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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락했으나 실패하지 않았다... 게임 DNA로 빚어낸 NC AI의 14년 뚝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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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홍 기자] 정부가 추진하는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평가에서 국내 게임 업계를 대표해 출사표를 던졌던 NC AI가 고배를 마셨다. LG AI연구원이 압도적인 점수로 1위를 차지하고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네이버마저 독자성 기준 미달로 실격 처리되는 혼전 속에서 종합 점수 최하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표면적인 결과만 놓고 본다면 뼈아픈 패배이자 기술적 한계다. 그러나 이면을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NC AI의 도전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국내 AI 생태계의 다양성과 특화 생존 전략을 보여주는 중요한 시사점을 남겼기 때문이다.

유일하게 게임사에 뿌리를 둔 이들의 행보는 거대 통신사나 포털, 제조사 기반의 AI 연구소와는 출발점부터 달랐다. 지난 14년간 묵묵히 데이터를 쌓고 기술을 연마해 온 NC AI의 여정은 범용성이라는 거대한 파도 속에서 전문성이라는 깃발을 꽂기 위한 치열한 사투였기 때문이다.

선발전에서는 탈락했으나 그들이 최근 쏟아낸 기술적 성과들을 하나하나 뜯어보면 이들이 왜 국가대표급 잠재력을 가졌는지, 그리고 왜 이들의 도전이 한국형 AI의 미래에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게임 너머의 세상으로, 도메인 옵스로 무장한 독자적 생존 전략
NC AI의 정체성은 게임에 있다. 이는 텍스트 위주의 데이터 학습에 치중했던 초기 AI 모델들과 달리, NC AI가 이미지, 음성, 3D 공간 정보, 그리고 사용자의 실시간 반응까지 아우르는 멀티모달(Multi-modal) 능력에 일찍부터 눈을 뜨게 된 배경이다.


NC AI가 정보시스템 분야의 권위 있는 국제 학술 워크숍인 WITS 2025에서 발표한 연구 성과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도메인 옵스(DomainOps)라는 독자적인 전략을 공개했다. 단순히 거대 언어 모델을 만드는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라 각 산업 현장이 필요로 하는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해결사로서의 AI를 지향한다는 선언이었다.

아마존이나 구글이 제공하는 범용 클라우드 AI가 마치 기성복과 같다면, 도메인 옵스는 제조, 금융, 공공 등 각 분야의 특수성과 규제, 보안 요구사항에 딱 맞춰 재단된 맞춤 정장과 같다. NC AI는 이를 통해 데이터 주권을 보호하면서도 상용 AI 플랫폼의 수익 모델을 결합한 모듈형 비즈니스 구조를 제안했다.

허울 좋은 청사진에 그치지 않았다. NC AI는 이미 그랜드 컨소시엄을 구축하여 원천 기술을 제공하고, 참여 기업들은 현장의 양질의 데이터와 노하우를 공유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정 산업의 보안과 전문성을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범용 모델이 가질 수 없는 강력한 경쟁력이 된다.


NC AI가 시스템 통합 기업들과 협업해 제조, 유통, 문화 콘텐츠 분야로 AI 전환을 가속화하려는 시도는 그들이 단순히 게임을 잘 만드는 AI를 넘어 산업을 이해하는 AI로 진화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1000억 파라미터의 괴물 배키부터 창작의 혁명 바르코까지, 기술 대해부

NC AI가 보유한 기술적 아스날(Arsenal)은 방대하며 정교하다. 최근 공개된 자체 개발 멀티모달 생성용 파운데이션 모델 VAETKI(배키)는 그 정점에 있다.


배키는 1000억 개(100B)의 파라미터를 가진 거대 모델로, 오픈AI나 메타 등 글로벌 빅테크의 최신 오픈소스 모델과 대등하거나 이를 능가하는 성능을 입증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한국어 처리 능력이다. 토크나이저 어휘의 20%를 한국어에 할당하고 고어(古語)까지 처리할 수 있는 한글 조합 기능을 탑재함으로써, 한국어 주요 벤치마크 3종에서 경쟁 모델 대비 평균 101% 앞선 성능을 기록했다. 이는 단순한 번역기가 아닌, 한국의 문화와 맥락을 깊이 이해하는 소버린 AI로서의 자격을 갖췄음을 의미한다.

배키가 두뇌라면 바르코(VARCO) 시리즈는 NC AI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이 되어준다. NC AI는 텍스트, 음성, 이미지, 3D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풀 라인업을 완성했다.

당장 음성 합성 기술인 바르코 보이스는 감정의 영역을 정복했다. 텍스트를 입력하면 단순히 읽어주는 것을 넘어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에 맞는 희로애락을 담아 연기한다. 최근 개최된 게임 제작 공모전에서 인디 개발자들이 성우 섭외 비용 없이도 고품질의 음성 연출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그 효용성을 증명했다는 평가다. 특히 한국어의 자연스러운 발성, 문맥 이해 기반의 대사 생성 능력은 글로벌 유니콘 기업인 일레븐랩스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르코 3D는 시각 혁명을 이끌고 있다. 텍스트나 이미지를 입력하면 단 10분 만에 고품질의 3D 모델을 생성해낸다. 기존에 전문 디자이너가 4주 이상 매달려야 했던 작업을 획기적으로 단축시킨 것이다. 이는 게임 제작뿐만 아니라 제조 현장의 디지털 트윈 구축, 메타버스 콘텐츠 생성 등 다양한 산업군에서 생산성을 극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핵심 도구다.

패션 특화 솔루션 바르코 아트 패션도 눈길을 끈다. AI가 디자이너의 영역으로 들어왔음을 알렸다. 형지그룹과의 협약을 통해 도입된 이 기술은 제품 디자인 시안부터 모델 착장 컷, 마케팅용 비주얼까지 생성하며 패션 산업의 업무 방식을 송두리째 바꾸고 있다. 의상 원단 변경부터 2D 디자인의 3D 변환, 가상 피팅까지 지원하는 이 기술은 시제품 제작 비용을 절감하고 트렌드에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게 돕는다.

여기에 더해 텍스트 입력만으로 효과음을 생성하는 바르코 사운드, 자연어 명령으로 캐릭터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바르코 바디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표정과 입 모양을 자동 생성하는 바르코 싱크페이스까지, NC AI는 콘텐츠 제작의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통합형 크리에이티브 프레임워크를 구축했다.

책임감 있는 AI의 표본, 세이프가드와 산업 생태계 확장

기술의 발전 속도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안전성과 윤리다. NC AI는 이 부분에서도 선도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엔씨소프트의 고객 상담 챗봇 엔써에 적용된 AI 안전성 기술 세이프가드는 국내 최초로 상용 서비스에 도입된 종합 AI 안전망이다. 사이버 보안의 개념을 차용해 공격(레드팀), 방어(블루팀), 정책(퍼플팀)의 삼중 방어 체계를 구축함으로써, AI가 생성할 수 있는 혐오 표현이나 편향된 정보를 원천 차단한다. 특히 게임 내 유료 재화 관련 편법이나 부정 행위 등 산업 특유의 위험까지 걸러내는 맞춤형 정책은 NC AI가 얼마나 디테일에 강한지를 보여준다.

생태계 확장은 전방위적이다. 모바일 플랫폼 전문기업 유라클과의 협력은 기업용(B2B) 시장 공략을 위한 포석이다. 유라클의 검증된 플랫폼 구축 역량에 바르코의 강력한 성능을 결합하여, 기업들이 겪고 있는 AI 도입의 어려움을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NC AI가 연구실 속의 기술이 아니라, 실제 비즈니스 현장에서 돈을 벌어다 주는 실용적인 AI를 지향하고 있음을 명확히 보여준다.

한편 NC AI의 기술은 K-컬처의 글로벌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다. 바르코 트랜스레이션과 결합된 음성 합성 기술은 드라마, 웹툰, 게임 등 K-콘텐츠를 전 세계 언어로 실시간 번역, 더빙하여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있다. 과거 수개월이 걸리던 현지화 작업을 단 몇 주 만에 끝낼 수 있게 되면서, 한국의 콘텐츠는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고 전 세계 팬들에게 도달할 수 있게 되었다.

국가대표 탈락이 아닌, 새로운 리그의 개막

정부의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 탈락은 분명 아쉬운 결과다. 하지만 이것이 NC AI 기술력의 부재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평가는 범용성과 표준화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기에, 게임이라는 특수 목적(Special purpose)에서 출발해 전 산업의 도메인 특화(Domain Specific) 모델로 진화한 NC AI의 진면목을 다 담아내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

NC AI는 지금 피지컬 AI라는 더 큰 미래를 보고 있다. 가상 공간에서 축적한 3D 인지 능력과 물리 법칙 학습 노하우를 바탕으로, 로봇이 현실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뇌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엔비디아의 젠슨 황이 행동하는 AI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한 그 지점에서, NC AI는 가장 강력한 경쟁력을 가진 플레이어 중 하나다. 14년 전, 게임 속 몬스터를 움직이고 악성 유저를 잡기 위해 시작했던 그들의 연구는 이제 공장을 돌리고, 도시를 설계하며, 문화를 수출하는 거대한 인프라로 성장했다.

그렇기에 도전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획일화된 정답만을 쫓지 않고, 자신들만의 색깔과 강점을 고집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개척해 온 그들의 뚝심은 한국 AI 생태계가 가진 또 다른 가능성의 증명이다. 국가대표 명단에는 이름이 없을지라도, 글로벌 시장이라는 진짜 필드 위에서 NC AI가 보여줄 퍼포먼스는 이제 막 시작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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