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살 이상이면 누구나 임종기 환자가 될 때를 대비해 연명의료를 하지 않겠다고 미리 서명할 수 있다. 하지만 존엄한 죽음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 없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만으로 연명의료를 줄이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이정용 선임기자 lee312@hani.co.kr |
지난해 마지막 달에 한국은행은 한국인의 죽음에 대한 경제적 분석 보고서를 내놨다. 생애 말 연명의료가 줄지 않아 사회자원의 낭비가 크다는 것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65살 이상 노인들의 84.1%가 사전에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답했지만, 이게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16.7%에 불과했다. 한은은 연명의료를 거부하겠다는 84.1%의 의지가 지켜지면 약 13조원을 아낄 수 있다고 추산했다.
연명의료란 임종기에 이르러 회복될 것을 기대하지 않지만 환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음을 보여주기 위한 의료행위를 말한다. 한마디로 죽음의 과정을 질질 끄는 것이다. 1997년 환자 아내의 요청에 따라 자택 임종을 위해 중증 환자를 집으로 퇴원시킨 후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며 담당 의사가 형사처벌을 받은 ‘보라매병원 사건’ 이후 연명의료는 관행이 되었다. 이 사건은 의사와 환자 간 신뢰가 무너진 상징적 사건이지만, 급격한 산업화 이후 한국 사회는 의료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신뢰 대신 법이 우선하고 있다. 다시 말해 돈을 지불하고 상품을 구매하는 시장의 계약으로 사회는 전환되었다. 의료 역시 치료라는 상품을 팔고 건강이라는 결과를 구매하는 시장이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치료가 어려워 죽음을 준비해야 할 때 그 치료 범위마저 소비자인 환자가 선택하도록 법으로 정한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이다. 한은은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잘 지켜지지 않아 연명의료가 줄지 않고 경제적 손실이 크다고 분석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가 지난달 11일 서울 중구 한국은행 별관에서 ‘생애말기 의료’를 주제로 열린 ‘2025 한국은행-국민건강보험공단 공동 심포지엄’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하지만 한은이 지적한 연명의료 거부 84.1%와 실제 이행률 16.7%의 괴리는 자기결정권이라는 계약 위반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사전연명의료의향서와 연명의료계획서의 상황 차이에서 발생한다. 건강할 때 먼 미래의 죽음을 그려 보고 보험처럼 작성하는 것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이다. 반면 연명의료계획서는 중한 병으로 죽음이 현실이 되었을 때 병원에서 작성하는 것이다. 우리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통해 보장받으려 하는 것은 늙어 평온하게 집에서 잠들 듯이 떠나는 죽음이다. 하지만 연명의료계획서를 통해 주어지는 것은 생각보다 너무 일찍 다가온 죽음을 마지못해 받아들여야 하는 비참함이다. 이런 맥락의 차이를 모른 채 노인들의 바람이 가족이나 의료진에 의해 무시되지 않도록 자기결정권을 법적으로 더 강화해야 한다는 한은의 제안은 그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논할 때 익숙하지도 않은 자기결정권을 늘 만능열쇠처럼 들고 오는 행태는 너무 성의가 없어 웃음이 난다. 나아가 자기결정권이란 말로 죽음 앞에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인간의 본성마저도 계약 위반으로 취급하는 접근이 씁쓸하다. 하긴 어차피 연명의료결정법 자체가 법리와 행정 편의를 위해 공론화 없이 뚝딱 만들어낸 것이 아니던가? 법이 제정된 뒤 열번째 해를 맞이하고 있지만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뭐고 연명의료계획서는 무엇인지 국민들도 의료인들도 여전히 잘 모르는 게 현실이다.
죽음과 관련해 한국 사회의 특이한 점은 국민 다수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러 설문조사에서 연명의료를 거부하는 비율도, 안락사에 찬성하는 비율도 80%를 넘는다. 이를 보면 한국인들은 죽음 앞에서 호연지기가 넘친다. 하지만 내가 진료실에서 만나는 환자 대부분은 연명의료계획서 얘기를 꺼낼 때 큰 충격을 받는다. 나이도 종교도 상관없다. 연명의료 거부와 안락사 찬성이 높은데도 현장에서는 순순히 삶의 마무리를 받아들이는 사람을 만나보기 힘들다. 이는 죽음의 당사자일 때와 아닐 때의 문제이다. 당사자가 아닐 때 용감할 수 있는 것은 죽음 앞에서 비굴하지 않으려는 바람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이 되면 우리의 태도는 달라진다. 이중성을 비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연명의료결정법이 기본 전제인 ‘공준’으로 내세운 자기결정권은 인간의 절대이성을 강조하지만 실상은 갈대처럼 흔들리는 것이 인간이다. 감성에 끌려다니면서 이성적이라고 사후 합리화하는 것이 우리다. 그래서 그런 이해 없이 높은 연명의료 거부 비율과 안락사 찬성 비율을 액면 그대로 해석하고 아전인수 논리를 만들어내는 연구자들이나 정치인들이 나는 더 우려스럽다. 한국 사회에서 연명의료가 줄지 않는 것은 자기결정권의 방향이 죽음이 아닌 생존을 향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일하는 대형병원 암센터로 4기 암 환자들이 생존의 가능성을 두드리며 전국에서 모여든다. 살고자 하는 몸부림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치료법이 없을 때 그들은 오열하고 비통해한다. 절망에 빠진 이들에게 나는 그만 대형병원과 단절할 것을 권하고, 연명의료계획서 작성과 호스피스를 안내하는 일을 맡고 있다. 하지만 공장처럼 운영되는 대형병원에서, 다가오는 죽음과 남은 삶을 설계하는 과정은 매우 불친절하다. 이곳 암센터 진료는 10분에 4명씩 예약이 잡힌다. 환자 한명당 2분30초가 할당된다. 그 짧은 시간 안에 검사 결과를 설명하고 치료를 이어갈지 결정한다. 환자의 넋두리를 듣거나 감정을 받아 줄 여유는 없다. 그런 상황에서 환자와 주치의의 차분한 연명의료계획 상담은 불가능하다. 검사 결과를 확인하고 다음 치료 기회가 없으면 공장에서 자동 분류되듯 완화센터로 보내진다. 완화센터에 어떻게 오게 되었는지 물으면 환자는 눈을 감고 입을 닫는다. 보호자만 눈치를 보며 어쩔 줄 몰라 한다. 반대의 경우도 있다. 환자는 그만 멈추었으면 하는데, 동행한 가족은 환자를 나무라며 자신들은 포기하지 않았는데 왜 여기로 연결된 것이냐며 화를 낸다. 환자와 가족 모두 현실이 된 죽음을 의연하게 맞는 경우는 정말 16.7%라는 수치처럼 열에 한둘 정도 되는 것 같다.
용기 내어 호스피스를 선택해도 호스피스 입원기관이 너무 적어 대기가 한달은 기본이다. 기다리다 상태가 악화하면 응급실로 오고, 다급한 마음에 가족들은 인공호흡기, 승압제 등 연명의료를 요청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렇게 말기 환자들이 자꾸 응급실로 몰리니 급성기 환자들은 자리가 없어 ‘뺑뺑이’를 도는 악순환은 대형병원의 고질적 문제가 되었다. 대형병원 응급실은 중증외상환자보다는 발열, 통증, 구토, 식욕부진, 폐렴 등으로 찾은 암 환자로 북새통이다. 암 환자들은 작은 이상에도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가까운 병원 응급실을 이용하려 해도 응급실에선 암 환자라면 겁을 내고 다니던 병원으로 가라며 손사래를 친다. 특히 전국의 암 환자들이 몰려드는 서울 대형병원일수록 응급실은 온통 암 환자 차지가 된다. 애초에 환자들이 지방에서 서울로 쏠리지 않도록 막으면 될 일이지만 한국 사회에서 ‘큰 병원’을 찾을 자유를 제한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한때 한국 의료는 다른 선진국들이 부러워할 만큼 접근성이 좋다고 자랑했지만 지금은 그것이 부메랑이 되어 지방 의료 붕괴와 응급실 뺑뺑이의 원인이 되고 있다. 여하튼 서울 대형병원을 찾을 때부터 환자와 가족들은 순순히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마음이 없다. 마지막까지 결사항전의 각오로 온 것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은 가리지 않고 하겠다고 덤빈다.
이런 특수를 예견하기라도 한 듯 대한민국은 희한하게 재벌 1위와 2위가 모두 병원을 세우고 의료 시장에 진출해 있다. 한국 의학사 교과서는 이렇게 적고 있다. 1989년 현대가 서울아산병원을, 1994년 삼성이 삼성의료원을 개원한 일은 한국 사회와 의료계에 큰 파장을 불러왔다. 호텔식 재벌 병원의 등장은 그동안 안이하게 운영되던 대학병원들에 큰 자극이 되었고 양측 간 경쟁은 결국 병원 대형화라는 규모의 싸움으로 치닫게 되었다. 병원의 대형화는 자본이 뒷받침되어야 하기에 때마침 개통한 고속철도는 지방 환자들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통로가 되었고, 고가 검사와 비급여 치료가 많은 암 환자들이 유인해야 할 주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대형병원 의사들은 4기 암을 더 이상 말기라고 부르지 않고 ‘전이암’이라고 부른다. 한 종양내과 의사는 인터뷰에서 죽기 전까지 말기란 없다며 걸어 다닐 힘이 남아있는 한 열심히 임상시험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의료가 시장이 되면 병원은 늘 새로운 치료 희망을 팔아야 하고 그것에 중독된 사회에서 존엄한 죽음을 맞는 문화는 자리를 잃는다. 한국 사회에서의 자기결정권은 존엄한 죽음을 지키는 공준이 아닌 대형병원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와 마지막까지 치료를 포기하지 않는 의지로 작동하고 있다.
박중철 | 연세암병원에서 말기 암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 없는 삶을 지키는 호스피스·완화의료 의사이자, 인간 질병의 생물학적 측면을 넘어 사회·문화적 맥락을 종합적으로 탐구하는 인문사회의학 박사이다. 주된 관심사는 젊음과 생동력을 추종하며 삶의 완성인 죽음의 가치를 소외시킨 한국인들이 겪고 있는 ‘생’(生)의 방향 상실이다. 저서로 ‘나는 친절한 죽음을 원한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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