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9년 5월10일 미국 프로몬토리 서밋에서 대륙횡단철도 완공을 기념해 찍은 공식 기념사진이다. 철도를 만든 중국인과 아일랜드인은 단 한명도 보이지 않는다. 당시 자본과 정치세력이 노동자와 이민자의 존재를 지우려 했기 때문이다. 출처는 미국 의회도서관. 메멘토 제공 |
역사는 때로 텍스트보다 선율로 더 뜨겁게 남는다.
5·18민주화운동은 ‘임을 위한 행진곡’으로, 87년 6월항쟁은 ‘그날이 오면’으로, 그리고 박근혜 퇴진 운동이 ‘다시 만난 세계’로 각인되듯이 말이다.
‘노래로 읽는 미국 근현대사’는 ‘노래’라는 렌즈를 통해 미국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조명한다. 이야기는 기차에서 출발한다. 미국은 철도를 발판 삼아 압축성장을 이뤘다. 탄생 200년도 안 된 나라가 순식간에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으로 도약한 배경에는 철도산업이 있었다. 그중 미국을 동서로 이은 대륙횡단철도 공사는 수많은 노동자들의 목숨을 제물 삼아, 미국의 자본주의를 본궤도로 끌어올렸다.
서부에서는 수만명의 중국인들이 험준한 산맥을 뚫고 터널을 만들다가 목숨을 잃었다. 동부에선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저임금과 차별 속에서 레일을 깔았다. 고통스러운 작업을 견디게 한 건 노동요였다. 당시 대표적 노동요였던 ‘아이브 빈 워킹 온 더 레일로드’(나는 철도를 깔고 있네)는 ‘나는 철도에서 일해. 긴 하루 내내 일해. 빨리 일어나라 재촉하는 기적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 아침부터 일하지’라는 가사를 담고 있다. 단순하고 반복적인 구조와 경쾌한 리듬은 지친 노동자들이 다시 움직일 힘을 불어넣었다.
이 노래는 농경사회의 노동요와 확연한 차이를 보였는데, 바로 ‘템포’였다. 면화를 따거나 물고기를 잡으며 불렀던 노래보다 훨씬 빨라졌다. 기차 발명 이전의 노동요가 인간의 호흡을 따랐다면, 기차 발명 이후 노동요는 기계의 속도를 따르기 시작했다.
초기 서부 지역에 철도를 깔던 노동자들은 아일랜드계를 중심으로 한 백인 이민자들이었다. 하지만 이들이 가혹한 노동 환경에 계속 불만을 제기하자 철도회사는 이들을 조용히 일만 하는 중국인들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중국인 노동자들은 최대 1만2000명까지 늘어 전체 노동자의 80∼90%를 차지하게 됐다. 중국인들은 백인 임금의 절반도 되지 않는 돈을 받았고, 숙식을 제공받던 백인과 달리 스스로 텐트를 치고 끼니도 해결했다.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니 아무런 문제 제기도 없었다.
노래로 읽는 미국 근현대사 l 임상훈 지음, 메멘토, 3만3000원 |
마침내 철도의 완성으로 동부에서 서부까지 걸리던 6개월의 여정은 단 7일로 단축됐다. 하지만 완공을 자축하는 기념사진 속에 중국인은 없었다. 백인들끼리만 사진을 찍었고, 쓸모 없어진 중국인을 내쫓기 위한 반중 선동이 시작됐다. ‘중국인 배척법’을 만들어 중국인의 영구 추방을 제도화했는데, 이는 이후 한국인, 일본인 등 비백인 이민자 차별의 근간이 된다.
자연스럽게 중국인들의 비애와 울분도 노래에 실렸다. ‘차이나맨, 차이나맨’의 가사는 서글픈 중국인의 자화상을 모사한다. ‘나는 중국인이다. 결혼도 안 했고, 가족도 없다. 집도 없고, 아내도 없다. 아이도 없고, 삶이랄 것도 없다. 중국인은 너무 싼값으로 일하고, 백인들 배나 채워주며, 눈물을 흘린다.’ 또 다른 노래 ‘어 차이나맨즈 챈스’ 역시 비참한 현실을 고발한다. ‘그들은 날 절벽 높은 곳으로 보내, 폭탄을 설치하고 위험을 감수하게 했다. 그러곤 중국인의 기회를 더는 누릴 수 없었다’는 후렴이 계속 이어진다.
철도에서 시작한 서사는 골드러시와 대공황, 대철도 파업을 거쳐 원주민 학살, 남부의 인종차별을 피해 북·서부로 이주한 흑인 대이동, 베트남 전쟁과 반문화 운동으로 쉼 없이 달려간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에 노래가 있었다. 미국의 역사는 자본의 탄압과 착취의 역사였고, 이는 끝없는 저항과 봉기를 불러일으켰는데, 노래가 없는 저항과 봉기는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책은 노래가 단순히 시대의 배경 음악이 아니라, 시대의 증언이자 저항의 무기, 그리고 역사의 엔진이었음을 증명한다. 노동요와 흑인 영가부터 블루스와 재즈, 포크와 록, 힙합에 이르기까지 함께 부른 노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두려움을 넘게 하며 세상을 바꿔냈다.
저자는 영문학 박사 출신으로 ‘문화과학’ 편집위원으로 활동했던 임상훈 작가다. 책의 외피는 미국의 근현대사이지만, 음악사나 민중사나 노동운동사, 흑인 민권운동사로 읽어도 손색이 없다. 역사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물론 음악과 영화, 소설을 넘나드는 통섭적 접근은 풍부한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장마다 삽입된 큐알코드를 통해 언급되는 노래를 직접 음미하며 읽을 수 있다는 점도 큰 묘미다. 특히 시대의 공기와 민중의 한숨까지도 섬세하게 담아내면서도 경쾌하고 리듬감 있는 문장이 매력적이다. 다음 저작을 기대하게 만드는 한명의 이야기꾼이 탄생했다.
김아리 객원기자 ar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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