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하는 눈동자 l 이슬아 지음, 이훤 사진, 먼곳프레스, 1만9800원 |
이슬아 작가의 말처럼, ‘좋은 문장은 이렇게 힘이 세’다. 어떤 문장이든 진심을 꾹꾹 눌러 담아서, 한 문장이 응축하고 있는 힘에는 하나의 세계가 담겨 있다. 힘센 문장들에 압도돼 글을 한편씩 읽어 나가다 보면, 어느새 남은 글이 많지 않다는 것이 아쉬워진다. 이 작가의 열다섯번째 책 ‘갈등하는 눈동자’가 그렇다.
“인간이 무엇이냐는 오래된 물음 앞에서 이제는 ‘더딘’이라는 형용사가 먼저 떠오른다.”
인공지능(AI) 시대에도 이 작가는 ‘골똘히 다시’ 보고, ‘지우고 새로’ 쓰고, 이런 운동을 ‘수백번 반복’하다가 나온 이 ‘미더운 이야기’를 썼다. 이에 독자 역시 골똘히 읽고, 다시 읽고, 수백번 반복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다. 이 에세이집은 그래서 귀하다.
이 작가는 이 책에 열여덟편의 에세이와 두편의 강연록, 두편의 인터뷰를 실었다. 수많은 타인의 어떤 눈동자를 얘기하면서 이 작가는 인간을, 사랑을, 우정을 말했다. 천년 세월을 살 수 있는, 애니메이션 ‘장송의 프리렌’ 속 주인공 프리렌의 눈동자로 바라본 인생과 우정을 말하고, 세계 종말을 앞두고 회사에 출근해 동료들의 이름을 외우는, 애니메이션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속 캐럴의 눈동자로 삶과 죽음을 말한다. 이 책의 클라이맥스는 인터뷰에 있다. 덴마크 시인 마야 리 랑그바드, 그리고 시각장애인 김성은과의 인터뷰를 읽으며 우리는 책 제목 ‘갈등하는 눈동자’의 진짜 뜻을 알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타인들의 눈동자는 강하지 않다. 그저 따뜻하다. 경기에서 졌지만 이겼고,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은 짧지만 그래서 귀하고, 양쪽 눈에 의안이 있지만 그 눈동자는 갈등한다. 모순이다. 따뜻한 모순이다. 그리고 재밌다. 이 작가의 유머는 사랑스럽다.
이 작가는 “혹시 혁명이라는 게 일어나고 있다면 나는 겨우 뒷줄에서 까치발을 든 사람일 것 같다”고 말했지만, 내가 아는 한 이 작가는 이 ‘사랑 혁명’의 주동자다. 이 작가의 글을 읽으면 타자를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어떤 눈동자인지 보고 싶어진다. 더, 더뎌지고 싶어진다.
장현은 기자 mix@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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