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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겸손’을 알려주는 튀르키예의 유리 구슬

조선일보 베튤 준불·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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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눈동자 모양의 유리 구슬을 본 적이 있는가? 튀르키예 여행을 다녀온 이들이라면 팔찌나 목걸이, 벽 장식 등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져 좌판에 깔려 있는 풍경을 쉽게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유리 구슬을 튀르키예인들은 나자르 본주우(Nazar boncuğu), 그러니까 ‘나자르 구슬’이라고 부른다.

‘나자르’란 누군가의 부러움을 사거나 질투를 받을 때 눈에서 나오는 ‘살(煞)’을 의미한다. 타인의 시선에서 나오는 이 살을 맞으면 어딘가 아프거나 부러움을 샀던 물건이 망가지는 등 불운을 당한다는 믿음이다. 그러니 나자르 구슬은 이 살을 막아주는 부적인 셈이다. 이블 아이(Evil Eye)라 불리기도 하는 나자르 구슬이 왜 눈알 모양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파란색은 예로부터 무언가를 흡수해서 정화하거나 반사하는 상징적인 색으로 인식되어 왔는데, 눈 모양을 파란색의 구슬이 감싸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구슬이 살을 흡수해주거나 반사하여 돌려준다는 제법 명쾌한 상징이 형상화된 것이다.

나자르 구슬이 살을 막아준다는 것은 미신이 틀림없지만 ‘나자르’라는 개념 자체는 한국어로 설명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서 발을 동동 굴렀을 만큼 유용하다. 새로 산 물건이 하루 만에 어이없이 망가지거나, 일이 풀리기 시작한 즈음 눈에 다래끼가 나는 식의 소소한 불운을 받아들이는 데 한결 수월해진다. 여기서 나자르의 진가가 발휘된다.

어릴 때부터 부모님은 우리 삼 남매에게 늘 겸손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것이 좋은 덕목이기 때문이었겠지만 나자르를 맞지 않으려면 경거망동해서는 안 된다는 규칙이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나자르가 의심되는 불운을 겪으면 스스로를 돌아보게 된다. 내가 너무 경거망동했던 것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나자르’는 꼭 악의를 동반하지 않아도 생길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가가 잘된 것을 두고 진심으로 기뻐하더라도 찰나의 부러움이 살이 될 수 있다. 그러니 상대방이 잘되기를 바라는 순간에는 거꾸로 나자르를 떠올린다. 내 시선이 누군가에게 살이 되면 안 된다는 걱정에 혹여나 살이 나가지 못하도록 눈을 지그시 감고 ‘퉤퉤퉤’ 외친다. 동서양의 방법을 섞으면 괜히 효험이 더 좋아지는 것 같다. 그 뒤에 진심으로 상대를 위해 마음 깊이 기도한다.

이렇듯 늘 마음을 돌아보고 내 시선까지 성찰할 수 있는 미신이라면 제법 쓸모가 있지 않을까? 구슬을 지니고 다니진 않더라도, 한 번쯤 믿어 봐도 밑질 건 없다.

[베튤 준불·배우 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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