 베네수엘라는 초(超)인플레이션과 물자 부족, 치안 불안에 시달리며 경제가 붕괴 수준으로 추락했다. 2018년 물가 상승률은 169만8488%에 달했다. 정부는 같은 해 10만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낮췄고, 2021년에는 다시 100만볼리바르를 1볼리바르로 낮추는 리디노미네이션(화폐단위 변경)을 실시했다. 숫자를 줄이는 처방으로 통화 신뢰를 되살리려 했지만, 생활의 붕괴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마두로는 우상 차베스를 흉내 내며 좌파 포퓰리즘 정책을 이어갔지만, 성과는 차베스 정부에 비해 훨씬 처참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2022년 베네수엘라 국내총생산(GDP)은 마두로가 집권한 2013년과 비교해 약 80%나 급감했다. 여기에 극심한 인플레이션과 식량 부족이 겹치며 수백만 명이 해외로 탈출했다.

국제연합(유엔)에 따르면 지난해 2월 기준 베네수엘라 빈곤율은 82%였다. 2024년 말까지 인구의 30%에 달하는 770만명이 경제난을 견디다 못해 해외로 이주했다. 세계 최대급 원유 매장국으로 꼽히는 나라가 ‘탈출하는 국민’으로 국제 뉴스를 장식한 배경에는, 석유 기업 국유화로 마련한 재원을 무상 의료·무상 교육·저가 주택 공급 등에 집중 투입하고, 생필품 가격을 행정력으로 억누른 차비스모의 구조적 한계가 자리하고 있었다. 과도한 복지 예산을 충당하려고 화폐를 마구 찍어내면서 2018년에는 6만%가 넘는 ‘초(超) 인플레이션’을 겪었다는 평가도 나왔다.

경제난은 곧 정치적 폭발로 이어졌다. 2014년과 2017년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했고, 마두로 정권은 군을 동원해 강제 진압했다. 각각 47명, 12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국제사회는 강경 대응을 문제 삼았고, 국내에서는 공포정치 논란이 확산됐다.

그럼에도 마두로는 2018년, 2025년 치러진 대선에서 승리했다. 베네수엘라 야권과 국제사회는 두 차례 선거 모두에서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했다. 정권은 ‘선거’라는 형식을 유지했지만, 정치적 경쟁 조건은 좁아졌고 반대 세력은 점점 위축됐다.

아내와 권력 사유화…現부통령보다 강한 권력
마두로 정권의 또 다른 축은 아내 실리아 플로레스였다. 두 사람의 인연은 199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BBC에 따르면 차베스는 1992년 카를로스 안드레스 페레스 대통령 집권 당시 쿠데타에 가담했다가 실패해 투옥됐고, 이때 차베스를 변호한 젊고 유망한 변호사가 플로레스였다는 전언이 있다. 차베스의 개인 경호원이 마두로였다는 이야기도 함께 전해진다. 마두로는 플로레스보다 6살 연하다.

1998년 차베스가 집권하자 플로레스도 고위직을 맡으며 정치적으로 승승장구했다. 2000년 국회에 입성한 뒤 2006년에는 베네수엘라 헌정 사상 첫 여성 국회의장에 올랐다. 재임 당시 친척 약 40명을 공직에 임명해 논란이 불거졌고, 당시 기자들을 ‘용병’이라 부르며 국회 취재를 금지한 적이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플로레스의 조카 둘은 2015년 마약 밀매 혐의로 아이티에서 미국 당국에 체포됐다가, 바이든 정부 때인 2022년 수감자 교환 조치로 베네수엘라로 귀환했다.

마두로는 플로레스를 ‘제1 전투원’으로 불렀다. ‘영부인’의 의전적 역할을 넘어, 핵심 권력자로서 국정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관측이 잇따랐다.

두 사람의 결혼도 드라마틱했다. 2013년 차베스 사망 후 대선이 치러지자 플로레스는 적극적으로 마두로를 지원했고, 마두로가 근소하게 승리한 뒤 두 사람은 결혼했다. 부부는 각자 이전 배우자와의 사이에서 자녀가 있었고, 이 중에는 미국에서 기소됐지만 체포되지 않은 니콜라스 마두로 게라(현 국회의원)도 포함돼 있다. 영국 가디언은 “1990년대 베네수엘라 감옥에서 만난 두 사람이 이제는 함께 뉴욕 감옥에 수감돼 마약 및 테러 등 혐의를 받게 됐다”고 전했다.

트럼프는 왜 베네수엘라를 겨눴나
미국과의 대립은 차베스 시대부터 이어졌지만, 마두로 체제 하에서 갈등은 더욱 거칠어졌다. 트럼프 1기 행정부는 정권 교체를 유도하기 위해 마두로와 측근, 국영 기업들에 경제 제재를 가했지만, 군·준군사 조직·집권당이 결합된 권력 기반에는 제한적 타격만 줬다. 다만 미국-베네수엘라간 정면충돌 가능성은 높아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백악관에 복귀하면서 상황은 급속히 악화됐다. 미국은 카리브해에 대규모 군사력을 집결시켜 베네수엘라 정부를 경계 태세로 몰아넣었고, ‘마약 테러리즘’ 대응을 명분으로 마약 운반이 의심되는 선박을 폭파하는 등 강경 조치를 취해 100명 이상을 사살했다. 트럼프는 마두로를 ‘마약 카르텔 수장’으로 지목하며 5000만달러(약 725억 원)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다만 미국에서 유통되는 마약 가운데 베네수엘라산 비중은 크지 않다는 점에서, ‘베네수엘라 마약’이 침공의 직접 원인이라기보다는 트럼프 행정부의 핵심 의제인 반이민, 마약 유입 차단 기조와 맞물린 정치적 선택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석유 이권 역시 이유로 거론된다. 베네수엘라는 세계에서 원유 매장량 1위로 꼽히는 나라다. 트럼프는 과거 차베스 정권이 유전을 국유화하면서 미국 기업들이 손해를 본 점을 언급하며, 이를 되찾고 싶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6일 워싱턴DC의 문화예술 공연장 트럼프-케네디센터에서 열린 연방 하원 공화당 의원 수련회 연설에서 마두로 대통령에 대해 “난폭한 인물이다. 그는 내 춤(YMCA송에 맞춰 두 주먹을 뻗는 트럼프 특유의 춤)을 조금 흉내내려 했지만, 그는 난폭하고 수백만명을 죽였다”며 “카라카스 한복판에 고문실이 있고 지금은 폐쇄됐지만 그들은 사람들을 고문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언급한 마두로 대통령의 ‘춤’은 지난해 11월 미군이 카리브해에서 군사력 시위를 벌이며 압박을 가하고 있음에도 마두로가 정부 집회 현장에서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면서 미국을 무시하는 듯한 행보를 보인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마두로의 운명은 미국의 손에 달렸다. 마두로의 방대한 마약 밀매 공모, 무기 소지 및 불법 활동 등 혐의는 미국에서 최대 종신형까지 가능하다. 그러나 이제 막 기소가 공개된 상태여서 예비심리, 증거 제출, 공판, 배심평결을 거쳐 마지막 선고가 내려지기까지는 길게는 수년이 걸릴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정목희 기자



info icon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AI 이슈 트렌드

실시간
  1. 1개코 김수미 이혼
    개코 김수미 이혼
  2. 2손태진 가족사 고백
    손태진 가족사 고백
  3. 3김혜윤 변우석 로맨스
    김혜윤 변우석 로맨스
  4. 4야노시호 이혼 고민
    야노시호 이혼 고민
  5. 5연말정산 AI챗봇
    연말정산 AI챗봇

헤럴드경제 하이라이트

파워링크

광고
링크등록

당신만의 뉴스 Pick

쇼핑 핫아이템

A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