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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광장] 유물론이 빚는 신국제질서, 변증법적 지혜 절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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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물론이 다시 세상을 배회한다. 생산수단이 문명과 이념을 변화시키고 국제질서를 뒤흔들고 있다. 엘빈 토플러도 유물론으로 문명의 변화를 예견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유물론과 변증법은 곧 공산주의였다. 아담 스미스가 쓴 ‘국부론(國富論)’의 자유시장경제는 반공이념이 되었다. 서구에서 유물론과 변증법은 철학이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이념이 철학을 압도한다. 지금도 정치파벌들은 이념을 빙자한 극한적 대립과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연말특집에서 국부론을 쓴 아담 스미스가 잘못 이해되었다고 짚었다. ‘도덕감성론’이 그의 사상을 담은 대표작이고, 타인에 공감하는 ‘도덕적 인간’이 국부론의 주제인 자유시장의 조건인데 내용이 곡해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담 스미스는 자유방임주의의 창시자인 것처럼 오해되었다. 산업혁명 초기 진보이념이었던 자본주의는 100년 뒤에는 부자들만을 대변하는 자유방임주의라는 보수이념으로 변질된다. 빈곤층은 늘어나고 빈부격차는 확대되었다. 사회주의와 공산주의는 자유방임주의에 저항하는 진보이념이었다. 그러나 100년 뒤 공산주의는 독재권력의 지배이념으로 변질되었다. 신자유주의도 부자들의 자유방임주의 이념으로 퇴행했다.

이념은 시대에 따라 유행하고 변한다. 보수와 진보가 뒤바뀌기도 한다. 로마시대 초기기독교는 진보이념이었지만 중세기독교는 보수적 절대권력으로 변질된다. 보수주의자도 오랫동안 배고프면 혁신적 진보주의자가 되고, 진보적 혁명가도 권력을 가지면 보수주의자로 변질된다. 변질의 동력은 권력과 탐욕이고 그 결과는 이기적 파벌이념이다. 권력은 이념을 변질시키고 저항이념을 정당화시켜 준다.

지금 인간의 삶과 문명, 그리고 세계질서가 다시 급변하고 있다. 첨단기술과 인공지능(AI)이 안보와 금융, 산업, 문화, 그리고 일자리를 휘젓는다. 민주주의체제는 약화되고, 80년간 지속된 전후 국제질서도 붕괴되었다. 정부가 경제를 안보문제로 통제하는 시대가 되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까불면 죽어”라고 힘을 과시하지만, 1970년대 이래 약화된 경제 사정은 감출 수 없다. 그것은 ‘세계경찰 역할을 축소시키면서 달러의 기축통화 지위는 최대한 오래 유지’하는 전략으로 드러난다. 안보에는 부담을 떠넘길 동맹이 있지만 달러에는 동맹이 없기 때문이다. ‘트럼피즘’은 유물론에 의해 탐욕적으로 변질된 패권주의다.

이재명 대통령은 ‘평화적 협력외교’를 강조한다. 경제안보의 패권을 다투는 미국과 중국, 그리고 과거사로 얽힌 일본을 연달아 상대하고, 북한에는 ‘바늘구멍이라도 뚫어야 하는’ 현실에서 당연한 외교 레토릭이다. 그러나 국내정치의 극단적 대립이 지속되면 외교능력은 약화되고 안보여건은 악화된다. 한국 정치에는 철학적으로 논증하는 품격이 없다. 정치의 품격은 외교의 기반이다. AI가 지배하는 유물론 시대 한국정치에도 반대의견을 포용하며 변증법적인 지혜로 협의하는 실용적 접근이 절실하다. 이 대통령은 한중 정상회담 뒤 “외교의 지속성을 위해서는 제도화가 필요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바로 그 제도화가 지금 필요한 변증법적 외교전략이다. 금년은 한국외교를 위한 정치적 품격과 외교인프라를 제도화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

이현주 전 외교부 국제안보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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